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100' 모르고도 당당한 후보… 기후 무관심은 인권 침해"

[청년 없는 대선②] 김지윤 기후변화청년단체 긱(GEYK) 대표 인터뷰

그 어느 세대보다 높다는 청년세대 부동층 비율에 힘입어 그야말로 '청년대선'이 펼쳐졌다. 대선을 앞둔 각 정당이 선거 본부 내 청년조직을 창설하고, 2030 실무진을 영입하며, 청년공약을 쏟아냈다. 대선 후보들은 앞다투어 본인이 청년의 편이라고 말한다. 말로만 듣던 청년정치가 이번에야말로 실현될까.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청년들이 있다. 주요 정당과 후보들이 부르짖는 청년이슈를 두고 그들은 "한정된 담론"이라 말한다. 그들은 20대 대선의 대표적인 청년공약으로 떠오른 모 후보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이 성차별 구조 속 여성들을 배제하는 공약이라 지적한다. 수도권 중심으로 설계된 주거와 일자리 공약이 지역청년들을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 주장하며, 청년들의 당면과제인 기후위기 대응에 대해 대선 후보들이 무관심하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시작은 지난해 11월이었다. 정계와 언론이 상정한 청년보편의 이야기에서 소외된 각계각층의 청년들이 모여 2022대선청년네트워크를 출범했다. 청년임에도 청년대선에서 배제된 이들의 이야기를 각 후보들에게 직접 전하기 위해서였다. 11월 출범 기자회견 뒤, 참여를 희망한 청년단체는 순식간에 47개까지 불어났다.

단체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공론장을 열어 주목받지 못한 청년의제를 수집하고, 현장 참여자들의 의견을 반영한 정책요구안을 만들어냈다. 올 1월 △노동 △주거 △지역 △젠더 △기후 등 다섯 개 영역으로 구성된 정책질의서가 각 후보들에게 전달됐다.

4개 주요 정당 후보들 모두가 답변을 보내왔지만, 청년들은 아직 "만족스럽지 않다"고 말한다. 5개 분야 정책질의에 참여한 각 영역의 청년들을 <프레시안>이 만났다. 실종된 노동, 배제된 여성, 밀려난 기후 등 청년대선이 외면하고 있는 청년의 삶과 의제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대통령 될 사람이 무슨 '리백'이나 이런 것 모를 수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지난달 4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이렇게 말했다. 앞서 같은 달 3일 이뤄진 대선 후보 TV토론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RE100이 뭐죠"라 물은 일에 대한 일종의 해명이었다. 김지윤 기후변화청년단체 긱(GEYK) 공동대표는 그날 윤 후보가 보인 태도를 가리켜 "어이가 없다"고 지적한다. 특정 단어에 대한 특정 후보의 무지에 경악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무지에 당당할 수 있는 대선 국면의 분위기 자체가 더 절망스러웠다고 김 대표는 말한다. 그가 보기에 "모든 후보가 '기후는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정작 어떤 후보도 진정성 있는 관심을 보여주진 못하고 있다." 이는 그가 2022대선청년네트워크에 합류한 이유이기도 하다. 청년, 기후, 대선의 삼각관계에 대해 그에게 물었다. 인터뷰는 지난달 17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인근 카페에서 진행됐다. 

▲경복궁 인근의 카페에서 <프레시안>과 만난 김지윤 긱(GEYK) 공동대표 ⓒ프레시안(한예섭)

"청년은 기후위기 부추기는 기성 시스템의 피해자"

프레시안 : 2022대선청년네트워크(이하 대선청년넷)에서 '기후' 분야의 정책질의를 담당했다. 기후 의제를 하필 '청년'의 의제로 소환한 이유가 있는가.

김지윤 : 청년이 기후 '재난' 제1의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에 의한 기후재난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 된 지 오래다. 아니 이미 일어나고 있다. 2019년부터 2020년까지 6개월 간 이어진 호주 대산불은 대표적인 기후재난으로 꼽힌다. 2021년엔 미국에서도 초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2020년 당시 장마가 50여일 동안 이어졌던 일을 다들 기억하실 것이다. 산불이든 이상기후든 재난은 계속될 것이고, 우리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기후재난이 들이닥칠 세상에서 가장 오랫동안 살아남을 이들이 누구일까, 지금의 청년, 청소년들이다. 지금 배출한 이산화탄소가 20년 뒤엔 직격탄으로 돌아온다. 20년 뒤에도 세상을 살아갈 청년들에게 기후 문제는 삶 전반 인권의 문제다. 청년들은 그런 세상에서 고통 받으며 살고 싶지 않다. 그런 세상에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지 않고, 그런 세상을 후대에 물려주고 싶지도 않다. 재난의 피해자가 되고 싶지도 않고 재난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은데, 기성의 시스템 아래에선 그게 불가능하다. '그러니 시스템을 바꾸자'는 것이 청년 기후 의제의 기본 골자다.

