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오르막, 남은 숙제도 행복하다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현안진단] 한반도 평화, 새로운 출발

2018년 4월 27일, 남북한은 11년 만에 성사된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에 합의했다. 한나절 짧은 시간임에도 남북 정상은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나든 것이나, 평화로이 산책을 하는 명장면들을 연출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다.

우리가 내세운 정상회담의 표어인 "평화, 새로운 시작"과 김정은 위원장이 방명록에 쓴 "평화의 시대, 역사의 출발점에서"처럼 남과 북이 같은 마음이었기에 가능했다. 남북은 이제 한반도에서 오랜 분단과 대결의 세월을 끝내고 새로운 평화의 문을 열었다.

이번 2018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합의한 '판문점 선언'에는 남북관계만의 특별함이 있다. 잠들어 있던 지난 남북 간 모든 합의를 깨우고, 남북관계를 중심으로 한반도의 미래를 만들어 가겠다는 확고한 의지의 표현이다.

남과 북이 한반도 문제의 직접 당사자로서 이제는 더 이상 주변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좌고우면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함께 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지금껏 남북관계가 북핵문제로 인해 표류하고 되돌려졌던 과거를 반복해서는 안 되며 북핵이라는 블랙홀을 벗어나기 위해 남북이 함께 고민하겠다는 진정성과 간절함을 담았다.

이는 3조 13개 항의 '판문점 선언'에 잘 나타나 있다. 남북 정상은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이 없는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천명하면서 남북관계 발전, 군사적 긴장완화, 그리고 평화체제 구축에 합의했다. 합의문의 순서만을 놓고 보더라도 남북관계가 북핵 문제와 북미 관계의 종속변수가 아니라 출발점이자 중심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거기에 군사적 조치가 남북관계를 더욱 단단히 지탱하고, 나아가 평화체제와 비핵화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어야 한다는 지극히 합당한 한반도 미래 디자인이다.

그저 비핵화에 대한 무언가를 상상하고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이번 합의가 당황스럽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비핵화나 북미 정상회담을 뒷받침하겠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디딤돌이나 가교적 역할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남북관계 발전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및 비핵화와 선순환 관계를 형성하도록 우리가 책임 있는 길라잡이 역할을 하겠다는 점에서 한반도 운전자론은 더 힘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의 전면적이고 획기적인 개선과 발전을 담은 1조는 먼저 민족자주의 원칙과 남북간 합의 이행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층위의 남북대화 채널을 제도화하고 민간 교류협력 활성화와 이산가족 상봉 행사도 진행하기로 했다. 원활한 교류협력을 보장하기 위해 평양시간도 다시 서울시간으로 변경하여 일치시켰다.

여기에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번영을 위해 철도와 도로 연결을 합의문에 포함시킨 것은 차후 추진할 한반도 신경제지도까지 염두에 둔 꼼꼼함으로 보인다. 남북 접근에 있어 탑다운(Top-down)과 바텀업(Bottom-up) 방식의 조화를 통해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남북관계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려는 노력이다.

▲ 27일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악수하고 있는 문재인(오른쪽)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판문점 공동 취재단

2조에 군사적 긴장 완화와 신뢰구축을 배치한 것은 논리적 전개상 절묘한 신의 한수이다. 남북 간 군사적 조치는 남북관계(1조)를 떠받치고 평화체제(3조)를 추동하면서도 남북관계와 평화체제를 연결하는 가장 확실한 고리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남북관계가 부침을 겪었던 이유의 대부분은 남북 간 군사적 충돌 때문이었다. 과거 우리의 대북정책과 비핵화 노력은 돈(경제)으로 북한의 핵(안보)을 사려고 했기에 한계가 있었다. 남북 간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사라져야만 남북관계 역시 흔들림 없이 이어나갈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다.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해서는 현 정전협정의 준수를 위한 군사적 조치가 선행되어야 한다.

경제교류를 지원하기 위해 군사회담이 열리고, 북핵 문제 진전에 따라 군사문제는 한발 뒤따라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과감히 벗어버렸다. 오히려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남북군사회담을 앞장세우겠다는 발상의 전환(paradigm shift)이다. 평화 유지(peace keeping)를 넘어 적극적인 평화 구축(peace making)이다.

