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의 강'에 빠진 국민의힘, '도로 영남당'으로?

'탄핵' 권성동 1차 탈락 이변, '친박' 김태흠 선전

국민의힘이 새 원내대표로 김기현 의원(4선, 울산 남구을)을 선출했다. 4.7 재보궐선거를 승리로 이끈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막을 내린 이후, 내년 대선을 책임질 새 지도부를 구성 중인 국민의힘의 첫 발이 '영남당'으로 향했다.

4명의 원내대표 후보 중 유일한 영남권인 김 의원이 '도로 영남당은 안 된다'는 비토론을 뚫고 낙승을 거둔 파장이 간단치 않을 전망이다.

김 의원은 30일 오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1차 투표 1위에 이어 결선투표에서도 과반 득표를 하며 당선자가 됐다. 국민의힘 101명 의원 전원이 참석한 1차 투표에서 그가 얻은 표는 34표, 결선투표에서는 66표였다.

당선 직후 기자들과 만난 김 의원은 '영남당' 논란에 대해 "특정지역 편중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표현이 있을 뿐인데, (영남당은) 그것을 왜곡한 것"이라며 "주요 지지기반이 영남이라고 영남당이라고 하면 안 된다"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호남, 충청, 수도권, 강원, 제주의 좋은 인재들을 발굴하고 대선 국면에 전면 배치해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의 도리"라며 "그런 측면에서 전국정당화는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했다.

그러나 당 대표 선거에도 영남권 인사들이 줄줄이 출마 채비를 갖추고 있어 국민의힘 지도부 '투톱'이 영남에서 배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원내대표와 당 대표에 모두 영남 지도부가 꾸려질 경우,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확장성의 한계에 다시 봉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영남 원내대표가 선출된 만큼, 당 대표 선거에선 영남권 후보들이 되레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김 의원이 일찌감치 경선 구도에서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었던 만큼, 그의 당선이 파란으로 평가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투표함이 열리면서 김 의원과 함께 '2강'으로 꼽히던 권성동 의원이 1차 투표에서 탈락하고 김태흠 의원이 결선투표에 진출하는 이변이 연출됐다. 4파전으로 치러진 1차 투표 결과, 김기현 34표, 김태흠 30표, 권성동 20표, 유의동 17표(다점자 순)이었다.

4.7 재보선 승리 후 국민의힘 내에서 과거의 계파 구도가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친박계를 대표하는 김태흠 의원이 예상을 뒤엎고 약진을 펼친 것이어서 주목을 끌었다.

김태흠 의원은 경선 초반부터 대여 강경 투쟁을 주장해 왔다. 그는 이날 결선투표에 진출하자 감격을 억누르지 못하는 목소리로 "진심으로 고맙다"며 "의원들이 저를 결선에 올려주신 것은 자유 대한민국을 함께 지키자는 애국심이고, 문재인 정권과 사생취의·사즉생의 각오로 싸우겠다는 각오"라고 주장했다.

유일한 친박계 후보인 김태흠 의원이 2위 득표를 한 것은 옛 친박 그룹의 여전한 저력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가 결선투표 지지 호소 연설에서 '자유 대한민국'이라는 구호를 언급한 것도 최근 황교안·나경원 전 대표의 정치 재개 움직임과 맞물려 주목을 받았다.

이는 선두권으로 평가받던 권성동 의원이 1차 투표에서 20표에 그쳐 탈락한 것과 맞물려 여러 해석을 낳았다. 권 의원은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당시 탄핵소추위원장을 맡았던 이력이 '괘씸죄'에 걸린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날 토론회에선 김태흠 의원이 이 문제를 들고나와 쟁점화를 시도했다.

김태흠 의원은 "탄핵은 우리에게 정말 아픈 역사이고 탄핵의 강을 건너 미래로 가야 하는 상황인데, 권 의원이 인터뷰에서 '탄핵 찬성 이력은 약점이 아닌 강점이다. 초선들도 같은 생각'이라고 한 것을 보고 불편해 하는 선배·동료 의원들이 계신다"며 "그러면 탄핵의 반대편에 있던, 당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적폐이고 정치적 약점이 된다는 것이냐"고 공격했다.

