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중략) 여름 징역은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중략)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고(故) 신영복 교수가 일찍이 지적하고 최근 박근혜 전 대통령이 환기한 교정 시설 수용자 처우 문제. 오랜 문제제기에도 해결되지 않는 이 난제를 풀기 위해 법무부와 국가인권위원회가 머리를 맞댔다.
법무부는 인권위와 공동으로 21일 오후 서울 중구 삼일대로 나라키움 저동빌딩 인권위 11층 인권교육센터에서 '구금시설 과밀수용과 수용자 인권'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교정 시설의 여건은 그 나라 인권 수준의 지표'라는 말이 있듯, 교정 시설 실태를 통해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인권 의식과 수준을 돌아보자는 취지다.
교정 시설 문제는 최근 구치소에 수감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차갑고 더러운 감방에 지내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새삼 세간의 관심사로 떠오르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 일반 수용자의 5~6배에 달하는 공간에서 지내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박 대통령의 주장은 일종의 '투정'으로 매듭지어졌다. 그러나 이같은 박 전 대통령의 문제제기 덕분에 오히려 일반 수용자들의 열악한 처우가 널리 알려졌다.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국정감사장에서 신문지를 깔고 누워 일반 수용자의 실제 수용 면적인 1.06 제곱미터가 얼마나 좁은지 보여주기도 했다.
국내 구치소·교도소의 평균 수용률(수용 인원÷수용 정원×100)은 122.6%다. 1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에 22명 넘게 초과 수용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과밀 수용 문제는 전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의 평균 수용률은 OECD 회원국 가운데 헝가리(131.8%) 다음으로 가장 높다. 미국은 103.9%, 캐나다는 102.2%며, 독일과 일본은 각각 85.4%, 66.8%로 수용인원이 정원에 크게 못 미친다.
2006년 이후 증감을 반복하던 평균 수용률은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이후로는 크게 뛰었다. 2012년 101.6%로 정원을 초과한 뒤 2015년 114.8%, 지난해 120.3%, 올해 122.6%로 꾸준히 증가 추세다. 특히 여성 수용자 수용률은 135%로 전체 수용률 평균 122.6%와 비교할 때 훨씬 높아 이같은 수치만으로도 심각성을 파악할 수 있다.
송석윤 서울대학교 로스쿨 교수는 "교정의 궁극적인 목적은 범죄자로 하여금 법을 준수하게 하고 일반 시민으로 사회에 복귀하게 하는 재사회화에 있는 바,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에 알맞은 적절한 환경과 조건을 갖출 것이 요구된다"며 "그러나 과밀 수용의 경우 관리 인원이 부족하게 돼 수형자의 접견 운동이 제한되거나 음식 의료 등 서비스가 부실해질 수 있으며 수형자들이 처우 불만이 제대로 해소되지 못하고 수형자간 긴장과 갈등이 고조됨으로써 싸움, 폭행, 자살 등 교정 사고가 빈발하게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교정의 운영 곤란 및 형사 사법 제도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사회 전반적인 문제로 연결돼 국가 정책을 수행함에 있어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라며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이러한 취지에서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교정 당국이 좁은 구치소 공간에 수용자를 수용한 것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침해한 것이므로 헌법 위반"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고등법원도 지난 8월 부산구치소 수용자 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1심을 취소하고 원고일부승소 판결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과밀 수용 문제가 지속되는 이유에 대해 안성훈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약식기소가 줄어들고 정식재판을 받는 인원이 증가한 점, △법원의 실형선고비율이 높아지는 데 따라 법정구속이 증가한 점, △집행유예와 가석방 처분이 줄어든 점 등을 꼽았다.
특히 박근혜 정부에서 가석방 심사 기준을 높이면서 과밀화를 더욱 초래했다. 법무부는 2013년 통상 형기의 70∼80%를 마친 수형자를 대상으로 실시하던 가석방 심사 기준을 형기의 90% 수준으로 높였다. 이후 교정시설 과밀화가 심각해지자 2015년 말 다시 기준을 80% 수준으로 낮췄다.
안 위원은 "많은 실증적 연구들이 형벌의 범죄 억제 효과는 형벌의 가혹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형벌 집행의 확실성에 있다는 것을 지지하고 있다"며 △벌금형 등 대체형벌의 적극적 활용, △집행유예제도 확대, △가석방 기준 완화, △보석 제도 활용 등을 제시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형벌은 국가의 가장 극단적인 수단"이라면서 "국회와 행정부가함께 노력해서 비멉죄화해도 공공의 안녕이나 국민의 인권보장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 범죄들은 하루 속히 솎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법무부 장관이 책임지고 과밀 수용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며 "최소한 문재인 정권 출범 1주년까지는 수용 정원 이하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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