군사적 긴장 완화와 신뢰구축은 남북관계 발전과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시급한 필요조건이라는 점에서 최우선적으로 5월 중 장성급 군사회담을 개최하기로 명시했다. 여기에서는 일차적으로 확성기 철폐와 전단 살포문제가 우선적으로 다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DMZ(비무장지대) 문제는 차후에 국방부장관회담 등에서 논의될 것이다.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관련된 합의사항은 10.4선언의 계승과 이행 차원에서 포함된 것으로 보이나, 평화협정의 진행과정에서 협상 의제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이 또한 소홀히 여길 수 없다.

3조에서는 "정전상태를 종식시키고 확고한 평화체제를 수립"하기 위해 어떠한 무력도 사용하지 않을 불가침 합의의 준수와 나아가 군축까지도 합의문에 담았다. 이 역시 군사적 조치의 연장선이고 연결고리다.

군축은 단순히 남북간 군사적 긴장과 전쟁 위협의 근원을 감소하고 제거한다는 의미를 넘어서는 것이다. 남북 군사력 감축은 평화체제를 넘어 한반도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며, 주변국들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남과 북이 올해 안에 종전을 선언하기로 한 부분은 향후에 일어날 또 다른 역사적 이벤트의 예고이다. 남북정상회담은 놀라움의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종전선언을 한반도 평화공존의 실질적인 출발점으로 삼고 북한의 우려를 해소시켜 비핵화 협상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남북 간 종전선언은 정전협정이 미국, 중국, 북한 3자간에 체결되었다는 점에서 사전에 미국과 중국 등 관련 당사국들을 이해시켰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대신 10.4선언에서 합의한 평화협정을 위한 3자 또는 4자 회담 개최를 재확인하였다. 연이어 개최될 한중일 정상회담, 한미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과 함께 향후 남북미, 남북미중 정상회담 등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문제가 보다 심도 있게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비핵화에 대해서는 마지막 3조 4항에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라는 공동의 목표와 의지를 확인하였다. 무엇보다 지금 "북측이 취하고 있는 조치들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대단히 의의 있고 중대한 조치"라는 점을 인정한 것은 국제사회를 향해 북한의 비핵화 의지와 방향성에 대해 남한이 확인해주고 견인하겠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북한 역시 매체를 통해 판문점 선언을 있는 그대로 보도했다. 또한 북한은 5월 중에 한미의 전문가와 언론인을 초청해 핵실험장 폐쇄를 투명하게 공개적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남북이 책임과 역할을 다하고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 노력해 나가기로 한 것은 반대로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따른 보상에 대해서도 남한이 북한을 안심시켜주는 진정한 한반도의 운전자 역할을 자임하는 모습이다. 이제 비핵화의 공은 북미 정상회담으로 던져졌지만 그냥 두고만 봐서는 안 된다.

2018 남북 정상회담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해 그리고 비핵화와 북미 관계까지 책임진 의미 있는, 가치를 담은 정상회담으로 역사에 기록되어야 한다. 또 이제는 더 이상 남북이 잡은 손을 놓아서도 안 되고 놓게 해서도 안 된다. 남북관계만큼은 앞으로 되돌릴 수 없는 길을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판문점 선언'이 남긴 합의사항을 차질 없이 이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우리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남과 북이 손을 잡고 속도전으로 나아가기로 했으니 이제 더 놀라운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세계가 놀라면 놀랄수록 한반도 평화공존과 공동번영에 한걸음 가까이 가는 것이다.

어쩌면 이제부터가 진짜 오르막이고 가야 할 길은 멀 것이다. 그래도 '판문점 선언'을 넘어서는 목적지에 대한 기대와 믿음이 있다. 남북관계가 기분 좋은 오르막인 만큼 숨이 조금 가쁘고 힘들더라도 산적한 숙제에 대한 걱정마저 행복한 비명인 이유이다.

* 위 글은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현안진단 74호에 게재된 원고를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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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엽

김동엽 교수는 해군과 국방부에서 근무하다 지난 2011년 중령으로 예편했습니다. 국방부에서 북핵과 군사회담을 담당했고, 예편 이후에는 북한대학원대학교 민족공동체지도자과정 주임교수를 거쳐 지금은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에서 저술 및 연구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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