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인권 시계가 작동하고 있다

헌재 "대체복무제도 규정 없는 병역법 조항은 헌법불합치"

종교적 신념이나 양심을 이유로 입영을 거부한 사람을 처벌하는 병역법 조항은 합헌이지만, 대체복무제도를 마련하지 않은 조항은 헌법에 맞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양심수'를 양산해왔던 현행 법 체계가 잘못됐음을 헌재가 인정한 셈이다. 2004년,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양심적 병역 거부자 처벌을 합헌으로 판단했던 헌재의 인권 시계가 지난하지만 미래를 향해 작동하고 있음이 입증됐다. 현재 법원에 계류중인 913건의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들의 무죄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으며, 검찰의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무차별 기소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위헌 판단 재판관도 4명...'처벌 조항은 합헌이나, 입법으로 해결하라'

28일 헌재는 병역법 88조 1항(병역처벌조항), 5조 1항(병역종류조항) 위헌 여부를 판단해달라며 양심적 병역거부자와 법원이 낸 헌법소원·위헌법률심판 사건에서 각각 합헌,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처벌하도록 한 병역법 88조 1항에 대해 헌재는 합헌 4, 일부 위헌 4, 각하 1 의견으로 '합헌' 결론을 냈다. 위헌 또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재판관 6명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병역법 제88조 제1항은 '현역입영 또는 소집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아니하거나 소집에 응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법원은 병역법 위반에 대해 집행유예 없는 징역형을 선고해 왔다.

헌재는 합헌 이유에 대해 "처벌조항은 병역자원 확보와 병역부담의 형평을 기하고자 하는 것으로 입법 목적이 정당하다"며 "형벌로 병역의무를 강제하는 것은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적합한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병역거부는 양심의 자유를 제한하는 근거가 되는 다른 공익적 가치와 형량할 때 결코 우선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보편적 가치를 가진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진성·김이수·이선애·유남석 재판관은 일부 위헌 의견을 냈다. 이들은 "국가안보와 병역의무의 공평한 부담이라는 공익은 중요하지만,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한정해 볼 때 형사처벌이 예방효과를 가지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처벌조항이 공익 달성에 기여하는 정도는 그다지 크다고 하기 어렵다"고 했다.

헌재는 다만 대체복무제가 규정되지 않은 현행 병역법은 헌법에 어긋난다고 봤다. 재판관 6명이 헌법불합치, 3명이 각하 의견을 냈다.

헌재는 병역의 종류를 현역·예비역·보충역·병역준비역·전시근로역 등으로만 규정한 5조 1항에 대해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아니한 병역종류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해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봤다.

"다수결을 기본으로 하는 민주주의 의사결정구조에서 다수와 달리 생각하는 이른바 소수자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반영하는 것은 관용과 다원성을 핵심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참된 정신을 실현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2004년 입법자에게 국가안보라는 공익의 실현을 확보하면서도 병역거부자의 양심을 보호할 수 있는 대안이 있는지 검토할 것을 권고하였는데 14년 동안 진전되지 않았다"며 "최근 하급심에서 양심적 병영거부에 대해 무죄 판결을 선고하는 사례가 증가하는 등 더는 이 문제를 미룰 수 없는 만큼 대체복무제를 도입해 기본권 침해 상황을 제거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해당 조항을 2019년 12월 31일까지 개정하라고 판시했다. 개선입법이 이뤄질 때까지는 이 조항의 효력은 계속 유지된다. 그러나 기한까지 대체복무제가 반영되지 않으면 2020년 1월 1일부터 효력이 상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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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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