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적대적 대립' 자양분 삼은 30대 당대표, 충격인가 허상인가?

돌풍의 주역 이준석, 한국판 트럼프 현상?

국민의힘 6.11 전당대회는 결국 '이준석 돌풍'의 현실화로 막을 내렸다. 하나의 '현상'으로까지 지목되는 이 바람의 정체는 뭘까.

1985년생 30대 당 대표의 등장은 그 자체로 정치권, 특히 보수정치 세력에게는 혁신에 가까운 충격을 안긴다. 단순히 연령이 젊어진 것뿐이라 해도, 당을 대표하는 얼굴이 5·60대 중장년에서 30대 청년으로 바뀐 것은 분명 주목할 일이다.

즉 정치권과 언론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준석 현상의 요체는 결국 '새로움'이다. 이상돈 전 의원은 "나경원·주호영 등 기성 정치인들에 대해 국민들과 국민의힘 지지자들이 지긋지긋함을 느낀 것"이라고 '현상'의 한 원인을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정의당 등 범진보진영 정치인들도 이 지점에 주목해 '이준석 돌풍'에 감탄하거나 때로는 부러워하기도 했다. 여권 대선주자 중 선두를 달리는 이재명 경기지사는 "실망스러운 구태정치를 걷어내고 국민주권주의가 존중되는 정치를 해달라는 열망이 응축된 것"이라고 평했다.

이 지사는 그러나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 열망이 민주적 절차로 반영되어야 하고, 적대와 분열, 대립을 정치적 에너지로 삼아서 가면 극우 포퓰리즘이 되기에 그걸 조심했으면 한다"고 그는 부연했다.

그저 유력한 정적에 대한 악담일 뿐일까. 당장 국민의힘 경선 과정에서도 이준석 신임 대표에 대해 비슷한 우려가 쏟아졌다. 적대적 정치를 자양분으로 성장한 '트럼프 현상'의 한국판 재현이 이준석 돌풍의 정체가 아니냐는 의심이었다. 트럼프의 무기가 반이민 정서였다면, 이 대표에게는 안티-페미니즘(反여성주의)이 있다.

이 대표는 2018년 겨울 즈음부터 스스로 '2030 남성'의 대변자를 자처하며 안티페미니즘을 정치적 동력으로 삼아 왔다는 비판을 들어왔다. 2019년 남성잡지 <맥심> 8월호 인터뷰에서는 스스로 "반페미니즘의 선두 주자"를 자임했다.

이번 전당대회 과정에서도 그는 숱한 논란성 발언을 남겼다. 올해 5월 이후에만 그가 언론 인터뷰, SNS, TV토론 증에서 한 문제성 발언들을 모아보면 다음과 같다.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 '있다면' 당연히 보정해야 한다. (그러나) 일각의 문제 제기는 너무 비현실적이다. 예를 들어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을 보면서 전혀 공감이 안 됐다. 해당 책 작가는 '자신이 걷기 싫어하는 이유가 여성이 안전하지 않은 보행 환경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는데 망상에 가까운 피해의식 아닌가."

"여성의 기회 평등이 침해받는 이슈가 '있다면' 얼마든지 목소리를 낼 것이다. 다만 특정이 가능한 이슈여야 한다. 2030 여성들이 소설과 영화 등을 통해 본인들이 차별받고 있다는 근거 없는 피해의식을 가지게 된 점도 분명히 있다. 막연히 여성이 차별받고 있다는 정도로는 안 된다."

"85년생 여성이 변호사가 되는 데 있어서 어떤 제도적 불평등과 차별이 있었는지? 그게 뭔지 이야기하고, 그런 차별이 존재한다면 그것을 해결하면 되는 거 아닌가? 없으면 망상인 거고."

(여성혐오·성착취 범죄 비판에 대해) "개별 범죄를 끌어들여서 특정 범죄의 주체가 남자니까 남성이 여성을 집단적으로 억압·혐오하거나 차별한다는 주장", "안전·자살·디지털성범죄에 대해 남녀 구분이 필요한 게 뭔가? 시대착오적인 페미니즘 강요하지 말라."

(여성할당제에 대해) "2030 세대는 성별에 따른 기회의 불평등을 겪지 않았다. 그래서 과거의 유산인 할당제와 불합리한 가산점제를 재조정하고 공정한 경쟁의 가치를 살리자는 말은 대체로 합리적이다. (…) 민생이 왜 무너졌는가? 유은혜 장관이나 김현미 전 장관은 그 분야 전문가가 아니다. 추미애 전 법무장관은 법률가지만 검찰개혁이라는 과제를 시행할 자질은 없었다. 이들은 내각의 30%를 여성에 할당하겠다는 할당제의 수혜자다. 민생이 급한 상황에서 최고 실력자를 기용하지 않고 수치적 성 평등에 집착했으니 불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온 것."

