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시대, 우울증 다스리는 방법은?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울증(鬱症) 전성시대

"제 생각으로 암은 울증(鬱症)이 극에 달했을 때 생깁니다. 소통이 안 되다 보니 울증에 빠진 세포들이 공생의 약속을 잊고 각자도생의 상태로 퇴행해서 오로지 분열(생식)에만 열을 올리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 치료는 물론 생활에 있어서도 막힘이 없도록 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렵게 회복한 건강을 유지하고 재발을 방지할 수 있어요."

암이 더는 누군가의 특별한 병이 아니게 된 시대 탓인지, 환자 중에는 암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이거나 치료 이후 주기적인 검사를 받고 있는 분이 꽤 있습니다. 이 분들의 몸 상태를 살피면 대부분 울증의 상태에 빠져 있지요. 병의 진행 과정과 진단받고 치료받는 과정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증상이 중한 상태가 아니라도 반복되거나 만성화된 질환의 경우 울체된 상태를 풀어줘야 하는 환자들이 참 많습니다. 병원에 내원하는 환자의 80%정도는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말이 실감나지요. 심지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아이에게서도 과로와 스트레스에 지친 어른의 울증이 나타납니다. 물론 노인도 예외는 아니지요. 드러난 문제를 하나씩 걷어내고 시간을 두고 환자를 조금씩 더 알아갈수록 여러 증상의 원인에서 울(鬱)을 봅니다. 현대는 가히 울증의 전성시대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울(鬱)'자는 보통 답답하거나 울창하게 우거진 상태를 표현할 때 쓰입니다. <동의보감>은 울을 '병이 뭉쳐서 흩어지지 않은 상태'로, 기혈이 한번 울의 상태에 빠지면 모든 병이 생긴다고 합니다. 특히 적취(積聚)나 징가(癥瘕), 그리고 현벽(懸癖)과 같이 우리 몸에 유형의 덩어리가 생기는 병은 모두 이 울증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글자를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울자의 부수는 鬯(울창주 창)입니다. 울창주는 고대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땅에 뿌려 신을 부르는 의식에 쓰이는 술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술을 빚을 때 용기 안에 기장과 누룩과 향기로운 풀을 섞어 술을 빚고 내리는 것을 형상화한 글자이지요. 이 때 쓰이는 향초로 울금(鬱金)이 쓰였다고도 하는데, 울증을 푸는 약초가 울창주의 재료로 이용되었다는 게 재밌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설문해자의 설명을 중심으로 鬱자를 살펴보면 울창주를 장군(缶)에 가득(彡)담아 마개(冖)담아둔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형의 술과 무형의 향기가 장군 안에 갇혀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답답한 상태이지요. 처음에는 林자 대신 臼자를 썼다고 하고, 후대에 바뀌면서 울창하고 빽빽한 숲을 의미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글자의 의미가 우리 몸에 똑같이 구현된 것이 바로 울증인 셈이지요. 좀 더 세분화하면 기(氣)의 흐름이 막히면 습(濕)이 만들어지고, 그 습은 열(熱)을 형성합니다. 열이 뭉치면 담(痰)을 만들고, 담이 뭉치면 혈(血)의 흐름이 막히고 음식(食)을 소화하지 못해 몸 안에 덩어리를 만드는데 이 여섯 가지가 서로 원인이 되어 병이 발생한다고 봅니다. 병이 열이면 그 중 아홉은 담 때문이다(十病九痰)라는 말이 있는데, 그 담 또한 울증의 한 상황이지요.

그리고 옛 의서는 여섯 가지 울증 원인의 가장 바탕이 되는 기에 울체가 일어나는 까닭은 감정, 기후변화, 그리고 음식의 부조화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옛사람들 삶도 지금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셈인데, 아마도 생명 진화의 긴 역사로 볼 때 인간이 문명이라고 불릴만한 행위를 한 이래로 사람도 병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듯합니다.

울증의 치료는 유형의 것은 제거하거나 풀어내고, 무형의 것은 통하게 함을 기본으로 합니다. 장군의 마개를 열어 술을 땅에 부어 향은 날아가게 하고 술은 흘러가게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러한 목적에 부합하는 약재와 경혈자리, 그리고 뜸과 부항처럼 열과 압력을 이용한 방법을 적절하게 처방합니다. 순리대로 풀어가는 것이지요.

울증에 빠진 환자를 살피다 보면 가장 많은 원인은 역시나 감정(七情)의 부조화입니다. 특히 다른 감정보다 분노와 우울 사이를 방황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내적 불만과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뒤섞여 화라는 양적 반응을 만들기도 하고, 우울이라는 음적 반응을 일으키기도 하지요. 이 두 상태를 오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런 환자를 치료할 때는 드러난 불균형을 잡아주는 것 외에도 감정에 따른 신체적 반응을 조절할 수 있는 기법을 함께 익히게끔 해야 합니다. 호흡법이나 명상, 혹은 특정한 운동방식이 도움이 되지요.

다음으로는 야식이나 폭식과 같은 불규칙한 식습관이나 섭취하는 음식의 종류나 조리방식에 문제가 있는 경우입니다. 물론 이런 경우도 그 이면에는 감정적 요인이 깔려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식습관의 문제를 따로 설명하는 까닭은 드러난 습관을 바꿈으로서 증상의 개선과 그 이면의 감정적 문제 조절에도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적절한 신체적 움직임이 부족한 사람도 있습니다. 귀하고 한가한 사람들이 힘을 써서 움직이지 않고 배부르게 먹고 앉거나 누우면 기혈의 흐름이 정체되어 병이 되므로 적당히, 피로하지 않을 정도로 움직여야 한다는 옛 의서의 말이 나온 까닭이지요. 의서는 부자는 몸이 편한 대신 마음이 괴롭고, 가난한 사람은 몸이 괴로운 대신 마음이 편하다 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현대인은 너무 바빠서 먹자마자 일하고 늦게까지 일하고 먹고 자느라 몸을 고루 움직이지 못합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나쁜 점만을 안고 사는 셈이지요. 이러니 괴롭고, 결국 중한 병에 걸리게 됩니다. 잠시라도 쳇바퀴에서 내려오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이 외에도 울증을 일으키는 요인은 다양합니다. 세상을 살피고 사람과 병을 볼수록 어쩌면 나를 포함한 거의 모든 사람이 울증을 앓고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감당할만한가 그렇지 않은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 그래서 치료로 울증을 풀어내고 난 이후에는 울증을 다루고 견디는 맷집을 키우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우리 삶에 사이다 같은 일이 생기면 좋겠지만, 고래로부터 현실은 늘 고구마 같았음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주어진 시간을 건강하게 살고 싶다면 개인적 해울(解鬱)을, 조금 더 나아가 사회적 해울을 고민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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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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