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다. 예년보다 빨리 핀 벚꽃은 가지에서 떨어져나와 도로 위에 흩날렸다. 자줏빛, 분홍빛 이름 모를 들꽃들이 거리마다 펴 있었다. 햇볕도 따사로운 봄 기운이 완연한 날이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은 경기도 안산에서는 언제부턴가 비극의 계절이 되었다. 봄날, 아무런 준비 없이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벚꽃만 봐도 울렁거린다'고 가슴을 쳤다.
유가족들은 이미 하늘로 보낸 가족을 다 놓아주지도 못했다. 누군가는 세월호 참사를 두고 '교통사고'라고 했지만, 그 '사고'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영결식도 하지 않았다. 그날의 일을 잊어선 안 되는데 잊게 될까 봐, 잊힐까 봐.
그리고 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정확히 4년 만에 영결식이 열렸다. 희생자 가족들은 "'아직 떠나보낼 수 없다', '이제 비로소 진짜 진상규명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는 국민들의 외침 때문에 오히려 편안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비록 304분 희생자들을 떠나보내는 영결식을 하지만 이 자리는 끝내는 자리가 아니라 새롭게 시작하는 자리"라고 했다.
4년 전에도, 이날도 시민들이 함께했다..."잊지 않겠다"
4년 전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시민들은 희생자들을 떠나보내는 이 날도 유가족과 함께했다. 오후 3시 영결식에 앞서 1000여 명의 시민은 오후 1시부터 안산 고잔역에서부터 정부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안산 화랑유원지까지 침묵 행진을 했다. 한 손에는 국화를 들고, 한 손에는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도 들었다. 시민들은 단원고 앞에서 국화를 헌화한 뒤, 이번엔 노랑 바람개비를 들고 다시 화랑유원지까지 행진했다.
화랑유원지에는 경찰 추산 6000여 명의 시민이 기다리고 있었다. 분향소 앞에 마련된 무대에는 안산 지역 희생자 258명의 영정과 위패가 빼곡하게 걸려있었다.
영결식은 희생자에 대한 묵념으로 시작했다. 세월호 추모곡인 '잊지 않을게'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안산 전 지역에 추모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이날 영결식에 문재인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사회를 맡은 박혜진 아나운서가 대통령 메시지를 대독했다.
문 대통령은 "세월호의 비극 이후 우리는 달라졌다. 생명을 우선하는 가치로 여기게 되었고, 이웃의 아픔을 공감하게 되었다"며 "저로서는 정치를 더 절박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됐다. 그 사실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희생자 가족들을 향해 "합동영결식에 아이들이 바람으로 찾아와 그리운 엄마, 아빠의 손을 잡아줄 것"이라며 "봄바람이 불거든 눈물 대신 환한 웃음을 보여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선체조사위와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를 통한 진상 규명, 미수습자 수습, 416생명안전공원 지원, 안전한 대한민국 건설 등을 약속했다.
희생자 가족들은 대통령 메시지에 대해 "우리로 하여금 다시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했다"라고 화답했다.
전명선 4·16 세월호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대통령의 메시지에 저는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며 "이제 더 이상 희생자분들과 우리 국민들에 대한 명예회복에 후퇴는 없어야 한다"고 했다.
전 위원장은 "명예회복의 길은 명확합니다. 4.16세월호참사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이 그 첫 번째"라며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304명의 희생자들 앞에서 '완전한 명예회복의 시작'을 '맹세'하고자 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울먹이는 목소리로 '사랑하는 아들딸들아'라고 외쳤다.
"지켜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구나.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에 대한 염원은 못난 부모들에게 맡기고 이제는 고통 없는 그곳에서 편히 쉬기를 바란다. 구름이 되고 바람이 되어서 너희들이 꿈꾸었던 곳에 가거라. 귓가에 바람이 스칠 때 그때 너희가 함께하고 있다고 생각할게. 사랑한다."
희생자 고(故) 남지현 학생의 언니 남서현 씨도 추도 편지를 낭독했다. 남 씨는 "시간이 흐르면 나아질 거라는 말은 다 거짓말 같아. 사고가 나고 정신과 박사님은 3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는데, 전혀 아니"라면서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아. 울고 싶지 않은데 강하게 맞서고 싶은데 매일 운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현아 언니가 약속할게. 화랑유원지의 1%에 생기게 될 추모시설과 0.1%의 봉안시설이 우리가 안전사회로 나아가는 시작이 되게 꼭 만들 거야"라며 "1%가 이 사회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 낼지 나는 알아. 그래서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했다.
전 위원장과 남 씨가 흐느낄 때마다 시민들도 함께 흐느꼈다.
마지막으로 참석자들은 희생자들에게 헌화하며 영면을 기원했다. 이낙연 국무총리, 김상곤 교육부 장관, 김동연 기획재정부 장관,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남경필 경기도지사,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 등 정부 대표들이 먼저 넋을 기렸다.
이어 단원고 희생자 가족들이 나와 사랑하는 가족을 향해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유가족들은 아들, 딸의 이름을 부르며 오열했다. 일부 유가족들은 부축을 받았다.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는 이날 영결식이 마무리된 뒤 '국민께 드리는 글'을 발표해 "참으로 모질고 서러운 1462일이었다"며 "세월호참사 304분 희생자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안전한 사회를 위해 함께 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직 떠나보낼 수 없다', '이제 비로소 진짜 진상규명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는 국민들의 외침 때문에 오히려 편안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습니다. 오늘 비록 304분 희생자들을 떠나보내는 영결식을 하지만 이 자리는 끝내는 자리가 아니라 새롭게 시작하는 자리"라며 "'생명과 안전의 도시, 안산' 그리고 '진상규명과 안전한 사회'를 이루기까지 1462일만큼 가까워진 오늘은 '304분의 꿈'을 반드시 우리가 이루어내겠다고 다짐하는 새로운 날이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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