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카르페디엠' 보다 '고독'에 집중할 때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잠시 고독해도 괜찮아

퇴근길에 잠시 듣는 라디오 방송에서 ‘에밀리 디킨스’란 언젠가 들어본 이름이 나옵니다. '무슨 이야기지?' 싶었는데, 이내 진행자의 멘트가 끝나고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궁금증에 집에 돌아와 찾아보니, 저작권 문제로 이제 더는 라디오 다시듣기가 안된답니다. 이날 방송에서 듣지 못한 이야기는 평생 알 수 없는 일이 됐지요.

아쉬운 마음에 '에밀리 디킨스'를 검색했습니다. 1830년에 태어나서 1886년에 사망했습니다. '뉴잉글랜드의 신비주의자'라고 불린 미국의 서정시인이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1850년경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특이하게도 1860년대 후반부터는 가족의 농장주변을 떠나지 않고 은둔생활을 했습니다. 사랑, 죽음, 자연 등을 일상의 언어로 표현한 그녀의 시는 총 1700편 이상으로, 거의 모두 그녀의 사후에 발표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사회 상황을 반영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왜 에밀리 디킨스 이야기를 했는가를 생각해 보니, 아마도 최근 코로나19 재 확산의 뇌관이 된 클럽 사태와 연관이 있을 것 같습니다. 20년 가까이를 농장을 벗어나지 않고 은둔생활을 한 시인의 삶과 몇 달이란 시간을 참지 못하고 비난의 대상이 되어버린 젊은이들을 비교하면서 말이죠.

아이들의 개학을 다시 미루게 만든 사건에 관한 뉴스를 보면서 우리 사회가 참 빈곤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확진자 대부분의 동선에서 클럽, PC방, 편의점, 노래방이 등장하더군요. 우리는 과거보다 풍요롭고 다양한 것을 경험하고 누리며 살고 있다고 하지만, 이번 일을 보면서 '과연 그러한가?'란 의심을 합니다. 그냥 겉만 번지르르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죠.

이런 삶이 주는 헛헛함을 어떻게든 메우기 위해 더 자극적인 것들을 찾아 헤매지만, 목마를 때 탄산음료를 마신 것처럼 갈증만 더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여러 부분에서 인류가 문명이란 화장으로 가려 놓은 민낯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좀 더 생각해 보면 이번 사태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경고이자 예방접종 같기도 하고요.

은둔까지는 아니어도 잠시 자제하거나, 조금 미뤄두거나, 혹은 가벼운 칩거를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요? 오늘의 즐거움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말이나 '카르페디엠'과 같은 주장을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이번 일이 그렇게 깊은 삶에 대한 통찰에서 나온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냥 견디지 못하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되는데, 이런 일은 병을 대하고 그것을 치유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납니다. 불편한 상태를 조금도 참지 못합니다. 어떻게든 빨리 그 상태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환자에게, 그 병이 왜 생겼고 앞으로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러이러하게 생활해야 한다는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지요.

이러한 태도는 환자에 따라 가벼운 통증부터 암과 같은 중한 병까지 일관되게 나타나는데, 이것이 호모 사피엔스가 가진 특성인지 아니면 문명화가 가져온 교육의 효과인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문명이 인간이 가진 다양성과 좀 더 나은 가치의 추구를 위한 도구가 되어야 하는데, 소설 <모모>에 나온 시간도둑들처럼 많은 사람들을 바쁘고 불안하고 조급하게 만듭니다. 현대의 산업화한 의료 또한 그런 측면이 있고요.

저는 책을 이전보다 좀 더 읽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게으른 책벌레라고 생각하는데, 게으름을 피워도 차곡차곡 읽은 권수가 쌓이더군요. 한나라의 동우는 '독서삼여讀書三餘'라고 해서, 한 해의 남은 시간인 겨울과 하루의 남은 시간인 밤, 그리고 시시때때로 남는 시간인 비오는 날을 책 읽기 좋은 때라고 했지만, 농사를 짓지 않고 낮밤도 계절도 없이 사는 대부분의 현대 도시인에게는 해당치 않는 말입니다. 비록 세상이 멈춤에 따라 삶이 고통스러워졌지만, 도리어 지금처럼 전염병이 유행하는 시기가 인생에서 남는 책 읽기 좋은 때일 것입니다.

좋은 영화들을 골라 가족과 함께 보고 있습니다. 극장에 가지 않아도 적은 비용으로 영화를 골라 볼 수 있는 좋은 시대니까요. 영화는 현대 문명이 만든 가장 훌륭한 업적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에서 시작된 대화가 자연스레 아이의 지적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합니다. 어제부터는 <아마데우스>를 보고 있는데, 30년도 더 전에 만들어진 영화지만 지금 봐도 참 좋습니다. 피아노 학원을 다니는 딸아이도 즐거워하더군요.

그리고 만드는데 시간이 걸리는 음식을 좀 더 자주 해먹고 있습니다. 잘 먹는 일은 그 자체로도 즐거운 경험이고, 전염병 시대를 건강하게 나는데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죠. 멀리 이동하는 일은 가능한 삼가고 대신 동네 산책을 자주 하는데, 덕분에 동네라고 인식하는 지리적 범위가 넓어지고 새로운 곳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얻었습니다.

찾아보면 개인의 취향에 맞게, 범위는 줄이되 삶의 밀도를 높일 수 있는 아주 다양한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현대의 문명은 과거보다 이런 삶의 가능성을 매우 높였고요. 그리고 이런 삶의 방식을 익히는 것은 앞으로 언제고 닥칠 이번 사태와 같은 시절에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돌보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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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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