이런 이 대표를 겨냥해 '트럼프'를 처음 호명한 이는 국민의힘 초선 김은혜 의원이었다. 김 의원은 예비경선을 앞둔 지난달 23일 SNS에 쓴 글에서, 이 대표가 '여성·청년 할당제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 데 대해 "할당제를 제대로 시행해 본 적도 없는데 폐지론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라며 "모든 할당제를 폐지하겠다는 식의 '트럼프 화법'으로 갈라치기를 하면 불필요한 논란만 증폭된다"고 했다.

김 의원은 이튿날 불교방송(BBS)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불공평한 건 청년 모두가 겪고 있는 아픔인데 '남성과 여성, 누가 더 고통스럽냐' 이런 질문을 던져서 '젠더 갈등'을 부각시키는 것은 본질을 희석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본경선 과정에서는 나경원 전 원내대표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나 전 원내대표는 같은달 31일 밤 TV토론에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이 전 최고위원의 할당제 폐지 주장을) 트럼피즘과 비슷하다고 하기도 했다"며 "(트럼프는) 백인 하층 노동자의 분노를 이민자 혐오로 치환했고 그것은 올바른 해결책이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준석 돌풍과 2016년 미국의 트럼프 현상은 구조 면에서 비슷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시 미국은 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의 탄생과, 그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한 각종 개혁 정책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도 자체적 한계와 보수층의 반발이 겹치면서 중산층 이하 미국 민중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데는 실패했고, '고액 기부금' 논란 등을 겪으며 오바마의 민주당도 기성 정치인들과 다를 바 없다는 실망감만 남겼다. 그에 대한 불만은 좌·우익과 정치권·시민사회에서 각각 티파티 운동, 월스트리트 점령(OWS) 시위, 민주당의 샌더스 돌풍과 공화당의 트럼프 현상으로 나타났다.

특히 트럼프는 '멕시코 국경 장벽' 발언, 메디케이드와 푸드 스탬프(식료품 쿠폰) 등 이주민에 대한 복지정책 축소 등 극우적 발언을 일삼았고, 오바마 대통령에 대해 '성적이 나빴지만 흑인이어서 하버드대에 입학했다'고 인종주의적 공격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하층 백인들은 트럼프에게 열광했다. 특히 '러스트 벨트'로 불리는 쇠락한 산업지대의 백인 노동계급은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 가운데 하나였다. 산업 침체로 인한 일자리 부족 등 이들이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을 '이민자들 탓'으로 돌리며, 이민자들의 미국 유입을 막고 이민자들에게 주어지는 복지 혜택을 줄여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하자는 주장이 먹힌 것이다.

한국에서, 20년째 계속되는 '청년 실업'과 군 복무로 인한 박탈감을 여성할당제 반대로 돌리는 것도 이와 유사한 면이 있다. 나아가 '여성 차별이 존재하느냐', '30대 이하는 불평등을 겪지 않았다'고 현실을 부정하는 발언을 공적 영역에서 거침없이 하는 정치인이 등장한 것도 분명 '새로운' 일이다.

미국 정치 전문가인 안병진 경희대 교수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이준석 돌풍과 트럼프 현상은 유사성이 있다. 트럼프가 이른바 '리무진 리버럴'에 대한 반발, 백인 저소득층의 (페미니즘, 동성애자 인권운동, 유색인종 우대정책 등의) '정체성 정치'에 대한 반발·백래시를 활용한 것처럼, 이준석도 기존의 '강남 좌파'에 대한 불만과 남성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느끼는 박탈감을 활용한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안 교수는 "한국은 미국처럼 여성에 대해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 정치적 소수자 우대조치)'이 강한 나라가 아니다"라며 "그런데도 (남성들은) 박탈감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안 교수는 앞서 <경향신문> 기고에서는 이준석 현상을 "진보진영 내 주류들이 가진 한계를 보여주는 거울"로 규정하며 이 대표가 △진정성의 표현 △도전적 자세 △실용주의 △권력 의지 등 4가지 덕목에서 기성 진보진영 정치인들을 앞서가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안 교수는 위 4가지에 더해 이준석 현상의 5번째 요인으로 "능력주의 정치학"을 꼽았다. 그는 마이클 샌델을 원용해 능력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원래 능력주의는 부족주의(tribalism)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화(한 것)"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윤철 경희대 교수도 "'분노의 정치'를 이용했다는 점은 트럼프와 유사한 점"이라며 "트럼피즘의 한국판(版)이 이준석의 안티페미니즘"이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트럼프는 그나마 실업자가 된 백인 노동자 계층을 바탕으로 (트럼프 자신과) 사회적 기반 사이의 연결점을 만들었지만, 이준석의 안티페미니즘 논쟁은 사실 엘리트들 사이의 호사가 정치"라고 차이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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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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