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들입니다."
한국의 한 여성이 해안 도시 속초의 한 호텔 로비에서 한국어로 조심스럽게 말한다. 그녀는 아들의 눈과 머리를 유심히 살펴보며, 접힌 쌍꺼풀과 이마 한가운데에 희미해져 가는 점을 놓치지 않고 확인한다. 잠시 아이를 끌어안았다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다시 한 번 확인하기 위해 몸을 떼고, 이내 다시 아들을 품에 안는다. 나는 열한 살이다. 내 양부모는 내 뒤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그 여성은 나의 친어머니다. 그녀의 뒤에는 내 친형이 서 있고, 옆에는 통역사가 서서 어머니의 입에서 나오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어를 번역하고 있다. 때는 2001년이다.
나는 해녀의 둘째 아들이다. 어머니는 제주도 출신이다. 나는 사랑 속에서 태어났지만 가난 속에서 자랄 운명이었다. 부모님은 원만하게 헤어졌다. 아버지는 내가 한국에 남기를 원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자신의 말로, 내가 더 많은 기회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를 입양 보내고자 했다고 했다. 어머니와 형을 만나고, 나를 입양 보낼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상황을 직접 들은 그 경험은 내 인생의 궤적을 영원히 바꾸어 놓았다. 열한 살의 나는 그날을 일기에 남기며, 그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 중 하나였다고 썼다.
나는 2009년, 대학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한국에 머무는 동안 동방사회복지회 사무실에서 형을 다시 만났다. 당시 나는 한국어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의 만남에는 통역이 필요했다.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내 마음은 산산이 부서졌다. 나는 언젠가 다시 형을 만나고, 아버지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2011년 대학 졸업 후 한국으로 이주했을 때, 나는 형과 다시 대화하기 위해 한국어를 공부했다. 2015년, 형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그가 남겨준 이메일과 전화번호는 모두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상태였다. 이후 나는 동방사회복지회에 연락했으나, 그들은 미국의 Children’s Home Society로 가보라고 했다. 동방은 2012년 당시 「입양특례법」 특히 제36조 때문에 도움을 줄 수 없다고 했다. 제3항은 "친생부모가 사망이나 그 밖의 사유로 동의할 수 없는 경우에는 양자가 된 사람의 의료상 목적 등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친생부모의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입양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내 경우에는 어머니가 이미 사망했기 때문에 동의를 표현할 수 없다는 이유로, 형을 다시 찾을 수 없다고 했다. 만약 법과 정책이 형제, 이모·삼촌, 조부모 등 친족 관계의 정도를 고려해 재회를 허용했다면, 남은 가족이라도 만날 수 있지 않겠는가.
동방은 나를 중앙입양원, 현재의 아동권리보장원으로 안내했다. 그곳에서는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으며, 형을 찾기 위해서는 방송에 나가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악의가 없었을 것이라는 점은 이해하지만, 나는 우리의 삶이 방송에 노출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느꼈다. 대부분의 입양인에게 이는 최후의 수단일 뿐이다.
나는 2016년부터 2017년까지 대학원 과정을 마치기 위해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 시간 내내 형과 아버지를 생각하며 걱정에 스스로를 병들게 했다. 2017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그들을 반드시 찾겠다는 각오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한국의 입양인 지원 단체 G.O.A.’L.을 통해 마포경찰서에 실종자 신고를 접수했다. 일주일 후, 나는 형과 전화 통화를 하며 기쁨에 넘쳐 있었다. 2019년에 만나기로 계획했지만, 형의 전화번호가 또 끊겼다. 나는 깊은 절망에 빠졌다. 비록 아프지만, 언제나 내 마음속에는 한국의 가족을 위한 자리가 남아있다.
올해, 나는 형과 아버지를 찾기 위해 다시 아동권리보장원에 연락했다. 그렇게 많은 입양 자료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행 법률로 인해 그들의 손은 묶여 있었다. 내가 통화한 담당자는 정보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공개할 수 없었다. 대신 아버지를 찾기 위해 새로운 건으로 신청하고 처음부터 절차를 다시 시작하라고 안내받았다. 그는 현재 인력이 부족하고 업무가 과중해 지연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는데, 이는 수십 년 동안 우리가 들어온 대답이다. (지난 해 9월부터 아동권리보장원에서 전담하기 시작한 입양정보공개는 1,193여건 신청되었는데 이중 단 95건만이 처리 완료되었다(1.21. 기준). 법정 처리 기한인 45일(연장하면 75일)을 넘긴 케이스가 대다수이다. 필자 주) 다행히 얻은 몇 가지 유용한 정보는, 입양인이 직접 방문하면 절차가 더 빨라질 수 있고, 방문 최소 한 달 전에 정보 요청을 해야 하며, 아동권리보장원에 활성화된 사건 파일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출생가족 찾기를 해본 입양인이라면 누구나 이 과정이 얼마나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지 알고 있다. 우리 중 많은 이들은 유엔 아동권리협약의 정신에 부합하는, 너무도 기본적인 권리인 '자신의 뿌리를 알 권리'를 얻기 위해 평생을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간다.
최근의 입양 관련 보도는 우리가 오랫동안 알고 있었던 사실을 다시 한 번 드러낸다. 우리의 기록을 관리하는 기관과 종사자들은 우리를 도와야 할 유인이 별로 없으며, 입양인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주는 비전문적·비윤리적 행위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여기에는 기록 위조, 이익을 위한 사건 파일 쪽수 허위 보고, 정보 은폐, 입양 기록의 부적절한 관리와 보관, 불필요하게 긴 응답 지연, 윤리 기준 위반에 대한 책임 부재 등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아동권리보장원과 같은 기관 안에도 선의의 종사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제도와 법률은 그들이 우리를 온전히 도울 수 없도록 가로막고 있다. (아동권리보장원은 10년간 시행한 입양기록 전산화사업의 총체적 부실과 데이터 47만 페이지 분실을 확인하고도 책임자 8명 중 단 한명도 징계하지 않았다. 감사를 맡았던 보건복지부 역시 면죄부를 준 사실을 묵과했다. 필자 주)
나는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의 친가족을 생각해 왔다. 인생의 각 단계마다 나는 서로 다른 법, 장애물, 그리고 도전에 부딪혔다. 나는 다른 입양인들이 비슷한 상황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우리 대부분은 동정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투명성, 기록에 대한 접근권, 자신의 출신을 알 권리, 그리고 그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당사자들을 보호하는 윤리적인 입양 제도와 정책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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