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의료 새벽배송 서비스…'의료의 쿠팡화'?

[시민건강논평] 의료의 미래를 묻는다

"입사 축하금 300만 원, 장기근속 격려금 최대 5천만 원, 7년에 한 번 제공되는 유급 안식년"

인력난으로 고민이라는 지방의료원의 직원 채용에 이런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한다면 어떨까. 안타깝게도 이런 조건을 제시할 수 있는 공공병원은 한국에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이달 초 한 원격의료 플랫폼 기업은 위와 유사한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며 인재 채용에 나섰다. 어지간한 지방의료원의 연 의료 수익을 훌쩍 넘기는 투자를 받는 기업은 역시 다르다고 해야 할까?

민간 조직의 채용과 고용 형태가 공공 조직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 '핵심전략산업'으로 지목된 '디지털 헬스'는, 팬데믹에서 그 가치를 입증하고도 제대로 대접 받지 못하는 공공의료와는 처지가 매우 다르다. '코로나 영웅'이라 추앙 받던 당사자들이 나서 호소하고 요구했음에도 보건소에도, 공공병원에도 의미 있는 변화가 있었다는 소식은 들을 수 없는 상황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코로나19 대응을 담당하며 월 평균 50시간 넘게 초과 근무를 해왔던 보건소와 공공병원 직원들이 일상에서 '심한 울분'을 느끼고 있다 대답한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하다(☞ 관련 기사 : <한겨레> 6월 13일 자 '추앙과 희생사이... 코로나 방역 의료인에게 남은 상처')

▲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인 지난 4월 25일 경기도 성남 분당구 SK바이오사이언스를 방문해 국내 1호 코로나19 백신 개발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우리는 이미 정부의 원격의료에 대한 헛된, 하지만 이유 있는 집착에 대해 오랜 기간, 여러 차례에 걸쳐 이야기한 바 있다. 정부의 '이유'가 바뀌지 않았으니 집착이 사라졌을 리 만무하다. 코로나19 유행이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도 건강과 생명을 위한 필수의료체계를 갖추는 일보다, 위기를 기회 삼아 디지털 헬스의 달콤한 과실을 꿈꾸며 시장과 기술을 과감하게 밀어줘야 한다는 강박에는 감탄이 나올 지경이다. 특정 정권의 문제만도 아니다. 원격의료를 비롯한 바이오산업에 대한 국가의 기대가 의료를 둘러싼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는 고질적인 경제성장 이데올로기에서 기인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모두의 위기를 기회 삼아 등장한 비대면 의료 플랫폼들은 한국인의 바쁘고 고단한 삶에 조용히 파고들고 있다. 당신이 있는 곳 어디서든 비대면 진료와 처방이 가능하다는 광고와 이용 후기를 보고 있노라면, 아파도 쉴 수 없고 병원 갈 시간마저 사치인 피로한 얼굴들이 떠오른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핸드폰 화면을 넘기며 서비스 가능한 병원과 약국의 목록, 비급여 진료 정보를 확인하는, 그야말로 '의료의 쿠팡화'라 부를 만하다.

의사를 만나지 않아도 괜찮다는 의문스러운 상품을 판매하는 비대면 진료의 그림자에는 3분이면 진료와 처방이 모두 끝나는 한국형 일차의료가 있다. 병원에 직접 가지 않고 간단한 통화만으로 원하는 약을 재깍 배달받는 "편리함"을 보며 한국 의료의 미래를 걱정하게 되는 이유다. 나날이 까다로워진다던 환자들이 기꺼이 비대면 진료를 받아들이는 현실에는 인간적 존중과 관계를 지워버린 채 사람을 돌보지 않는 의료의 적나라한 현실이 놓여있는 것 아닌가?

취약집단을 위한 원격의료 활성화를 모색하겠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것이 필수의료 인프라를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한밤중 열이 펄펄 끓는 아이를 안고 병원을 찾아 나서는 부모에게 비대면 원격진료가 무슨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사람들의 삶을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새벽배송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아래 지도가 보여주듯 기껏해야 국토의 16%에 지나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이 편리함보다는 생명과 직결되는 의료의 고유한 특성을 생각하면, 시장 논리로 작동하는 원격의료 새벽배송 서비스에서 상황이 나을 가능성은 요원하다.

이전 논평에서와 마찬가지로 기술과 혁신 그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코로나19 유행은 세계적으로 비대면 진료를 통한 의료접근성 확대 가능성을 보여준 중요한 계기였다. 대표적으로 영국에서는 코로나19 유행으로 의사를 만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비대면 원격진료를 통해 초음파 검사 없이 내과적 임신중지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긴급명령을 내리고, 더 나아가 그 효과성과 안전성도 확인했다.(☞ 바로 가기 : Effectiveness, safety and acceptability of no-test medical abortion (termination of pregnancy) provided via telemedicine: a national cohort study) 심지어는 유행이 다소 잦아들면서 긴급명령의 효력이 정지되자, 의사들이 직접 나서 여성들의 건강보다 정치를 우선시하지 말라는 성명을 내기까지 했다.(☞ 바로 가기 : BMA says the Government's decision to ban telemedicine abortion puts politics before women’s health) 기술이 새로운 조건을 만나 사람들의 고통을 줄이는 데에 기여한 모범 사례라 할 만하다.

이에 비해 한국에서 원격의료는 시공간적 제약을 극복하고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취약성을 고려하여 불평등을 줄이는 기술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인 적이 없다. 정권을 가리지 않고 등장해 투자 가치에 대한 기대가 주된 관심사인 모습에서 볼 수 있듯 그저 경제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상업적 가능성이자 기술적 낙관에 가깝다.

우리는 코로나 유행을 통해 필수적인 존엄과 돌봄을 보장하고 모두에게 필요한 의료를 제공하는 공적 체계의 중요성을 힘겹게 배웠다. 이 교훈을 선별적으로 활용하며 산업과 시장에 힘을 싣는 입장들에 맞서 거듭 주장한다. 건강과 의료를 위한 파격적인 투자와 혁신은 필요하다. 하지만 방향이 틀렸다. 의료인과 환자 사이 돌봄과 관계를 강화하는 기술로서의 원격의료, 공적 개발과 투자를 통해 불평등과 격차를 줄이는 혁신적 기술로서의 디지털 헬스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런 지향 안에서만 원격의료와 디지털 헬스가 제 가치를 보일 수 있을 것이라 감히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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