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언론의 자리' 치열하게 고민했던 언론인 오홍근 별세

[부고] '군사 정권' 비판했다 테러 당했던 언론인 오홍근

평생 언론의 '자리'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언론인이자 칼럼니스트 오홍근 초대 국정홍보처장이 9일 오후 4시경 서울대병원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0세.

고인은 전북 김제 출신으로 전주고등학교,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베트남 파병을 경험한 후 1968년 동양방송(TBC) TV 보도국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했다. JTBC 전신 TBC 앵커를 지내기도 했으나 전두환 신군부의 언론통폐합으로 인해, 중앙일보로 자리를 옮겼다. 중앙일보 제2사회부장, 중앙경제 사회부장, 중앙일보 논설위원, 중앙일보 판매 담당 이사 등을 지냈다. 현직 기자 시절 1976년 '비무장지대 르포'로 방송대상 기자상, 1979년 '농촌 특집'으로 기자협회 한국기자상, 1976 한국방송대상 보도부문, 1979년 한국기자상을 받았다.

고인과 관련한 유명한 사건이 '군 정보사 오홍근 회칼 테러 사건'이다. 고인은 중앙경제 사회부장 시절 월간중앙에 '오홍근이 본 세상'을 연재했고, 군사정권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담은 칼럼들을 썼다. 노태우 정권인 1988년 월간중앙 8월호에 '청산해야 할 군사문화'라는 칼럼을 게재한 후 1988년 8월 6일 출근길에 '회칼 테러'를 당해 허벅지가 찢기는 중상을 입었다.

당시 수사 기록 등에 따르면 고인의 칼럼에 불만을 품은 정보사 군인들에 의해 자행된 초유의 민간인인자 언론인 테러 사건이었다. 이 테러를 지시한 이규홍 준장과 권기대 참모장은 사건을 은폐했고, 당시 정보사령관이었던 이진백 육군 소장도 사건을 묵인 은폐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진백 소장은 이 사건으로 보직 해임 후 예편 조치됐다.

고인은 이 사건을 계기로 평생 한국사회에 내재돼 있는 '군사 문화'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계속하게 된다. 이 사건 이후 고인은 1988년 서울외신기자클럽 언론자유상, 1989 관훈언론상을 수상했다.

▲군 정보사로부터 테러를 당한 오홍근이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허벅지에 흉터가 선명하다.
▲1988년 9월 9일 오후 7시, 서울 종로4가 종로성당에서 열린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의장 문익환 목사) 주최 '군사문화 종식과 백색테러 추방을 위한 시민 공개 토론회'에 참석한 노무현 당시 통일민주당 국회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노무현사료관은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은 군사문화종식과 백색테러 추방을 위한 시민토론회를 갖고 오홍근 씨의 테러와 우리마당 피습사건의 진상규명, 군사문화 청산, 양심수의 전원석방 등을 위해 투쟁할 것을 결의했다"고 기록했다. ⓒ노무현사료관

고인은 1999년 3월 중앙일보에 당시 'DJ 저격수'로 불렸던 홍준표 의원을 비판하는 칼럼을 썼다가 몰고를 당한 후 스스로 중앙일보를 퇴직했다. 해당 칼럼은 당시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홍 의원이 이를 '정권의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한 데 대해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이후 고인은 김대중 초대 국정홍보처장과 공보수석비서관을 지냈다.

고인은 "군사 문화는 승리, 능률을 추구하는데 이 가치가 병영 밖에 나와서 일반 사회의 여러 가치와 충돌하면 반드시 탈이 나게 돼 있다"고 했다. 오 전 부장은 "군사문화는 기본적으로 '졸권'(卒權·졸병의 기본권)이 보장이 안 돼있다. 그런 문화가 오랫동안 군대 내에서 적폐를 쌓아왔다. 그런 문화가 법원까지 갔다"고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을 남겼다. 또 여전히 아른거리는 군사 문화 청산을 위해선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고인은 "언론이 제자리에 서서 제 구실을 할 때 군사 문화도 꼬리를 감추게 된다"며 "언론이 바로 서려면 정치권력, 자본권력뿐 아니라 '내가 조작하려고 하면 반드시 조작된다'라고 굳게 믿는 숙달된 여론 조작꾼들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고 했다.

고인은 <프레시안>에 '오홍근 칼럼',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 등 칼럼을 다수 연재했다. 저서로는 '각하 전상서'(1989, 황토), '칼의 힘, 펜의 힘'(2004, 산해), 칼럼집 '그레샴 법칙의 나라'(2012, 이담북스), '민주주의의 배신'(2014, 산해), '대통령 복도 지지리 없는 나라'(2017, 산해), '펜의 자리, 칼의 자리'(2018, 에디치미디어) 등을 남겼다.

유족은 부인 송명견씨(동덕여대 패션디자인과 명예교수), 아들 오광훈(스카이TV콘텐츠사업본부장), 오명훈(우티 CFO)씨, 며느리 박서영, 이석영 씨 등이다. 빈소는 서울은평성모병원이며 발인은 13일 오전 5시, 장지는 김제 선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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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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