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승리 선봉장 이낙연, 대권 '꽃길' 걸을까?

화려한 의회·행정 경험 장점…세력·색깔·팬덤 없는 한계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원내로 돌아온다. 지난 2000년 16대 총선을 계기로 정치권에 첫발을 들여 이미 4선 의원을 지낸 그는 이번 4.15 총선을 통해 5선 고지에 올랐다.

'정치 1번지'라는 상징성을 지닌 서울 종로에서 야권 맞수인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를 상대로 거둔 승리인 데다, 상임선거대책위원장으로 전국을 누비며 지원유세를 펼친 이 전 총리는 더불어민주당 총선 승리의 선봉장이 됐다.

이 전 총리는 당선이 확실시된 15일 저녁 "부족한 저에게 국회의원의 일을 맡겨주신 종로구민께 감사드린다"며 "막중한 책임을 온몸으로 느낀다. 국민의 명령을 받들어 집권 여당의 책임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전남도지사를 거쳐 문재인 정부 초대 총리로 발탁,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두루 경험한 화려한 행정 경력이 그의 강점이다.

'최장수(881일) 국무총리' 타이틀을 얻는 동안 유력한 대선후보로 떠오른 이 전 총리는 차기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여야를 통털어 1위를 놓지지 않고 있다.

정치부 기자 출신으로 정무감각이 뛰어난 데다, 민주당 계열 정당에서 대변인만 5차례 역임했을 정도로 인정받는 품격 있는 언어 구사력이 그의 최대 장끼다.

막말이 난무한 이번 선거에서 이 전 총리가 "국민은 일류인데 정치가 삼류"라며 "일류 정치인을 뽑아달라"고 호소한 대목도 자신의 장점을 각인시킨 캠페인 전략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행정경험에 5선 관록까지 겸비함으로써 정치인생에 새로운 꽃길이 열린 셈이지만, 이 전 총리의 대선 도전 가도가 녹녹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선대위원장 ⓒ프레시안(최형락)

무엇보다 이번 총선을 거치며 친문 색채가 더욱 짙어진 민주당 내에서 태생적 비주류인 그의 출신 성분이 한계로 지목된다.

노무현 정부 출범 뒤인 2003년, 당시 여권 신주류들이 창당한 열린우리당에 합류하지 않고 민주당 잔류파로 남았던 그의 선택은 여전히 아킬레스건으로 남아있다.

이 전 총리 자신도 지난달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변인이었고 당선 됐을 때도 대변인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취임사를 최종 정리한 당사자도 나였다"며 "그 뒤로 당이 나눠졌을 때 합류하지 않았다. 그렇게 갈라진 채로 선거를 치렀는데 내가 남은 그 정당이 궤멸한 일이 있었다, 다음 대선 이후로 합쳐졌는데 들어가서 보니 제가 소수파가 돼 있었다"고 돌아봤다.

화려한 정치 이력에 비해 자기만의 정치적 색깔과 자산이 없다는 것도 이 전 총리의 약점으로 지목된다. 개척자형 리더와는 거리가 있어 지지층 충성도도 높지 않다. 코로나19 사태에서 '재난기본소득' 등 자신의 정치적 의제를 이슈화하며 지지율을 끌어올린 당내 경쟁자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행보와 대비되는 대목이다.

이 전 총리는 "내게 책임이 맡겨진다면 그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며 대선 도전 의사를 굳이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숱한 총리 출신 대선후보들이 떠올랐음에도 대통령이 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이 전 총리가 2인자 정치인들의 징크스를 깰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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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구

2001년에 입사한 첫 직장 프레시안에 뼈를 묻는 중입니다. 국회와 청와대를 전전하며 정치팀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잠시 편집국장도 했습니다. 2015년 협동조합팀에서 일했고 현재 국제한반도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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