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향은 도대체 왜 국회의원이 됐을까?

[기자의 눈] 민주당은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이 단체의 성격은 명확하다.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범죄인정, 공식사죄와 법적 배상, 진실규명, 책임자처벌 등을 통한 정의로운 해결을 이룸으로써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에 기여하고, 역사교육 및 추모사업 등을 통해 미래세대로 하여금 일본군성노예제 문제를 올바르게 기억하게 하고 나아가 전시 성폭력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 할 것입니다."

이 단체는 단일 목적을 가진 사실상의 '당사자(피해자) 단체'다. 일본군 성노예(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피해자와 시민들이 결합한 단체로, 목적은 하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이다. 이 단체의 상대도 사실상 단일 집단이다. 일본 정부다. 이 문제가 해결되면 이 결사체는 해산되거나, 새로운 목표를 설정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 단체는 여야, 보수, 진보를 떠나 폭넓은 지지를 받는다. '정파성'에서 자유롭다고 인식돼 대기업도, 진보단체도 이 단체를 열심히 지원한다. 심지어 북한도 이 단체의 설립 취지와 목적과 활동에 대해 함부로 하지 못한다. 아시아는 물론, 미국과 유럽의 수많은 지식인들도 이 단체와 피해자들을 옹호한다. '성역'이라는 비유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지만, 인류 보편 정신을 구현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지지 받는 초정파적 단체로서는 범접하기 힘든 거대한 상징 자본을 획득한 곳이다.

윤미향, 그 단체의 핵심 인물이 국회의원이 되었다.(당선인 신분이지만, 일단 국회의원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그런데 꼬리를 무는 의문은 지울 수가 없다.

위안부 문제 해결이라는 단일 목적으로 30여년을 달려온 시민단체 활동가가 국회의원이 되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위안부 문제는 일본 정부와의 문제다. 외교적 파워라면, 일개 국회의원보다 정의연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다. 외교부를 움직일 힘도 일개 국회의원보다 정의연이 더 크다. 여야 정권을 떠나 그렇다. 박근혜 정부 시절 졸속으로 합의된 위안부 협상이 시민들의 공감을 잃은 것은 '피해자 단체'인 정의연이 더 큰 명분을 갖고 정부를 비판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건 정권도 어쩌지 못할 힘이다. 그런데 그런 단체의 '위안부 문제' 전문가가 특정 정파에서 300분의 1로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자, 이제 뭘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외교부 담당 상임위에서 관료를 상대로 호통이라도 칠 건가, 여성 관련 상임위에서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요구할 건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결의안 같은 것도 '정의연 출신' 국회의원 한 명 없어도, 숱하게 생산해 내 왔던 곳이 대한민국 국회다. 그 국회를 움직인 것은 초정파적 시민의 지지를 받은 정의연이고.

▲윤미향 당선인 ⓒ연합뉴스

대체 정의연(혹은 정대협) 출신의 국회의원이 필요한 이유가 단 하나라도 있는가? 지금 우리 외교부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에 저자세 외교를 벌이고 있는가? 다시 말하지만, 그런 일이 만일 벌어진다고 해도, 외교부의 정책을 바로잡는 데 정의연의 파워가 일개 국회의원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세지 않을까? 대한민국에서 정의연만큼 기부금을 잘 걷을 수 있는 단체도 없다. 그만큼 시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은 다른 어떤 시민운동 단체보다 더 독보적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잡고 물어봐도 크게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울 것 같다.

환경 문제를 다루는 시민단체도 아니고, 경제 문제를 다루는 시민단체도 아니고, 대체 단일 목적의 피해자 단체 활동가가 국회의원이 돼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아직까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필자가 과문한 탓일 지도.

어떤 이는 "어려운 시기에 위안부 문제를 가지고 싸워왔던 한 시민운동가의 삶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국회의원 배지가 어떤 노력에 대해 보상하는 훈장과 같은 것인가. 그 시민운동가가 국회의원이 되지 못하면 예의를 지키지 못하는 게 된다는 걸까.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윤미향 당선인의 '사과' 태도를 두고 한 얘기는 이런 의문을 더 불지핀다. "윤미향이 갑자기 방으로 찾아와 깜짝 놀랐다. 국회의원이 돼서 미안하다는 말도 없고, 뚜렷한 이유도 대지 않고 무릎만 꿇고 용서를 비는데 뭘 용서하란 말인가." 윤미향 당선인은 무엇에 대한 용서를 바라는 걸까. 국회의원이 되어서 미안하다는 것인가. 정의연 내부 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미안하다는 것인가. 할머니들에 대한 지원을 소홀히 해서 미안하다는 것인가. 국회의원이 되고자 했다면 '무엇을 하겠다'는 목표가 있었을 것인데, 그걸 설명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목표 자체가 없던 것은 아닌가.

이를테면 세월호 유가족 단체 활동가가 국회의원이 된다고 해서 세월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회 안전과 재난 문제에 천착해 온 전문가가 훨씬 나을 수 있다. 왜 윤미향이 국회의원이 되어야 했는지, 윤미향 국회의원이 어떤 의정활동을 펼칠 수 있는지, 민주당은 이 모든 의문에 답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어떤 '상징'에 배지를 달아주거나, 누군가의 지적대로 고생한 '운동권 동료'에 예우 차원으로 배지를 달아주는 나라가 아니다. 그뿐만이 아니다. '위안부 시민 활동가'가 파란 옷을 입게 됨으로서(그것도 이명박, 박근혜 시절 야당이 아니라, 슈퍼 여당의 파란옷을 입게 됨으로서), 이제 정의연과 위안부 문제는 '정파성' 시비에 휘말릴 수 있는 빌미를 주게 됐다. 당장 일본 극우는 '문재인 정권=위안부 문제' 프레임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초정파적 운동의 상징이 정파로 들어가는 순간, 위기에 몰린 전쟁 범죄자들은 산소 호흡기를 획득한다. '위안부 전문가 출신 의원'이 없어서 그동안 정의연이 정부나 국회의 지원을 못 받아왔던가?

'이명박 독도 방문' 따위의 이벤트로 일본 극우 집단에 명분을 안겨준 정부의 외교 참모가, 정의연을 "성역"으로 표현하며 이명박 정부와 일본 정부의 위안부 문제 해결 노력에 윤미향 당선인이 "사형 선고"를 전달받았다고 운운하는 건 언급할 가치도 없이 기가 차는 이야기지만, 다른 것은 차치하더라도 과거사 문제에 있어서만은 가장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현 정부 하에서 정의연의 상황은 운동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든다.

'정의연 사건'은 세상이 더이상 기존 문법으로 해석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진보든 보수든 '옛날 방식'은 모두 청산 대상이 된다. 옛 운동권 방식과 결별하지 않으면 안된다. 진짜로 정의연을 살리고,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모색해 볼 때다.

도덕적인 문제라든지, 정의연의 운영 과정 의혹에 대한 것들은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를 비롯한 많은 지식인이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이 지면에선 이 질문만 하고 싶다. 꼭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대체 윤미향 국회의원은 어떤 필요로 공천을 받았고, 앞으로 국회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 민주당이 납득할 만한 대답을 내지 못한다면, 그 한 석은 지금이라도 다른 정치인 앞으로 돌리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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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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