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이준석은 트럼프…혐오의 정치 멈춰야"

주호영도 "실력주의, 승자에게만 공정한 경쟁은 정치가 아니다"

국민의힘 6.11 전당대회에서 여성·소수자 불평등 시정 조치에 대한 찬반이 뜨거운 의제로 떠올랐다. 안티페미니즘(反여성주의) 및 소수자 우대조치 반대 언행으로 논란을 빚은 이준석 전 미래통합당 최고위원이 여론조사에서 선전하며 다른 주자들을 앞서 나가고, 이에 나경원·주호영 전 원내대표 측이 집중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면서다.

나 전 원내대표는 1일 MBN TV를 통해 방송된 국민의힘 대표 선거 2차 토론회에서 "오히려 청년할당제를 부인하면 청년 정치 참여가 제한된다"며 "저는 이 전 최고위원을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 비유한다. 제가 걱정하는 것은 분열의 정치"라고 했다.

지난 2016년 미 정치권에 돌풍을 일으킨 트럼프 전 대통령은 견고한 민주-공화 양당 체제를 뒤흔든 이단아였으나, 그의 정치적 선전은 부분적으로 반이민주의와 반여성주의 등 미국 유권자들의 혐오·차별 정서를 자극한 데 기인했다는 비판이 많다.

나 전 원내대표는 이날 SNS에 쓴 글에서도 "이 후보는 지금이라도 '혐오의 정치'를 멈춰야 한다. 그것은 국민을 편가르고 쪼갠 문재인 정권과 다를 바 없는 잘못된 정치"라며 "이 후보의 혐오의 정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나 전 원내대표는 "어느 계층이든 세대든 사회적 불만과 분노가 있고, 정치는 그것을 해결하고 갈등을 치유할 책임이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거센 비판을 받은 이유는 특정 계층의 분노를 혐오로 돌려서 정치적으로 악용했기 때문이다. 이 후보가 정치적으로 악용한 대상이 바로 '이대남(20대 남성을 일컫는 신조어)'이었다. 대상만 다를 뿐, 그 유형은 매우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이 전 최고위원이 이날 토론회에서 "저에게 혐오 이미지를 덧씌우려 한다. 제가 한 혐오발언이 있다면 하나 소개해 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과거 이 전 최고위원은 한 신문 인터뷰에서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 '있다면' 당연히 보정해야 한다"면서 "(그러나) 일각의 문제제기는 너무 비현실적이다. 예를 들어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을 보면서 전혀 공감이 안 됐다. 해당 책 작가는 자신이 걷기 싫어하는 이유가 '여성이 안전하지 않은 보행 환경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는데 망상에 가까운 피해의식"이라고 말해 큰 논란을 일으켰다.

이 전 최고위원은 또 "여성의 기회 평등이 침해받는 이슈가 '있다면' 얼마든지 목소리를 낼 것이다. 다만 특정이 가능한 이슈여야 한다"며 "2030 여성들이 소설과 영화 등을 통해 본인들이 차별받고 있다는 근거 없는 피해의식을 가지게 된 점도 분명히 있다. 막연히 여성이 차별받고 있다는 정도로는 안 된다"고 하기도 했다.

이 전 최고위원은 또한 방송 인터뷰와 SNS 등을 통해서도 "85년생 여성이 변호사가 되는 데 어떤 제도적 불평등과 차별이 있느냐"고 성차별의 존재를 부인하고, 여성혐오·성착취 범죄 비판에 대해서는 "개별 범죄를 끌어들여서 특정 범죄의 주체가 남자니까 남성이 여성을 집단적으로 억압·혐오하거나 차별한다는 주장"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여성이 겪는 불평등이 있다면'이라는 가정법을 거듭 사용한 것은 여성 차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는 해석을 낳았고, 이에 대한 여성들의 시정 요구와 성범죄에 대한 여성의 공포를 "망상", "근거없는 피해의식"으로 치부한 것은 특히나 문제 소지가 큰 발언이었다. 여성 공직할당제를 "수치적 성평등에 (대한) 집착"이라고 비판하는 일간지 기고를 하기도 했다.

나 전 원내대표는 이 전 최고위원의 이런 반여성주의 발언은 거론하지 않고, 이 전 최고위원이 과거 바른미래당 시절 안철수 당시 대표에게 사석에서 막말을 해 징계를 받은 일을 꺼냈다.

오히려 나 전 원내대표는 "이 후보가 그 동안 20대 남자들의 분노를 사실상 갈등으로 유발하고 그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으로 인기를 얻게 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면서도 "저도 20대 남성 '역차별'에 대해 공감한다"고 하기도 했다. 나 전 원내대표는 "20대 남성에 대한 '역차별' 공감을, 혐오를 부추기는 쪽으로 가는 것은 맞지 않다. 그 분들의 힘든 부분, 역차별을 어떻게 본질적으로 해결할 것이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이 전 최고위원의 정치 행태를 비판하기 위해 꺼낸 말이기는 하나, 남성 '역차별'의 존재를 인정하고 공감한다고 한 것은 여성할당제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입장과 모순된다는 지적이 예상된다. 그는 전날 성차별 시정 요구와 그에 대한 반발을 사회 일각에서 '젠더 갈등'이라는 용어로 지칭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 쓰기도 했는데, 이는 인종차별을 '인종 갈등'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본질에 부합하지 않는 언어 사용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다만 나 전 최고위원은 "한 달 동안 '젠더 갈등'을 유발하며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와 뜨거운 논쟁을 벌인 것을 알고 있다"고 이 전 최고위원에게 지적하며 "그 과정에서 20대 남자들의 분노를 '극단적 페미니즘'과 연결하지 않았느냐"고 맥을 짚기도 했다.

주호영 전 원내대표도 가세했다. 주 전 원내대표는 "보수의 핵심 가치가 자유와 공정인 것은 맞는데, 이 후보는 너무 '실력주의·엘리트주의 공정'만 강조하는 것 같다"며 "그 안에서 보면 공정한 것 같지만 큰 틀로 보면 전체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그런 차별 현실에서는) 모든 게 실력·성적·머리로만 되는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주 전 원내대표는 이날 SNS에 쓴 글에서도 "실력주의, 승자에게만 공정한 경쟁은 정치의 목적이 아니다"라고 이 전 최고위원의 '할당제 폐지' 주장을 겨냥했다. 주 전 원내대표는 "세상 가장 공정한 룰은 '이기면 살고 지면 죽는다'는 검투사의 룰일 것이나 우리가 추구하는 사회는 글래디에이터 사회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주 전 원내대표는 "글래디에이터 사회는 적자생존, 승자독식, 인기영합의 원칙으로 작동하지만, 우리 보수정당은 공동생존, 패자부활, 가치부합의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 대선 전략과 관련해서는 각 주자 측이 기존 입장을 이어갔다. 나·주 두 전직 원내대표는 야권 통합과 후보 단일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통합론에 힘을 실었고, 이 전 최고위원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타고 말고가 왜 버스 운행의 중요 요인인가"라며 자강론에 무게를 뒀다.

O·X 퀴즈 형식의 토론에서는 '당 대표가 되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을 요청하겠다'는 질문에 나·이 두 후보가 'O'를, 나머지 세 후보가 'X'를 들었다. '당 대표가 되면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을 다시 모셔오겠다'는 질문에는 이 후보만 'O'를 들었다. '나는 윤석열 전 총장과 어떻게든 연락하고 있다'는 질문에는 주·나 두 후보가 'O'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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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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