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전의 외침…"광주에서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

[작은책] 내가 겪은 5.18 ①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 <택시 운전사>(장훈 감독, 2017)가 관객 1000만 명을 넘겼다. 나는 5.18 현장에 있었기에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고, 화가 났고, 슬펐다. 택시운전사를 연기한 송강호와 기자 힌츠페터 역을 맡은 배우가 연기를 너무 잘해서 감동이었다. 그때 내가 겪었던 장면을 잘 재현했다.

역에서 송강호에게 주먹밥을 주는 장면을 보면서 불현듯 우리 작은언니가 생각났다. '36년 전에 우리 언니도 저렇게 시민군에게 주먹밥과 물을 주었는데….' 주마등처럼 그 당시 일이 떠올랐다.

1980년 5월 17일 토요일 오후에 나는 광주 도청 앞 전일빌딩 1층에 있는 전일다방에서 친구를 만나서 커피 마시면서 수다를 떨었다. '헬기 기총사격이 있었네, 마네' 하는 얘기로 요즘 유명한 전일빌딩은 내가 자주 가던 곳이다. 고등학교 때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시험 때는 전일빌딩에 있는 전일도서관에서 시험공부를 했는데, 새벽에 일찍 가야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친구와 얘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웠다. 나가 봤더니, 전남대 학생들이 "전두환이 물러가라"고 시위를 하며 행진을 했고 계엄군은 이들을 양쪽에서 에워싸고 있었다. 어쩐지 분위기가 살벌해서 친구와 헤어져 그냥 집에 들어왔다.

▲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금남로에 모여든 시민과 차량 시위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5월 18일에 나는 점심을 먹고, 어제 본 광경이 궁금해 금남로로 나갔다. 저 멀리서 공수부대원들이 젊은 사람들을 무조건 두들겨 패는 것을 보았다. 곤봉으로 패고 발로 차고 질질 끌어서 트럭에 던지는 것을 보고 두려워서 골목으로 숨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얼마나 무섭든지 어떻게 집에 왔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당시 내 친구가 전남대병원 간호사였는데, 그날 밤에 터지고 깨져 숨넘어가는 중환자들로 대학병원이 초만원이었다고 했다. 환자가 하도 많아서 조선대병원과 기독병원에 보냈다고 했다.

내 친구 여동생은 카톨릭센터 앞을 친구와 걸어가는데, 공수부대원이 젊은이들은 쫓아와서 무조건 잡아가는 것을 보고 무서워서 제일 가까운 가게로 들어가 숨었다. 주인이 학생들을 보호하려고 셔터를 거의 다 내리는 순간에 어떤 여학생이 가게로 들어왔는데 공수부대원이 쫓아와서 셔터를 올렸다가 탁 내려서 그 여학생은 허리를 다쳐서 그대로 쓰러졌다. 공수부대원은 그 안에 있던 젊은이들을 곤봉으로 때리고 발로 차서 군인 트럭에 짐짝처럼 싣고 어디론가 끌고 갔다. 내 친구 동생은 다행히 다음날 무사히 집에 왔는데, 그 뒤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지금은 결혼해서 미국에 가서 살고 있다.

시민군이었던 남편이 나중에 5월 18일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날 일 끝나고 자전거를 타고 계림동 광주고 앞에 있는 집에 가려고 대인동 시외버스터미널 부근까지 갔는데, 대로에서 공수부대원들이 도깨비방망이로 사람을 마구잡이로 때려서 개구리 뻗듯이 죽어가는 것을 직접 보고 너무 무섭고 떨려서 골목으로 숨었단다. 때려죽인 사람을 짐짝 던지듯 차에 싣고,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은 아무나 무조건 총 개머리판으로 내리찍고 군홧발로 밟고 수십 명을 차곡차곡 싣고 가는 것을 보고 벌벌 떨며 집에 갔다고 했다.

그 일을 계기로 남편은 다음날 시위대에 합류했다. 시민군이 되어 트럭을 타고 다니면서 광주에서 일어나는 사실을 서울에 알려야 한다고 서울 가는 진입로까지 갔는데, 계엄군이 "가까이 오면 발포한다"고 해서 나주 쪽으로 갔다. 나주 사람에게 "광주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제발 시위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고, 그런 시민군들 덕분에 광주뿐 아니라 함평, 목포, 순천, 여수 등 전라도 지방에서도 다 들고 일어나게 되었다.

집에 있기에는 도저히 궁금해서 나는 다음날도 버스도 안 다니는 십리 길을 걸어 시내로 나갔다. 그때까지 우리는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안 됐다. 그 당시 광주사람 거의가 전두환이 누군지도 몰랐다. 대학생들이 "전두환 물러가라" "계엄령 해제하라" "김대중을 석방하라"고 외쳤는데, 우리는 그 전날 이미 김대중이 보안사에 끌려갔다는 것을 몰랐다. 광주 사람들은 이번에 꼭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는데, 정치판이 이상하게 돌아가서 화가 나던 때였다.

* 박영희 할머니의 '내가 겪은 5.18' 2편이 곧 이어집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작은책

월간 <작은책>은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부터 시사, 정치, 경제 문제까지 우리말로 쉽게 풀어쓴 월간지입니다. 일하면서 깨달은 지혜를 함께 나누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찾아 나가는 잡지입니다. <작은책>을 읽으면 올바른 역사의식과 세상을 보는 지혜가 생깁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