권 의원은 "우리 당 구성원 대부분은 더 이상 탄핵을 왈가왈부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고 '탄핵이 잘못됐다'는 주장에는 대부분의 의원이 동의하지 않는다는 차원에서 말한 것"이라면서 "그 부분을 계속 거론하는 것, 탄핵의 당부(當否)를 논하는 것 자체가 당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탄핵은 역사의 평가에 맡기고, 우리 당은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잘못을 인정하는 솔직한 용기가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했다.

권 의원이 경선 과정 전반에서 강경 보수 중심의 진영 정치에서 탈피한 혁신·중도 노선을 주장하며 "'김종인 비대위'의 혁신 노력을 지속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한 점도 호응을 얻는데 실패했다.

권 의원은 경선 토론회에서 "우리가 왜 권력을 잃었는가, 지난 4번의 선거에서 왜 연전연패했는가, 불과 1년만에 왜 민심이 바뀌었는가? 답은 같았다"며 "정당이 민심 소재를 보지 못하고 오만했기 때문이고, 강경 지지층에 포위돼 그들만의 정치를 해왔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권 의원은 "일부 강경 지지층의 발언이나 표현 방식을 보고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한 소위 중도층의 존재를 우리는 애써 외면했다", "총선 막판 우리 당 후보의 세월호 발언이 터지자 1~2%포인트 차로 싸우던 수도권 후보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 "(선거 이후에도) 일각에서 부정선거론을 제기하며 민심과 멀어졌다"고 당의 과거 잘못을 비판했다.

이는 원내대표에 당선된 김기현 의원의 연설과는 분명한 대비를 이뤘다. 김 의원은 경선 토론회에서 "제가 국회의원으로서 대선을 2번 치렀고 다 (우리 당 후보를) 당선시켰다"며 "박근혜 대통령 당선 때는 원내수석부대표로 원내 업무를 총괄지휘했다. 많은 현안을 치밀하게 계획하고 정무적 판단 하에 끌고 나가 어려운 선거에서 당선시키는 결실을 맺었다"고 했다.

차기 대선 전략을 묻는 질문에도 두 후보의 답은 갈렸다. 김기현 의원은 "지난 재보선에서 매우 중요한 것을 얻었다. (그것은) 패배주의·소극주의를 벗어나는 계기"라며 "우리가 자신감을 갖고 돌파하면 이길 수 있다는 주인의식"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 당이 먼저 자강을 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권성동 의원은 "혁신·개혁의 모습을 꾸준히 보여야 한다"며 "김종인 비대위가 추진한 혁신 노력, (즉) 약자와의 동행, 호남과의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권 의원은 "재보선에서 2030 세대가 많은 지지를 보냈지만 그 분들의 지지가 영원하지 않고 언제든 떠날 수 있다"며 "당 상황이 좋아졌다고 해서 과거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재보선 결과를 놓고 김기현 의원은 '자신감·자강'을, 권성동 의원은 '위기감·혁신'을 강조한 것이다. 원내 전략 면에서는 강경 투쟁보다 협상을, 대여 전략에서는 원내투쟁보다 대국민 여론전을, 국민의당과의 통합 이슈에서는 속도 조절론을 공통적으로 주장했던 이들 '2강'의 견해가 결정적으로 갈린 지점이었다.

2014년 재보선에서 국회에 처음 입성한 이후 2015년 유승민 원내지도부에 몸담으며 '유승민계'로 굳어진 유의동 의원이 최히위로 밀려난 것도 눈길을 끈다.

권 의원이나 유 의원은 모두 탄핵 이후 유승민 의원을 중심으로 한 보수신당이 출범할 때 당시 새누리당을 탈당해 이에 가담했었다. 권 의원은 2017년 5월 일찌감치 복당했지만, 유 의원은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이뤄진 통합 때까지 새로운보수당에 적을 두며 유승민 의원과 끝까지 거취를 같이했다.

이런 면에서 보면, 김태흠 의원의 결선 진출에 대비되는 권성동·유의동 의원의 기대 이하 득표는 2020년 통합 이후에도 여전히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에 동참한 탈당파들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반영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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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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