성희직 시인 “박정하씨 기적생환은 막장정신의 승리”

“막장정신으로 살아온 40년…도전의 역사”

성희직 시인은 “봉화광산에서 221시간 만에 생환하며 ‘봉화의 기적’을 만든 박정하씨는 막장정신의 승리”라며 “광산에서 순직한 산업전사들에게 ‘광부의 하늘이 무너졌다’ 시집을 바친다”고 말했다.

성희직 시인은 삼척탄좌 해고광부를 거쳐 3선 강원도의원과 강원도의회 부의장, 강원랜드복지재단 상임이사를 역임한 뒤 현재 정선진폐상담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성희직 시인이 지난 10월 7일 사북에서 열린 '광부의 하늘이 무너졌다' 시집 출판기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

시집 ‘광부의 하늘’과 ‘그대 가슴에 장미꽃 한 송이를’에 이어 지난 10월 3번째 시집 ‘광부의 하늘이 무너졌다’를 펴낸 그는 지난 10월 7일 사북, 11월 10일 서울 교보문고, 11월 25일 도계에서 출판기념회를 개최했다.

-도계 출판기념회는 흥국탄광 탓에 특별한 의미로 생각된다.

“그렇다. ‘광부의 하늘이 무너졌다’ 시집에는 지난 1970년 12월 10일 흥국탄광(현 경동탄광) 에서 출수 사고로 광부 6명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당시 출수사고로 갇힌 13명 중 8명은 구조되었으나 5명이 숨지고 구조대장 신봉희(당시 40세)씨가 막장에서 마지막 시신을 수습하던 중 다시 갱도가 무너지면서 모두 6명이 숨진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흥국탄광 출수사고는 지난 2010년 12월 김진웅 전 흥국탄광 기획과장 김진웅씨가 나를 찾아와 고해성사 하듯이 이야기 하면서 알게 되었다.

서울대 공대출신의 엘리트인 김진웅씨는 40년간 출수사고의 트라우마와 죄책감을 느꼈다며 ‘나의 과욕이 6명의 광부를 죽게 했다’며 ‘흥국탄광 이야기를 꼭 써달라’고 당부했었다. 그러면서 그는 붕락된 막장에서 5명의 광부를 기적처럼 살려낸 감독과 구조대원 신씨 등 2명의 영웅이야기를 시로 옮겨 달라는 당부를 했다.”

-‘1970년 흥국탄광 이야기’는 성 시인의 책을 통해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당시 나는 김진웅씨의 이야기를 듣고 흥국탄광 출간을 약속했다. 이후 탄광에서 매몰되었다가 극적으로 생환된 분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기 위해 준비를 했는데 연결이 안 되어 포기하고 있었다. 12년 전의 약속을 못 지키다가 이번 시집을 통해 일부나마 소개하게 되었다. 흥국탄광에서 관리자로 근무했던 그는 당시 정부와 광업주들은 증산정책에 혈안이 되어 석탄생산에만 몰두하느라 광부들의 안전과 생명은 경시되었다는 양심고백을 했다.

사건은 1970년 12월 10일에 발생했다. 13명이 일하던 채탄막장에서 물통사고가 발생해 5명이 죽탄에 깔리고 8명은 가까스로 대피할 수 있었다. 신속한 구조작업으로 비교적 안전한 곳에 대피해 있던 8명은 극적으로 구조될 수 있었다. 그러나 죽탄에 묻힌 광부들을 구조하던 구조대장 신봉희(당시 40세)씨가 마지막 5번째 광부의 시신을 수습하는 순간 갑작스런 붕괴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신봉희씨는 동료들을 구조해야 한다는 신념 하나로 4박5일간 꼬박 밤을 새우며 초인적인 의지로 구조작업을 했다. 원래 지하작업은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는데 그는 퇴갱도 안 하고 빵과 우유로 버티며 구조작업에 나섰다. 결국 마지막 시신 수습을 앞두고 갑작스런 출수사고로 사랑하는 부인과 6남매의 자녀를 남기고 지하에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우직하고 남다른 사명감으로 위험한 구조작업에 앞장서온 신씨는 일찍 부모를 잃고 온갖 고생을 하다가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려고 광부로 일하다가 막장에서 인생을 하직한 것이다. 장례식에 탄광 소장이 상여를 메고 회사장으로 장례를 치른 것은 신봉희씨의 특별한 희생정신을 회사가 높이 산 때문이었다.

당시 김진홍 흥국탄광 기획과장은 6명의 귀중한 목숨을 앗아간 사건은 광부의 안전보다 증산을 앞세운 증산정책을 무작정 따라 실천한 관리자들의 책임이 크다고 40년이 지난 뒤 나에게 찾아와 뒤늦게 양심고백을 한 것이었다. 그분의 양심고백은 탄광의 관리자로서 처음 보는 일이었다.”

