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뇌가 우울증을 막는 법이죠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뇌를 행복하게 길들입시다

"집안에만 계시지 마시고 낮에 햇볕 좋을 때는 꼭 나와서 걸으세요.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도 드시고, 자주 놀러 다니세요. 혼자 집에만 계시면 지난 일들만, 그것도 좋지 않았던 기억들이 자꾸 떠올라서 좋지 않아요."

상담하다 보면 우울함을 동반한 무력감에 빠진 환자를 많이 봅니다. 때론 이에 더해 자기 보호를 위한 예민함이 동반되기도 하지요. 이런 상태의 환자가 '나 우울해요'라고 하며 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다른 증상을 호소합니다. 불면, 피로, 소화불량, 신체의 통증,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만성화된 염증 등이 대표적입니다. 암과 같은 중병을 앓는 환자는 거의 모든 경우 이런 상태를 찾아볼 수 있고요. 그 때문인지 몰라도 향정신성의약품의 처방 빈도가 증가하고, 약물 오남용으로 인한 문제도 자주 발생합니다.

우울증과 심리적 무력감을 해결하지 않으면 환자의 다른 증상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습니다. 한 가지 문제가 해결되어도,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다른 증상이 급하지 않은 한, 심리적 문제부터 우선적으로 살펴야 하지요. 이 때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고 있으면 치료가 잘 되지만, '난 아무렇지도 않아요'라고 장벽을 치는 환자는 치료에 시간이 많이 걸리거나, 치료한다손 쳐도 일정 수준 이상으로 회복하는데 실패하기 쉽습니다.

진화심리학적으로 인간은 행복이나 만족감과 같은 긍정적 감정보다 공포나 불안과 같은 부정적 감정을 더 잘 학습하고 기억한다고 합니다.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대상을 잘 기억하는 게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좋은 감정을 경험하기 위한 적극적 노력을 하지 않으면 부정적 감정에 휩쓸리기 쉽다고 합니다.

열량을 많이 확보하는 게 생존경쟁에서 유리했던 유전자의 기억이 대사증후군과 같은 다양한 질병의 원인이 되는 것처럼, 생존을 위해 필요한 부정적 감정에의 기억이 만병의 근원이라는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 셈이지요. 물론 과거보다 너무나 쉽게 구할 수 있는(하지만 질은 떨어진) 음식과 부정적 감정을 일으키는 요인이 현대에 넘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만, 우리는 다른 고등 동물보다 대뇌피질이 더 발달한 동물이므로, 의식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 상태를 지배하는 것은 주로 암묵기억(지난 기억의 잔재들이 의식의 깊은 곳에 남아 현재의 삶에 영향을 주는 기억)이다.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무의식 또는 불교에서 말하는 업식이 바로 그것이다. (중략) 부정적인 암묵기억이 긍정적인 암묵기억보다 더 강하고 빠르게 성장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그로 인해서 우리의 마음은 본능적으로 더욱 우울하고 염세적으로 쪼그라들기에 십상이다.

마음의 평안을 얻는 방법은 간단하다. '수용'과 '확산'이라는 이중전략이 필요하다. 부정적인 경험은 억누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끄집어내어 털어내고, 긍정적인 경험은 적극적으로 증장시켜 나가는 것이다. 가급적 좋은 기억만 간직하면 된다는 뜻이다. 유익하고 즐거웠던 경험을 끊임없이 연상하면서 잊지 않으려는 노력을 계속하면, 슬프고 끔찍했던 경험을 차츰 누그러뜨릴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연습을 통해 뇌가 행복해지면 신체 역시 행복해진다. 면역기능이 향상되고 스트레스에 대한 심혈관계의 반응성이 둔해진다. 낙천성과 적극성을 관장하는 좌측 전두엽이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심리학자의 인생 실험실>(장현갑 지음, 불광출판사 펴냄)

한의학은 인간의 대표적 감정을 기쁨, 분노, 슬픔, 걱정, 생각, 놀람, 두려움의 일곱 가지로 대별하고, 이 칠정의 변화가 기의 흐름에 변화를 가져와 오장육부를 포함한 신체적 반응을 일으킨다고 봅니다. 좀 다르게 표현하면 감정의 변화는 뇌와 신경계가 반응하는 방식의 변화를 이끌고, 이것이 나란 존재를 재구성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란 존재가 외부와 부딪칠 때 맨 처음 발생하는 것이 감정이므로 이를 어떻게 조절하느냐는 문제는 내가 경험하는 세상과 나를 규정하는 셈이지요.

위의 책에서 저자가 제시한 아래의 내용이 감정을 관리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1.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솔직하게 표현해야 한다.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왜곡하지 말아야만 우리의 정신과 뇌는 안정적인 질서를 유지하고 건강해진다.
2. 행복은 주관적이다. 객관적으로 행복을 매기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그걸 하면 된다. 그게 진리다.
3. 의미 있고 재미있다고 여기는 일에 자신을 걸어야 한다. 온통 전념하고 몰두하라.
4. 단순하게, 더욱 단순하게 살라.
5. 명상을 통해 심신을 수련하라.
6. 그리고 만족하라.

'에이~ 이거 모르는 사람 있나?'라고 할 만한 내용입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알고 모르고의 문제가 아니고 하느냐 마냐의 문제입니다. 감정을 다루는 일은 인생에 매우 중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팔 근육 키우기보다 그 방법을 잘 모르고 연습도 하지 않지요. 따라서 사소한 선택의 순간부터 감정 관리 방법을 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팔 근육처럼 감정을 다루는 근육 또한 그냥 생기지 않으니까요.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자연스레 길러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방법을 알고 연습한다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습니다.

윌리엄 제임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생각이 바뀌면 세상이 달라진다. 진짜 달라진다." 감정을 잘 다루는 일 또한 마찬가지일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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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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