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보복' 말한 윤석열, 노무현·김대중의 이 말 떠올린 이유

[기자의 눈] 윤석열은 왜 '정치 보복'을 언급했나

미국의 정치 컨설턴트이자 악명 높은 로비스트 로저 스톤은 트럼프 대통령을 탄생시킨 '1등 공신'이다. '악명 높은(notorious)'이라는 가치 중립적이지 않은 표현을 수식어로 굳이 쓴 이유는 로저 스톤 스스로가 자신의 '악명'을 자랑스러워하기 때문이다.

노골적인 혐오와 갈라치기를 특징으로 하는 그는 2015년 '힐러리를 감옥으로(lock her up)' 구호를 고안해 냈다. 민주당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 재직 시절 개인 개정으로 공적 이메일을 주고 받았다는 스캔들이 터지자, 약삭빠른 로저 스톤은 '힐러리를 감옥으로' 티셔츠를 제작하고 소수의 추종자들과 도심을 거닐면서 캠페인을 벌였다. 그의 행동을 중계해 준 것은 자극적인 내용을 선호하는 언론이었다. 작은 말썽도 언론을 타고 지지자의 입길에 오르내리면 거창한 캠페인이 될 수 있다. 그는 미디어의 속성을 꿰뚫고 있었다. 처음에 사람들은 '무슨 황당한 소리냐', '대중적 지지를 받긴 어려울 것'이라고 비웃었지만,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면 특검 수사를 해 힐러리를 감옥에 넣겠다"고 공약했고, 지지자들은 열광했다. 그는 당선됐다. 왜 트럼프가 당선됐는지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비슷한 캠페인이 한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지난 8일자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 초기처럼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를 할 건가"라는 질문에 "해야죠. 해야죠. (수사가) 돼야죠"라고 말했다.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인 "대장동 사건을 재수사 해야 한다고 보나"라는 질문에 "재수사가 되지 않겠나. 정신이 제대로 박힌 검사들이 수사한다면, 유동규씨가 다 했다고 볼 거냐는 거다. 권한을 가진 사람, 의사결정 할 수 있는 사람이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인데"라고 말했다. 대장동 사건은 수사도 끝나지 않았는데, 벌써 '재수사'를 언급했고, 검찰총장 지명권을 눈앞에 둔 그는 특정인을 지목했다. 나아가 "A 검사장에 대해 이 정권이 한 것을 보라. 이 정권에 피해를 많이 입어서 중앙지검장 하면 안 되는 것이냐"며 대한민국 대선 최초로 '대통령-서울중앙지검장 러닝메이트'를 공언했다. 검찰총장 출신의 대선 주자가 직접 '정권 수사'를 말하고, 다음 서울중앙지검장을 특정한 경우가 지금까지 단 한번이라도 있었나 모르겠다. 

게다가 그는 "(문재인 정권) 수사 해야죠"라고 말해 놓고 "그러나 대통령은 (수사에) 관여 안한다"고 했다. 당선이 전제가 되긴 했지만, 이미 수사 개시가 사실상 지시됐는데 '관여 안한다'고 하는 것은 모순과 다름없다. 이런 발언을 듣는 전국의 대한민국 검사들은 어떤 생각이 들까? 사실 수사를 할지 안할지 여부는, 대통령이 될지 안 될지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라 예언을 하기도 어렵고 할 수도 없지만, 문제는 그 말을 한 사람들의 '태도'다.

이준석 대표는 "정권을 막론하고 부정한 사람들에 대한 수사를 공정하게 진행했던 우리 후보가 문재인 정부도 잘못한 일이 있다면 성역이 될 수 없다는 원칙론을 이야기한 것에 대해서 청와대가 발끈했다"고 오히려 역정을 냈다. "한국 문화를 자국 문화인양 왜곡하고 스포츠의 공정성을 무너뜨리는 중국에는 한마디도 못하면서 야당에게만 극대노 하는 선택적 분노는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뜬금없이 '베이징 올림픽 편파 판정' 논란도 소환했다. 여권의 태도를 준엄하게 꾸짖으며 '중국'을 걸고 넘어진 건데, 문재인 정권 수사와 중국은 아무 관계도 없다. 그런데 이준석 대표는 일부러 중국을 자신의 메시지에 걸쳐 놓는다. 윤석열 후보가 2차 TV토론에서 언급한 "(이재명은) 친중"이라는 말도 오버랩된다. 

윤석열 후보 발언 이후 '펨코'나 '엠엘비파크' 등 윤석열 후보 지지 성향이 강한 보수 커뮤니티에서 '문재인 감옥' 키워드를 검색하면 윤 후보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감옥에 보내야 한다'는 의견들이 상당수 검색된다. 윤석열 후보의 노림수가 어떻든 간에, 그의 메시지는 지지자들에게 울림을 주고 있는 것 같다. 로저 스톤은 '금기'를 건드리고 '선'을 넘어선 네거티브로 정치적 수확을 거둬들였다. 로저 스톤 40년 정치의 정수이자 로저 스톤 정치의 원동력은 '혐오'이고, '혐오'는 정치판에서 장사가 잘 되어 왔다. 이준석 대표가 윤석열 후보를 옹호하며 뜬금없이 "중국에는 한마디도 못하면서"라는 말을 소환한 것도 다 이유가 있을 게다. 

