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2 대응 낙제생' 폭스바겐이 '전기차 전환 우등생' 된 이유는?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자동차산업 ③ 탄소배출 규제와 코로나19가 가져온 극적인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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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자동차산업 ① 2035년 내연기관차 사라진다?…글로벌 자동차 업계 들썩이게 한 선언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자동차산업 ② GM, 폭스바겐, 현대차 모두 똑같다…전기차 공장은 여기에만 짓는다

2020년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자동차산업에 큰 획을 그은 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몇 차례의 글에서 얘기한 것처럼 코로나19 대유행,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 제고가 전기차·미래차로의 전환에 가속도를 붙이기도 했지만, 팬데믹이 오지 않았더라도 2020년은 분명히 중요한 전환점이 되어줄 시점이었다.

유럽연합의 CO2 규제

그건 바로 유럽연합(EU)의 자동차 CO2 배출 규제가 2020년부터 더 강화될 예정이었고, 이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막대한 벌금 부과를 예고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경영 컨설팅을 전문으로 하는 그룹인 'PA 컨설팅'에 따르면, 유럽 13개의 완성차 기업들이 CO2 배출을 줄이지 않을 경우 총 146.5억 유로, 한국 돈으로 무려 200조에 달하는 벌금을 부담해야 할 것이라 추산한 바 있다.

▲ 유럽연합 CO2 배출 규제에 따른 차량 판매 업체의 예상 벌금 규모. 각 업체의 CO2 배출량은 2018년 기준으로 계산한 것. (원자료 출처 : PA 컨설팅/auto, motor und sport).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위 표는 PA 컨설팅이 유럽에서 차를 판매하고 있는 업체들을 중심으로 2018년까지의 CO2 배출량에 기반해 유럽연합 규제 초과 배출량에 대한 예상 벌금 규모를 산정한 자료이다. (PA 컨설팅의 CO2 수치는 2018년 기준.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가 발간한 <독일, EU CO2 규제에 따른 벌금 이슈 부상>(2020.3.3.)에서 재인용.)

가장 많은 벌금을 물어야 할 것으로 예상된 곳은 폭스바겐으로 무려 45억 유로, 한국 돈으로 6조가 넘으며 영업이익의 32.4%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포드와 FCA, 르노닛산 역시 10억 유로 이상의 벌금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반대로 CO2 배출 기준을 잘 준수하고 있는 업체는 토요타로, 벌금 추정액이 1800만 유로(한국 돈으로 244억) 수준이었다.

토요타와 폭스바겐, 운명을 가른 코로나19

토요타는 2018년에 이미 거의 모든 내연기관차에 대해 하이브리드 버전 파생차량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이브리드 생산만으로 CO2 배출량을 충분히 줄일 수 있는 수준이었기에, 굳이 순수전기차로의 전환을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유럽연합의 강력한 규제에 새로운 전략으로 맞대응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하지만 폭스바겐의 입장은 달랐다. 이미 디젤 게이트로 막대한 소송비용과 벌금을 부담한 상황에서 또다시 유럽연합 CO2 규제로 영업이익 상당 부분을 벌금으로 납부하는 건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토요타처럼 하이브리드로 여유 부릴 처지가 아니었기에 폭스바겐은 이 단계를 생략하고 순수전기차로 직행하게 된다.

물론 당시 자동차산업 자본가들이 유럽연합 규제를 준수해야겠다는 의지가 충만했던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 규제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되 최종적으로는 로비를 통해 벌금을 유예시키거나 의미없는 수준으로 줄이면 된다는 생각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토요타와 같은 기업들은 훨씬 여유를 갖고 대응한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2020년 1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태가 발생했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찾아온 것. 감염병 공포로 국경이 봉쇄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며 자동차 생산·판매 절벽이 시작되었다. 이와 함께 기후위기에 대한 전지구적 인식과 대응이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토요타를 비롯한 상당수 자본가들의 기대와 달리 유럽연합을 비롯한 각국 정부의 CO2 규제는 오히려 더 강화되었고 그 집행도 엄격해지게 된다. 그때까지 말썽꾸러기로 인식되던 폭스바겐은 마지막 힘을 짜내 순수 전기차로의 전환에 역량을 집중하며, 현재 기존 완성차업체들 중 테슬라와 맞짱을 뜰 수 있는 가장 유력한 기업으로 변신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폭스바겐, 2030년 글로벌 판매량 50%를 전기차로

