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감 느껴져"…전쟁 길어지자 우크라 난민에 싸늘해지는 유럽인들

집 내주려는 시민 줄고 임대조차 꺼려…러 폭격 '연료난' 우크라 귀국도 난망

전쟁 장기화가 유럽 각 국의 부담을 키우며 우크라이나 난민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환영 일색이던 분위기가 점차 싸늘해지는 가운데 난민들은 거주 및 취직과 취학에 곤란을 겪으며 장기 체류에 대비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러시아의 에너지 시설 폭격으로 우크라이나 정부에서도 연료난을 우려해 당분간 난민이 귀국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워싱턴포스트>(WP)의 26일(현지시각) 보도를 보면 유럽으로 이주한 우크라이나 난민들은 자신들에 대한 환대가 점차 식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자녀와 함께 체코로 도피한 우크라이나 난민 카트야(34)는 매체에 몇 달 전엔 난민을 열렬히 환영하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점차 그의 가족이 적대감에 직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 어린 자녀조차 "우크라이나어로 말한다는 이유로 놀이터에서 체코 어린이들에게 쫓겨 다닌다"고 호소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 집계를 보면 전쟁 발발 뒤 이달 25일까지 유럽으로 피난한 우크라이나 난민 수는 775만 명에 이른다.

난민에 대한 즉각적인 호의의 철회는 주거지 제공에서부터 드러난다. 매체는 구호 단체들이 우크라이나 난민들에게 자신의 집 또는 제공하려는 일반 시민들의 관심이 시들해짐을 느끼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쟁 뒤 몇 달 간 시민들은 자신의 집에서 남는 방을 제공하는 방식 등으로 난민들을 받아 들여 왔는데 전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난민 유입으로 임대 수요가 많아져 임대료가 오를 수 있다는 점도 일반 시민들이 난민에 부정적 감정을 갖게 된 원인 중 하나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매체는 45만 명의 우크라이나 난민을 받아 들인 체코의 경우 이미 높은 집값으로 젊은층을 비롯해 저소득층에서 중산층까지도 집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프라하의 부동산 중개업자 페트라 비비랄로바는 매체에 집주인들이 지불 능력이 있는 우크라이나인들에게조차 집을 빌려주는 것을 꺼리고 "혐오감"을 키우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제 많은 사람들이 우크라이나인들이 특별 대우를 받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또 이들이 몇 달 뒤 갑자기 떠날 수도 있다는 것도 걱정거리"라고 덧붙였다.

난민 수가 늘자 일부 국가의 지방정부들이 더 이상의 난민 유입을 차단하는 경우도 생겼다. 라트비아 매체 <발틱타임스> 등을 참조하면 라트비아에서는 자금 문제로 수도 리가를 비롯해 여러 도시에서 지난 7월 우크라이나 난민의 추가 유입을 막기로 했다. 독일 방송 도이치벨레(DW)도 지난 8월 브란덴부르크·빌레펠트 등 독일 일부 지역에서도 여력이 없다며 우크라이나 난민 추가 수용을 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은 이론적으로는 독일 전역으로 이동할 수 있지만 추가 유입을 막는 지역에 정착할 경우 보조금에 접근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많은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여전히 안정적 주거지를 구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 같은 현상의 확산은 우려를 낳는다. 유엔난민기구가 유럽 43개국으로 이주한 우크라이나 난민의 주거·취업·귀국 의향 등을 조사해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25%만이 자신 또는 가족을 위한 집을 임대해 살고 있고 41%가 초대 가정에, 18%는 집단 숙소나 호텔에 살고 있다. 27%는 향후 6개월 안에 다른 주거지를 알아봐야 한다고 답했다.

전쟁이 장기화 되면서 난민들에게 현지 일자리가 절박한 상황이지만 유엔난민기구 보고서에 따르면 고용돼 있거나 자영업을 하며 경제활동에 종사하는 유럽 이주 우크라이나 난민 비중은 28%에 불과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난민들이 고용 기회 자체의 부족보다 자녀 돌봄과 언어 장벽을 취업의 걸림돌로 꼽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난민 대부분이 유아·어린이 및 노인 등 돌봄이 필요한 가족과 함께 이동하는 여성이다.

일자리를 얻었더라도 저숙련·저임금 일자리인 경우가 많다. 폴란드 매체 <폴란드로부터의노트>(NFP)는 우크라이나 난민이 폴란드의 고령화와 더불어 인력이 부족한 시기에 입국해 일자리 자체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을 수 있지만 이들 중 약 50%가 저숙련 일자리에 종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매체는 이들이 학력과 경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계를 위해 단순직에 종사하고 있어 향후 귀국 뒤 국가 재건에 유용한 능력을 거의 익히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피난 생활이 길어지며 아동들의 교육 기회 상실도 점점 더 큰 문제가 돼 가고 있다. 유럽연합(EU) 집계에 의하면 전쟁 발발 뒤 이달 25일까지 67만3325명의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이 학교에 등록했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는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있는 어린이의 수가 어느 정도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며 일부는 그 수가 수십만 명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매체는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어린이가 많은 이유로 체코나 폴란드 등 난민을 많이 받아들인 나라가 이미 학교 공간 문제 등 교육 자원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점을 들었다. 정주하지 못한 채 갑자기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자녀를 학교에 등록시키는 것을 주저하게 한다. 일부 학교들에서 입학 전제 조건으로 요구하는 예방접종증명서 등의 서류들은 난민들이 구비하기 어려워 실질적으로 등록을 막는 기제가 되고 있다.

난민 생활의 고충에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300만 명 가량의 난민들이 귀국길에 오른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당분간 이조차 어려울 전망이다. 이리나 베레슈크 우크라이나 부총리는 25일 국외로 피신한 난민들에게 연료난 탓에 되도록이면 내년 봄 전에 우크라이나로 돌아오지 말 것을 권했다. 최근 러시아가 에너지 기반시설에 무차별 폭격을 가하며 우크라이나 전력 체계의 3분의 1 가량이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그러나 유럽 곳곳에서 극우를 중심으로 러시아 제재 반대 시위가 열리며 난민들이 설 곳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체코 프라하에선 지난달 높은 에너지 가격에 항의하며 정부의 러시아 제재에 반대하는 수천~수만 명 규모의 시위가 여러 차례 열렸다. 이달 초 독일 베를린에서도 독일 극우정당인 독일을위한대안(AfD)을 중심으로 높은 에너지 가격과 인플레이션을 비난하며 러시아 제재 해제를 촉구하는 시위에 1만 명 가량이 몰렸다.

▲지난 4월 1일 베를린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관 영사부 앞에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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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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