▲넥플릭스 다큐멘터리 <킹메이커 로저 스톤> 중 ⓒ넷플릭스

윤석열 후보의 발언 수습 과정은 더욱 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윤 후보는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인 적폐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오늘은 그 얘기는 안 하는 게 좋겠다"고 말하면서도 "저 윤석열 사전에 정치보복이라는 단어는 없다", "제가 당선되면 어떤 사정과 수사에도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는 뜻에서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는 말씀을 지난해 여름부터 드렸다"고 말한다.

이 해명에서 떠오른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이 있다. 노 전 대통령은 2008년 10월 25일 퇴임 후 그가 소통을 위해 만든 민주주의2.0 홈페이지에서 자신의 필명인 '우공이산'의 이름으로 이런 글을 올린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저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저에게 '정치 보복은 하지 않겠다', '전직 대통령 문화를 새로 만들겠다'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가 그런 화제를 올린 일도 없는데 먼저 말을 꺼내서 했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차례 반복해서 말했습니다. 저는 '정치 보복을 당할 일을 한 일이 없는데...' 생각하면서도 고맙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이 대통령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혼란스럽습니다. 이런 질문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만, 기록이나 남겨 두고자 글로 올려 둡니다."

당시엔 한미쇠고기협정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광화문 촛불집회 열풍이 꺾이던 시점이었고, 여권(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은 촛불 시위의 배후 중 하나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목했었다. 또 당시 여권은 노 전 대통령이 청와대 기록물을 무단으로 유출했다며 정치적 공격을 강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해 12월, 박연차 씨가 구속되면서 '박연차 게이트'의 서막이 올라간다. 그 이후 벌어진 일들은, 이준석 대표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 거다.

정권 교체기에 있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과의 대화를, 노 전 대통령이 하필 그 시점에 기록으로 남긴 정확한 이유는 알수 없다. 그러나 몇가지 추정은 가능하다. 묻지도 않았는데 '보복은 하지 않겠다'고 거듭 말한 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 주변에 포진해 있던 '정치 보복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들, 그런 주장을 한 지지자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는 정치 보복을 하지 않겠다'는 말을,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이 전 대통령이 꺼낸 이유를 짐작하기 어렵다.

지금도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윤석열 후보는 '문재인 정권 적폐를 수사하겠다'고 한 뒤, '내 사전에 정치 보복'은 없다고 했다. 윤 후보가 이 말을 하기 전에, '정치 보복'이라는 말을 꺼낸 이는 없었다. '보복하지 말아주세요'라고 호소한 사람도 없었다. 보복이라는 레토릭에 앞서 문재인 정부가 '보복' 당할 일을 한 것인지도 현재로서는 알기 어렵다. 만약 '문재인이 보복 당할 일'이라고 한다면 검찰총장에 윤석열 후보를 발탁했으면서도 검찰총장의 수사에 비판을 했다는 수준, '검찰총장 것'이었을 검찰 인사에서 검찰총장의 의지에 반하는 인사를 한 일들이었을 수 있겠다. 그런데 그 일들이 '수사를 당할' 만한 일들이었을까? 문재인 정부의 서울중앙지검장은 윤석열 검사였고,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은 윤석열 검사였다. 

생각을 연결하다보면 남는 게 몇 가지 있다. 윤석열과 이준석의 말에서는 지지자를 결집시키기 위한 '로저 스톤'식 화술이 겹쳐 보인다. 윤 후보가 먼저 꺼낸 '문재인 정권 수사' 발언에 대해 스스로 '정치 보복은 없다'고 자문자답한 것도 영 께름칙해 보인다. 

대한민국의 '정치 보복사'가 있다. 이 역사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이름을 지우기가 어렵다. DJ는 박정희 정권에 대항해 1971년 대선에 나섰다가 90여만 표 차이로 낙선했다. 위협을 느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듬해인 1972년 유신을 선포하고 독재 체제를 완성했다. 이후 1973년 8월 8일 해외를 돌며 박정희 독재를 비판하던 김대중이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한국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납치된다. DJ는 죽을 고비를 넘긴 후 129시간 만인 8월 13일 동교동 자택으로 귀환한다.

김대중은 이후 외신과 인터뷰에서 "이 사건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용서할 것이다. 정치 보복은 나에게서 끝나야 한다. 더 밝은 미래를 위해 어떠한 보복도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사형을 선고(김대중내란음모 사건) 받을 때 최후 진술에서도 "내가 죽더라도 다시는 이러한 정치 보복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유언으로 남기고 싶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실제로 자신의 말을 실행했다.

그런데 정치 보복의 유령은 여전히 한국을 배회하고 있다. 심지어 '캠페인'으로 기능하며 특정 후보의 지지자들 사이에서 '유행어'처럼 돌고 있다. 혹자들은 "보수 결집을 위해 잘 한 발언"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궁금해진다. 윤석열의 '문재인 정권 수사' 발언에 대한 조언은 누가 했을까. 주변에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일까. 기획된 것일까, 아니면 윤석열 후보의 소신일까. 한국 대선이 2015년 트럼프의 '갈라치기' 대선 판이 돼 가고 있다.

(이렇게 칼럼을 쓰면 '국민의힘 대표자 이준석'은 프레시안을 또 선관위에 제소할 지도 모르겠다. 예상이 맞을까? 이준석 대표는 프레시안 칼럼에 대해 최근 두 차례나 선관위에 제소한 적이 있다. 물론 두 번 다 '기각' 처리를 당했지만. 언론 자유를 외치는 국민의힘이 현재 하고 있는 행태다. 물론 프레시안은 이준석 대표의 선관위 제소를 언제든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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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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