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서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는 이유?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유레카!

시라쿠사의 왕인 히에론 2세는 금고에 있던 금을 내어주며 금 세공사에게 왕관을 주문합니다. 그런데 주문한 왕관이 오자 그 세공사가 다른 금속을 섞어서 만든 것은 아닌가 의심하지요. 당시에는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은이나 다른 금속을 섞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의심을 거두지 못한 왕은 자신의 왕관이 순금으로 만든 것이 맞는지를 알아 낼 것을 아르키메데스에게 명합니다.

당대의 천재로 알려진 아르키메데스였지만, 왕관을 녹이지 않고 순금인지를 알아낼 방법을 좀처럼 찾지 못해 큰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르키메데스는 목욕을 하기 위해 욕조에 들어가는데, 그 때 몸이 들어갈 때 물이 차오르는 것을 보고는 비중에 따라 부피가 다름을 깨닫지요.

그리고 그 기쁨에 "유레카!"라고 외치며 알몸으로 욕조를 뛰쳐나왔다는 이 이야기는 많은 사람이 잘 아는 아르키메데스의 일화입니다.

이 일화는 부력의 원리를 설명할 때 단골로 등장합니다. 사람이 어떤 한 가지에 몰두하면 마침내 이루고 만다는 뇌 과학적 혹은 진인사대천명의 교훈적 의미로 인용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당시 아르키메데스가 엄청난 스트레스 상황에 놓여 평소보다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거나 목욕하면서 평소 잊고 있던 일들이 기억났다거나, 잘 풀리지 않던 문제의 답이 생각났다거나, 불현듯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는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혹자는 화장실에 있는 암모니아 분자가 기억력을 향상시켜 준다고 하지만, 독성으로 분류되는 물질이 그럴 것 같지는 않습니다. 도리어 냄새 때문에 평소보다 숨을 참는데서 오는 효과가 있을 거란 생각은 듭니다. 스트레스 상황에 빠지면 숨을 내쉬고 빠르게 다시 들이 쉬게 되는데, 화장실 냄새를 적게 맡기 위해 숨을 참으면 잠시나마 이러한 긴장성 호흡패턴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화장실이나 욕실에서 기억이나 사고력이 좋아지는 이유는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그 공간이 가진 특징입니다. 즉, 개인적 공간이 주는 이완의 효과입니다. 화장실에 들어감으로써 우리는 늘 의식하기 마련인 타인의 시선이나 쓸모없이 넘치는 정보에서 벗어나 긴장의 끈을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지요.

몸속에 쌓인 노폐물을 배출하거나,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그면 일상의 긴장이 사르르 풀어집니다. 아마 아르키메데스의 경우도 비슷했으리라 여겨집니다. 몇 날이고 전전긍긍하느라 쌓인 긴장이 욕조에 몸을 담그면서 풀어졌을 것이고, 그 이완의 상태에서 여태 수 없이 그냥 지나쳤던 현상이 눈에 딱 들어왔으리라 생각합니다. 긴장으로 인해 좁아졌던 사고가 이완을 통해 확장되면, 각 영역의 통합적 사고가 좀 더 원활하게 일어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고의 스파크도 일어나는 법이지요.

물론 모든 현상에 음과 양이 있듯, 이러한 과정은 화두선(話頭禪, 한국 불교의 주류 수행법)처럼 고도의 집중을 통해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화장실에서 고도의 집중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두 번째 이유로 볼 일을 볼 때 우리 몸의 변화를 들 수 있습니다. 양변기를 쓰면서 그 강도가 약해지기는 했지만, 화장실에서 우리는 배에 힘을 주게 됩니다. 또한 자연스럽게 의식도 하복부에 집중하게 되지요. 숨도 조금 더 깊게 쉬게 되고요.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아랫배 호흡을 합니다. 이러한 상황은 뇌로의 흐름을 촉진하는 물리적 조건이 되지요.

이렇게 보면, 좀 우습기는 하지만 화장실에서 이완과 복압 증가를 반복함으로써 얻는 흐름의 활성화는 명상과도 닮은 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러한 과정이 순조롭게 일어났을 때 이야기고, 꽤 많은 사람이 화장실에서조차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변기 위에 앉아있거나, 여러 번 이곳저곳을 왔다갔다 합니다. 실제 환자를 봐도 변비나 과민성장증후군으로 고생하는 사람 중에는 그 원인이 음식물보다 긴장반응의 연장선에 있는 경우가 많지요. 힘을 빼고 긴장의 끈을 놔야 하는데, 습관이 되어 그러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삶의 많은 순간을 무엇 때문인지도 인지하지 못한 채 쫓기듯 바쁘게 살아갑니다. 모든 가식과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는 아주 개인적 공간에서조차도 그 흐름에서 내려오지 못한다면, 삶은 팍팍해지고 몸과 마음은 병들 수밖에 없습니다. 하루 중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비우고 씻어내는 그 시간을 효과적으로 이용한다면 몸과 마음의 건강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도 아르키메데스처럼 그 무엇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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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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