프레시안 : 기성의 시스템이란 무슨 의미인가. 조금 더 구체적인 설명을 부탁 드린다.

김지윤 :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제도적 규제, 산업 구조의 전환, 혹은 개개인의 생활에 영향을 끼치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 등을 모두 포괄해 시스템이라 말씀드렸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선 개인의 노력과 시스템 개선이 모두 필요한데, 지금 우리 사회는 오히려 사회 시스템이 개인의 노력마저 좌절시키는 수준이다.

프레시안 : 시스템이 개인의 노력을 좌절시킨다?

김지윤 : 예를 들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개인이 행하는 대표적인 노력으로 비건(채식) 실천이 있다. 고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양의 온실가스가 배출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개인이 비건을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잔치국수 한 그릇을 먹어도 고기 육수가 들어가고, 김밥 한 줄에도 햄이 기본으로 들어간다. 비건 식당은 많지 않고, 비건 옵션을 자연스럽게 선택할 수 있는 식당도 드물다. 비건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 비건을 확산하려는 노력, 혹은 비건 인프라를 위한 제도적 페널티나 인센티브 등이 모두 부재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선 비건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려는 개인도 쉽게 지치고, 포기하게 된다. 시스템에 의한 개인의 좌절이다. 

플라스틱 배출량을 줄이려 해도 마찬가지의 상황에 부딪힐 수 있다.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줄여야 한다고들 말하지만, 여전히 많은 카페에선 플라스틱 빨대를 기본으로 비치한다. 아예 빨대를 음료에 꽂아주는 경우도 많다. 그게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서비스라고 여겨진다. 사회의 '기본값' 자체가 기후위기를 부추기는 셈이다. 

시스템을 바꾸자는 건 그 기본값을 바꾸자는 말이다. 규제를 통해서든 인센티브를 통해서든, 혹은 지역사회 캠페인을 통해서든 말이다. 빨대는 꼭 필요한 사람만 가져가게 하고, 고기가 없는 메뉴를 쉽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일, 그럼으로써 플라스틱 줄이기나 비건 실천 등을 더 용이하게 만드는 일, 그런 실천들을 더 확산하고 유도해내는 일이 바로 개인의 노력을 받쳐 줄 수 있는 '시스템 개선'이다.

"폭탄 돌리듯 다뤄지는 기후 의제… 아무도 나서지 않으려 한다"

프레시안 :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게 바로 정치일 것이다. 기후 의제에 대한 정치권의 인식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김지윤 : 청년들에겐 지금 당장의 당면 과제인 기후 의제가 정치권에선 먼 미래의 일, 나중의 일, 중요하긴 하지만 덜 급한 일 정도로 치부되는 듯하다. 모두가 '기후는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진정성 있는 관심을 보이는 이들은 거의 없다. 그러니 논의가 나아가질 못한다. 

프레시안 : 논의가 나아가지 못한다는 건 어떤 상황을 말하는 건가.

김지윤 : 2월 3일 1차 대선 후보 TV토론 때 "RE100이 뭐냐, EU택소노미가 뭐냐" 묻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발언이 화제가 됐다. 솔직히 말하면 어이가 없었다. 국내 기업의 RE100 참여 여부에 따라 당장 내년부턴 해외와의 무역장벽이 생길 수도 있다. EU택소노미에 원전이 포함 되느냐 마느냐, 포함되면 어떤 제약조건이 따르는가 등은 국내 원전 논쟁의 흐름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특히 윤 후보는 탈원전 백지화를 주창하시는 분 아닌가. 논의의 기본적인 재료도 모르고 의제를 다룬다? 그건 논의가 아니라 선언일 뿐이다. 선언만으로는 논의를 진행할 수가 없다.

이런 문제가 윤 후보 혼자만의 문제도 아니다. 대선 국면 전체로 무대를 넓혀봐도 기후 문제는 충분히 발화되지 않고 있다. 대선 후보들이나 유력 정치인이 참여하는 기후 미팅, 토론회 등을 우리나라에서 본 적이 있나. 작년 11월엔 기후대응 청년단체들이 모여 대선 후보들에게 기후 원포인트 토론회를 직접 제안하기도 했다. 그때 "알겠다" 대답한 후보님들, 막상 올해엔 다들 "일정상 어렵다"고만 이야기 하셨다. 후보들에게 기후 의제란, 일정 문제로 미루고 미루다 보면 결국 없어지는 의제인 셈이다. 급한 의제도, 표가 되는 의제도 아니다.

기후 의제를 가지고 후보들끼리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저 후보가 말하면 나도 말해야지, 좀 더 화제가 되면 그때 나서야지 할 뿐 아무도 '내가 먼저 말해야지' 생각하진 않는다. 기후 문제를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먼저 나서서 의제를 주도해야하지 않겠나. 진정성이 없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폭우와 폭염에 사람이 죽어나가도 지금 당장은 부동산 얘기, 일자리 얘기를 해야 표가 된다는 태도로 보인다.

