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컵'이 일으킨 대한항공을 향한 나비효과가 점차 그 파장이 커지는 모양새다. 대한항공 직원들은 18일, 한진그룹 총수 일가 퇴진을 촉구하며 세 번째 촛불집회를 열었다. 이날은 1차, 2차 집회보다 많은 1000명의 직원 및 시민들이 참석했다.
대한항공직원연대는 18일 오후 7시 30분, 서울 광화문 세종공원에서 '조양호 일가 및 경영진 퇴진 갑질 스톱 3차 촛불집회'를 개최했다. 이날 집회도 앞서 집회와 마찬가지로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주인공 '가이 포스크' 가면을 착용했다.
직원연대는 현장에서 가이 포크스 가면을 무료로 나눠주는가 하면, 자체 제작한 '플라이투게더 함께해요'란 문구가 적힌 스티커와 배지, 가방 고리 등을 배포하기도 했다.
이날 박창진 전 대한항공 사무장 대신 사회를 맡은 변영주 영화감독은 촛불집회에 많은 시민의 참여를 독려했다. 변 감독은 "물러서지 말고 세상 모든 '갑'들 때문에 힘들어하는 분들은 함께 해 달라"라며 "이들 옆에 여러분이 서게 된다면 보다 나은 세상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변 감독은 "이곳(대한항공)이 바뀌면 우리 사회 모든 것이 바뀔 것"이라며 "여기 직원들이 혼자가 아니라 당신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달라"고 당부했다.
"우리는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이날 집회는 자유발언으로 진행됐다. 이날 무대에 오른 카톡아이디 '메이비' 씨는 자신을 세상 모든 일에 귀찮아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이번만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단다.
"세상 모든 일이 귀찮아 집에서는 누워만 있는다. 이런 내가 회사의 보복이 두렵지만 이렇게 나와서 발언할 수밖에 없었다. '물컵' 사건 이후 친구 중 한 명이 내게 '너네 회사 애들은 왜 그러고 사느냐'고 했다. '몇 년 전 땅콩회항 때 목소리를 냈으면 너희에게 그렇게 욕하고 무시했겠느냐'라고 지적했다. 나는 한 마디도 못 했다. 다 사실이었으니깐. 박창진 사무장이 힘든 싸움을 할 때도 나는 그저 슬퍼만 하고 안타까워만 할 뿐이었다. 술자리 푸념만 했을 뿐이다. 우리는 머슴이 아니라 힘들게 여기까지 노력해서 온 직원이라는 말을 못했다.
대한항공에 제일 쉽게 입사한 사람은 누구겠는가. 그런데 직원들이 그렇게 힘들게 번 돈을 모두 그들이 가져간다. 어렸을 적 꿈꾸고 입사했던 대한항공은 지금처럼 창피한 회사가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대한항공 입사가 꿈이었다. 그 꿈을 위해 노력했고, 그리고 이 회사에 와서 열심히 일한 거밖에 없다. 그런데 그 꿈을 한순간에 그들이 조롱거리로 만들어버렸다. 게다가 그들은 이 상황이 어서 끝나서 직원들에게 복수할 날만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모르는 것이 있다. 그들은 더 이상 우리에게 소리 지르고 욕할 수 없다. 우리가 그렇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지키고 동료를 지켜야 한다. 그럼으로써 대한항공을 지켜야 한다. 이 싸움은 생각보다 길고 지루할 것이다. 그들은 물러날 생각이 없고, 우리는 포기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를 믿고, 그들이 질릴 정도로 질리게 싸워야 한다. 우리의 승리는 대한항공만의 승리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선례가 될 것이다. 다시 자랑스러운 대한항공이 되겠다."
"기업 총수인지 범죄단체 수괴인지 모르겠다"
분위기도 대한항공 총수 일가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현재 사정당국을 비롯해 국토교통부, 관세청, 국세청 등이 전방위에서 대한항공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17일, 세관 당국이 대한항공 본사를 네 번째 압수수색한 것에 이어 18일에는 국토부에서 27억90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세관 당국은 밀수, 관세포탈에 이어 불법 외환거래를 통해 재산을 해외로 빼돌린 혐의로 이번 압수수색을 진행했고, 국토부는 소위 '땅콩회항'으로 불리는 대한항공 램프리턴 사건 관련해서 과징금을 부과한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대한항공은 향후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도 피할 수 없게 됐다. 국토부는 진에어에서 공식 업무 권한이 없는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과 그의 아들 대한항공 조원태 사장이 내부문서 70여 건을 결재했다며 관련 내용을 소관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에 전달했다. 한마디로 조씨 일가가 권한만 행사하고 그에 따른 책임은 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국토부, 관세청 등의 조치가 뒤늦은 면피용이라는 평가도 있으나,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여론이 대한항공에 좋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날 집회에 참여한 카톡아이디 '인피닛' 씨는 "관세청, 법무부, 국토부, 노동부, 검찰 등이 모두 법을 이용해 (조씨 일가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고, 누구나 다 보이는 이 상황을 덮으려 한다면 누가 법을 지키고 살겠는가"라며 "법을 돈으로 주무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 그리고 법을 어긴 사람들은 처벌해야 한다"고 대한항공 사주일가의 처벌을 촉구했다.
카톡 아이디 '킬러조' 씨도 "지금까지 드러난 조씨 일가의 범죄 혐의는 밀수, 조세포탈, 근로기준법 위반, 항공안전법 위반, 외환관리법 위반, 출입국관리법 위반 등"이라며 "이런 혐의를 보면 기업 총수인지 범죄단체 수괴인지 모르겠다"고 반드시 처벌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이날 집회 뒤에는 서소문동에 있는 대한항공 사옥까지 거리 행진도 이어졌다. 직원연대는 사옥까지 "조씨 일가, 간신배들 물러나라"는 구호를 외치며 행진한 뒤, 자신들이 작성한 '조 회장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고 자진해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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