-흥국탄광에서 구조 중 산화한 신봉희씨의 장남 이야기도 감동적이다.

“처와 어린 6남매를 두고 하늘나라로 떠난 신봉희씨의 집안은 풍비박산되었다. 자녀와 부인은 재앙을 당했음에도 가족 모두 한 눈 팔지 않고 열심히 살았다. 그의 장남 신상균씨는 주민들의 뜨거운 지지로 시의원에 당선된 이후 내리 4선과 삼척시의회 의장까지 지냈다. 2002년 그의 어머니 장례식 때 들어온 조의금 1억 원을 도계고등학교에 전액 장학금으로 기탁했다. 

짧은 생을 정말 열심히 사셨던 부친의 뜻을 기려 지역의 미래가 될 학생들을 위해 헌사한 것이다. 그의 사연은 정말 감동적이었고 광부의 하늘이 무너졌다 시집에서 두 사람의 사연을 소개할 수 있어 감사하게 생각한다.”

-봉화 아연광산에서 극적 생환한 박정하씨도 시집과 연관이 깊다.

“봉화 아연광산 매몰사고로 갱도에 묻혔다가 221시간 만에 극적으로 생환한 박정하씨는 사북광업소 광부출신이다. 매몰사고 이후 박정하씨의 무사생환을 기원하고 있는 부인을 격려하기 위해 사고 1주일 뒤 진폐협회 회원들과 봉화 아연광산을 방문했다. 박정하씨의 생사조차 모르던 상황에서 그의 부인이 내가 건넨 ‘광부의 하늘이 무너졌다’시집을 수차례 읽으며 남편의 무사귀환을 기다리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지난 11월 28일 정선 가수리 ‘동백이 농장’에서 탤런트 최불암 선생이 출연한 가운데 ‘아연광산의 기적’ 박정하씨를 위한 위로의 밥상을 촬영하는 기회가 만들어졌다. KBS ‘한국인의 밥상’촬영 팀은 예전 사북 동원탄좌 탄광동료와 부인들이 동백이 농장에서 토종닭 백숙, 표고버섯밥, 산초두부, 삼겹살 더덕구이 등으로 차린 박정하씨를 위한 위로의 밥상을 차려 준 것이다. 

삼겹살은 과거 광부들이 목에 낀 탄가루를 씻어 내는데 최고라며 즐겨 먹던 음식이었다. 최불암 선생은 세상과 고립된 갱 속에서 무려 221시간의 사투 끝에 무사 귀환한 박정하씨와 대화를 나누며 광부 동료들과 특별한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내가 광부 시를 낭송한 뒤 ‘광부의 하늘이 무너졌다’시집에 사인을 해 박정하씨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박정하씨와 최불암 선생이 출연한 한국인의 밥상은 오는 15일 오후 7시 40분 방영될 예정이다.”

▲지난 11월 28일 정선 가수리 ‘동백이 농장’에서 탤런트 최불암 선생과 박정하씨의 동료 광부, 성희직 시인 등이 출연한 가운데 ‘아연광산의 기적’ 박정하씨를 위한 위로의 밥상 촬영이 진행되고 있다. ⓒ성희직

-사북 출판기념회에는 박진탁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 이사장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박진탁 이사장은 국내 첫 신장을 이식하신 분이다. 그 분과 인연이 되어 내가 도의원 시절이던 1994년 6월 신장을 기증하게 되었다. 박 이사장께서 출판기념회 소식을 듣고 흔쾌히 참석하셨다. 이분은 정말 감동적인 삶을 살아오신 분이다. 전태일 열사 같은 삶을 살아오셨다고 생각한다. 항상 존경하는 분인데 출판기념회를 축하하기 위해 참석하셔서 너무 감사했고 영광이었다.”

-첫 시집이 ‘광부의 하늘’인데 이번 시집은 ‘광부의 하늘이 무너졌다’로 했다.

“태백에서 산업전사와 진폐재해자들의 고귀한 희생과 명예회복을 위한 성역화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산업화시대 산업전사들의 희생과 그분들의 숭고한 넋을 기리는 성역화사업은 반드시 계획대로 완성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또 지하 막장에서 불치의 직업병인 진폐증에 이환되어 고통받고 있는 진폐재해자들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28년 만에 시집을 출간하게 되어 광부의 하늘이 무너졌다로 정한 것이다. 탄광촌 성역화사업과 산업전사 명예회복이 내년에는 꼭 이뤄질 수 있도록 정치권과 정부당국의 관심과 성원을 촉구한다.”

한편 성희직 시인이 조성한 정선 가수리 ‘동백이 농장’은 ‘동강가는 길, 백자작나무숲 이야기’를 ‘동백이’로 줄여서 작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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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봉

강원취재본부 홍춘봉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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