▲대선 후보 토론에 참여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한국방송공사(KBS) 화면 캡처

프레시안 : 전반적으로 기후 의제를 충분히 다루고 있지 않아도, 기후 의제를 다루는 후보들 간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하지 않나.

김지윤 : 물론 그렇긴 하다. 대선청년넷의 정책질의에 대한 각 후보들의 답변에서도 차이는 드러났다.

가령 '기후 대통령'이 되겠다 공언하기도 했던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경우, 모든 답변 내용이 세세한 데다 탈석탄 방안에 대한 로드맵까지 제시하는 등 비전의 구체성도 확보한 모습을 보였다. 반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경우 다소 일차원적인 답변에 머물렀다. 기후위기를 에너지 문제 정도로만 바라보거나, 기후위기에 노출될 취약계층에 대해서도 별다른 고려를 하지 못하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경우 답변 내용만으로는 고평가를 받을 만 했다. 탈탄소 산업 전환, 석탄발전의 조기 전환 등 전반적인 정책 방향의 측면에서 기후대응에 대한 인식과 고민이 드러났다. 다만 각 답변의 구체성 부분에 있어선 감점 사항이 있었고, 무엇보다 10대 공약에 기후위기 관련 내용을 포함시키지 않는 등 진정성에 의문이 드는 행보를 보였다.

윤석열 후보는 "탄소중립 목표가 충분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며 기후대응과 관련한 '충분한 소통'을 강조했지만, 목표치가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진 못했다. 개인적으론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질문의 핵심을 조금씩 빗겨가는 답변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세대의 문제 넘어 기득권의 문제… 모든 취약계층이 기후위기의 피해자"

프레시안 : 기후위기를 둘러싼 논쟁은 이념이 아닌 세대 간의 갈등이라는 말이 있다. 기후 문제가 주류 의제로 다뤄지지 못하는 일도 기성세대가 미래세대의 위기에 공감하지 못하는, 일종의 세대문제로 보이기도 한다.

김지윤 : 반은 맞지만 반은 틀린 이야기다. 기성세대가 청년세대의 위기의식에 깊게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본다. 현재 대선 법정토론회의 6개 세부 주제엔 기후 관련 의제가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다. 주제 선정 의견 수렴 과정에서 40개 시민단체가 '기후위기에 대해 다뤄달라'고 건의했지만 결국 반영되지 않았다. 당시 기자회견을 진행하면서 선거방송토론위의 실무진들을 만났는데, '기후위기는 미래의 문제'이기 때문에 토론회 주제에서 빠질 수밖에 없었다는 말을 들었다. 기후위기를 바라보는 세대 간 관점의 차이를 새삼 실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후 문제를 특정 세대의 문제로 바라볼 순 없다. 사실 기후문제는 세대문제 보다 기득권의 문제에 가깝다.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가 취약계층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비장애인과 장애인, 부유층과 빈곤층, 심지어 남성과 여성에서도 '위기의 격차'가 발생한다.

프레시안 : 위기의 격차?

김지윤 : 기후변화로 폭염이 오면 누가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겠나. 온열질환에 취약한 노인, 주거환경이 열악한 주거취약계층, 에어컨을 틀지 못하는 빈곤층 등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다. 폭우도 마찬가지다. 2021년 폭우로 독일에 홍수가 들이닥쳤을 땐 레벤실페 요양원에 거주하던 12명의 장애인이 한꺼번에 사망했다. 성별 이야기도 언급했는데, 이슬람계 국가에선 여성의 부르카 착용이 폭우 상황에서의 사망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기후대응을 위한 산업 전환의 와중에도 피해는 취약계층에 집중된다. 내연기관 자동차가 전기차로 전환되면, 내연기관 자동차를 조립하던 수많은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는다. 작년엔 화력발전소의 폐쇄 소식에 삼천포발전본부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고용전환 대책의 부재 속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불안이 그 선택의 원인으로 꼽혔다. 나이, 장애, 성별, 빈부, 노동 등에 따른 사회의 여러 불평등 요소는 필연적으로 기후 불평등을 낳는다.

프레시안 : 세대의 문제가 아닌 모두의 문제고, 미래의 문제가 아닌 지금 당장의 문제라는 결론이다.

김지윤 : 그렇다. 결국 기후는 지금 당장의 문제고, 우리 모두의 문제다. 일자리, 주거, 지역, 젠더 등 다른 문제들이 그렇듯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번 대선이 중요하기도 하다. 20대 대통령이 2022년부터 앞으로의 5년 국정을 결정한다. 그 국정에 기후대응이 반영돼야 한다.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의 온도보다 1.5도 이상 상승하는, 소위 탄소예산(Carbon Budget) 소진의 시점까진 이제 6년 남았다.

▲2022대선청년네트워크의 '실타래 챌린지' 이미지. 대선 후보들에 대한 청년들의 요구 사항을 담았다. ⓒ2022대선청년네트워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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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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