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미투운동이 확산 안 되는 이유는..."

홍성수 교수 <말이 칼이 될 때> 북토크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피해 고백에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법을 수호해야 할 검찰 조직 안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점에서 파장은 더욱 컸다. 그런데 검찰 내 성추행 사건은 어느 날 갑자기 우연히 벌어진 일일까? 누적돼 왔던 게 터진 것일까?

"조직 안에서 전혀 어떤 차별도 없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엉덩이를 만졌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겠죠."

1일 오후 서울시 마포구 레드빅스페이스에서 열린 <말이 칼이 될 때>(홍성수 지음, 어크로스 펴냄) 북토크에서, 저자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는 "여성에 대한 혐오표현, 성희롱, 성추행, 증오범죄는 동일선상에 있다"고 설명했다.

"여성에 대한 편견이 말로 드러나면 혐오표현이 되고, 실행에 옮겨지면 성추행, 나아가 증오범죄가 됩니다. 원인은 똑같지만 현상이 다른 것뿐입니다. 증오범죄가 있는 곳이라면 거긴 혐오표현도 심각했을 것이란 얘깁니다."

ⓒ프레시안(서어리)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 이후 많은 여성들이 공포를 느낀 이유도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일상적으로 성희롱, 성폭력에 노출된 여성들은 '어쩌면 나도 살해의 대상이 될 수 있구나'를 직관적으로 느꼈던 것이다. 한국에서 여성들이 폭력뿐 아니라 혐오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이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을 통해 확인된 셈이다.

여성을 차별해온 과거가 있고 그 차별이 현존하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 자명한 상황에서 여성에 대한 다양한 차별적 언어는 때로 칼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혐오표현도 일정 수준의 제재를 받아야 한다는 게 홍 교수의 주장이다.

"직장에서 누군가 '집에서 애나 봐라' 라는 말을 했다고 칩시다. 그런데 이 똑같은 말을 남자직원에게 했을 때랑 여자직원에게 했을 때 반응이 다릅니다. 여성들에게는 실제로 집에서 '애나 봐야 했던' 시절이 있었고 지금도 알게 모르게 여전히 그런 일이 있는 상황에서 여성들에게 '집에서 애나 보라'라는 말은 농담이 아닙니다. 남성들은 '애나 봐야 했던' 역사가 없으니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참 특이한 질책이구나'라고 생각하지, 차별이라고까지 생각하진 않을 겁니다.

물론 상황이 바뀔 수 있습니다. 혹시 100년 후 육아를 남성이 전적으로 담당하고 남성이 육아 문제 때문에 빈번하게 직장에서 해고되는 사회가 된다면 그땐 남성에게 '애나 봐라'라는 말이 혐오표현이 되겠죠."

홍 교수는 그러나 처벌이 능사는 아니며, 사회 내에서 혐오표현이 도태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런 분위기를 누가 잡아야 하나요. 사회 지도층에 있는 분이나 정치인, 대통령, 학교로 치면 선생님, 교장선생님, 대학 총장이겠죠. 일례로 서울대에서 일어난 성소수자 환영 현수막 훼손 사건을 들 수 있습니다. 누군가 성소수자 현수막을 찢어놓자 학생들이 찢어진 현수막을 반창고로 붙이면서 멋지게 대응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총장님이 한 말씀을 해주셨더라면 어땠을까요.

책임자가 사과도 하고 재발 방지 대책도 밝히고 잠재적인 피해 대상자에게는 안심의 메시지를 주고, 가해자에게는 '까불면 죽는다'는 식의 메시지를 주면 좋을 텐데, 그렇게 하는 분들이 없어요."

다른 국가와 달리 한국에서 '미투 운동(Me Too)'이 크게 확산되지 않은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했다.

"피해를 당했다고 말하는 정도로 보복을 당하거나 조직 안에서 이상한 취급을 당할 것이 뻔한 상황에서 피해자가 나서긴 쉽지 않겠죠. 물론 문제 상황에서 당사자가 맞받아치는 게 좋지만, 그것을 강조할 경우 혐오의 문제를 개인에게 떠넘기는 식이 됩니다. 조직적으로 대응하는 게 중요합니다. 주변에서 대신 가해자를 혼내주고 피해자에게 '너는 잘못한 거 없어'라고 지지하고 연대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는 "혐오표현 문제를 이야기하면 처벌을 할지 말지에 초점을 두지만, 직장이나 학교와 같은 조직 내에서 그런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논의하는 게 더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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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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