인류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팬데믹은, 배출가스 규제 대응의 모범생이었던 토요타의 전기차 전환 속도는 가장 늦어지도록 만들고, 반대로 낙제생이었던 폭스바겐 전환 속도는 가장 빨라지게 하는 역설을 낳았다. 지금 이 시간까지도 토요타가 출시한 순수전기차는 없다고 볼 수 있으며, 올해부터 BZ(Beyond Zero)라는 브랜드로 순수전기차를 출시할 계획이다.

반면 폭스바겐은 지난해 12월 9일, '플래닝 라운드 70(Planning Round 70)'이라는 새로운 5개년 투자계획(2022~2026년)을 발표했는데, 이 계획의 핵심은 현재 고용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기차로의 전환을 빠르게 가져간다는 것이었다.

▲ 폭스바겐 '플래닝 라운드 70' 프리젠테이션 중 전기차 판매량 비중 증대 계획.

이를 위해 2025년까지 2년마다 전기차 판매량 비중을 2배로 높이며(2021년 5~6% → 2023년 11% → 2025년 20%), 2030년에는 폭스바겐그룹 전체 자동차 판매량의 절반을 전기차로 채우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제시했다. (위 그림 참조)

또한 폭스바겐은 소프트웨어와 디지털 기술에 300억 유로 등 신기술에 총 890억 유로를 투자한다고 밝혔는데, 1년 전에 발표된 '2021-2025 계획(Planning Round 69)' 대비 무려 22% 증가한 규모이다. 폭스바겐 창사 이래 신기술 투자가 전체의 절반을 넘는 56%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토끼와 거북이? 개미와 베짱이?

폭스바겐의 발표가 있은지 불과 5일 뒤인 지난해 12월 14일, 토요타는 아키코 토요타 회장이 직접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하면서 전기차 전략을 언론에 전격 공개하는 행사를 가지게 된다. 불과 석 달 전에 빠른 속도로 전기차 전환을 이루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는데 다시 목표치를 대폭 상향해서 언론 브리핑을 진행한 것이다.

▲ 토요타의 2030년 배터리전기차와 수소연료전지차 판매 대수 목표 변화. ⓒ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작년 9월까지만 해도 토요타는 2030년에 배터리전기차와 수소연료전지차를 합해 200만 대 판매를 목표로 했으며, 여전히 전동화 차량 판매의 핵심은 하이브리드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석 달 뒤에 새롭게 설정된 목표는 2030년에 전기차로 350만 대 판매량을 채우겠다는 것이었다.

특히 2025년까지 15종, 2030년까지 30종의 전기차 모델을 출시할 예정이며, 럭셔리카 브랜드인 렉서스는 첫 전기차 RZ BEV를 필두로 2030년 연간 100만 대 전기차 판매를 목표로 하며 2035년부터는 100% 전기차만 판매하겠다고 발표했다.

▲ 토요타의 전기차 브랜드인 bz시리즈 차종별 계획. 아래 사진은 토요타의 전기차 생산계획을 발표하고 있는 아키코 토요타 회장(사진 출처 : 프리젠테이션 동영상 캡쳐).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석 달 만에 2배 가까운 목표 증가량 발표에 나선 것은 뒤쳐진 상황을 빨리 따라잡아야 한다는 조급함을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토요타는 출시할 차량의 디자인만 공개했을 뿐 성능이나 기술에 대해서는 깊은 언급이 없어서 어떤 수준의 전기차 기술력에 도달했는지 판단하기는 어려운 상태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자동차산업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향의 반전으로 끌고 온 것처럼, 아직 끝나지 않은 팬데믹의 효과는 또 어떤 변화를 끌어낼지 아직 알 수가 없다. 자동차산업의 지각변동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라는 진실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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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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