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쌍 사태가 우리 사회에 남긴 의의가 무엇이냐?"
이런 질문을 가끔 받는다. 이렇게 답한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에 허점이 그득하다는 사실이 (드디어!) 일반에 알려진 거요.”
리쌍 사태 종식 이후로 벌써 세 계절이 지났다. 임차상인들 처지는 그때보다 더 나아졌을까? 그렇지 않다. 임대인은 여전히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을 이유로 들어 임차상인을 내쫓는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은, 리쌍 사태 후 지금껏 단 한 글자도 바뀌지 않았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허점의 백미는 임차상인 보호 기간이 5년이라는데 있다. 이하, 구체적 내용이다.
임차인이 임대차 계약이 만료되기 6개월 전부터 1개월 전까지 사이에 임대인에게 계약갱신을 요구하면, 임대인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이를 거절하지 못한다. 그리고 임차인은 그 이른바 '계약 갱신 요구권'을, 첫 임대차계약 기간을 포함하여 최대 5년간 행사할 수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이 풀이된다.
'임대인이 "임차인 씨, 당신은 5년 이상 장사했으니 이제 그만 나가야겠습니다!"라고 하면, 임차인은 꼼짝없이 가게를 접어야 한다.'
한국에서 100년 가게를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신촌역 앞의 홍익문고가 아직도 옛날 자리에서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건물이 홍익문고의 것이기 때문이다.).
서촌에 위치한 '본가궁중족발'의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 장사 6년 만에 임대인이 바뀌었고, 새로운 임대인 이 씨가, 임차인인 본가궁중족발 사장 김 씨에게 '기존 300만 원 받던 월세를 1200만 원으로 올려 받겠다'고 통보했다(대체 족발을 얼마나 팔아야 월세 1200만 원을 낼 수 있을까?). 보통 임대인이 이렇게 나오면, 임차인은 곧장 짐을 싸서 나간다. 그러나 김 씨는 그러지 않았다. '별안간 쫓겨날 순 없다'며, 마음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이하 맘상모) 등과 함께 투쟁을 시작했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일상
임차인 김 씨를 내쫓기 위한 첫 강제집행시도는, '역대급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이루어졌다. 10월 11일 오전 6시, 검은 옷을 입은 백여 의 사내들이 본가궁중족발 앞에 집결했다. 소식을 듣고 각지에서 달려온 맘상모 회원 등이 문을 막고 저항했다. 밀고 당기는 승강이가 4시간가량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가게를 지키던 한 여인의 이가 부러졌다. 119 구급대가 출동했다. 집행관은 결국에 집행 불능을 선언했다.
난 그날 현장에 없었다. 누군가의 휴대전화를 통해 전송되는 영상으로, 사건을 집에서 간접체험 했다. 영상은 기이했다. 교복 입은 학생과 정장 입은 회사원, 검은 옷을 입은 건장한 사내들과 맘상모 회원 등이 한 프레임에 담겼다. 속칭 '빨간 날이 끝난 다음 날'이었다. 모두가 일상으로 돌아가는 날. 생각했다. '이게 우리 도시의 일상이구나.' 이달 9일엔 김 씨의 손가락 4개가 통째로 찢어지는 사고가 있었다. 임대인 측 용역업체 직원들이, 김 씨를 가게 밖으로 끌어내려다가 생긴 일이다.
임대인 이 씨는 당당하다. 자신의 행위가 '합법'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 전체공개 게시물로 불만을 토로하길 즐긴다. "다친 건 자업자득", "지 발로 나가면 왜 그런 사고가 나겠어! 지랄발광하니 사고 생기지!" 한 가족의 생계수단을 빼앗는 이유가, 단지 돈 때문임을 굳이 숨기지도 않는다. 그는 말한다. "시세차익 다다익선!" 이토록 솔직한 임대인이라니!
우린 그들 노력의 결과에 무임승차할 것이다
본가궁중족발 사건 관련하여 세 가지는 확실히 전하고 싶다. 첫째, 임차인 보호 기간 5년은 너무 짧다. 현재 이 문제에 관해선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 아무런 이견이 없다. 한편, 지난 9월, 정부와 여당은 임차상인 보호 기간을 현행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둘째, 김 씨와 맘상모 등의 초 법률적 저항은, 흔히 불복종운동이라고 불리는, 사회운동의 한 방식이다. 불복종운동이란, 특정 법률이 정의, 혹은 도덕적으로 옳지 아니하다는 판단이 들 때, 누군가가 그 법률을 따르지 않음으로써 해당 법률의 해악과 부조리를 사회에 전시하는 운동이다. 결코 쉬운 운동이 아니다. 법률 위배에 대한 모든 불이익을, 당사자 본인이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즉, 망하기를 각오한 후에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불복종운동이다(국내 부채 운동 등 관련하여 여태껏 불복종운동의 사례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몇몇 활동가 및 국회의원 등이 제안하고 있지만, 감히 뛰어들 사람이 없는 거다.)
셋째, 김 씨와 맘상모 등이 처절히 싸워 언젠가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의 불합리함이 수정되면, 우리는 기꺼이 그들 그 노력의 결과에 '무임승차'할 것이다.
임차상인 보호 법률은 한국에 없다
걱정된다. 김 씨는 1차 강제집행시도 당시, 몸에 시너를 부었다. '다행히' 불꽃을 구하지는 못했다. '사건'이 '참사'가 되는 건 순간이다. 2009년 용산사태도 임차상인을 알몸으로 내쫓으려는 것이 문제였다(그때도 시너가 사용되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런 처사는 '합법'이었다. 그리고 그놈의 그 합법이, 바로 그 끔찍한 사달을 냈다. 그런데 아시는가? 관련 법률, 사태 발생 이후 20여 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아직 정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임차상인을 보호하는 법률은 현재 한국에 없다.
본가궁중족발 사건의 대결 구도는 단순하다. 이건 정의, 혹은 도덕적 취향에 관한 문제다. '(아직까진) 합법이므로 임대인이 임차인의 생계 수단을 빼앗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쪽은 임대인 편이다. 그러나 '(아무리) 합법이라도 그래선 안 된다'는 쪽은 임차인 편이다. 난 당연히 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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