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안철수 평행이론과 2030 세대

[기자의 눈] 유승민은 안철수와 다를까?

유승민 의원이 13일 바른정당 대표에 당선됐다. 5.9 대선 이후 반년 만이다. 지난 7월초 자유한국당이 홍준표 대표를, 8월말 국민의당이 안철수 대표를 각각 당수로 선출한 데 이어 또다시 '대선후보 출신 당 대표'가 추가됐다. '승자'인 문재인 대통령을 제외하고, 지난 대선에 출마했던 이들 가운데 2선에서 쉬고 있는 것은 정의당(6석)의 심상정 전 후보 정도다. 아무리 출마 명분으로 '사람이 없다'고 강조해도, 정의당 입장에서 보면 '있는 사람들이 더 한다'고 비꼴 만도 하다.

이 가운데 스스로도 "독고다이"임을 내세우는 홍준표 대표는 정치사에서 전무후무하다시피 한 캐릭터이지만, 안철수·유승민 두 '재수생'에 대해서는 묘한 평행이론이 떠오른다. 단지 대선주자 출신으로 당 대표가 됐다는 것뿐만이 아니다. (안 대표는 지난 9월 중순께 '유승민 비대위원장 추대설'이 돌던 즈음 기자들과 만나 "왜 거기는 반대 안 하느냐"고 농담 섞인 푸념을 하기도 했다. '대선 패장이 당 대표가 되는 건 부당하다'는 당 내 비난을 딛고 대표에 당선된 지 10여 일 후였다.)

지금 두 대표에게 공통으로 던져진 숙제는 '통합'을 추진하면서도 그 통합론에 대해 당 내에서 분란이 일지 않도록 정리하는 것이다. 안 대표나 유 신임 대표나, 서로를 연대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안 대표는 최근 국민의당을 강타한 내분 사태에도 불구하고 "정책연대, 선거연대까지 시도해볼 수 있다는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했다. 유 대표가 대표 당선 직후 처음 낸 메시지도 한국당과의 '보수 통합' 보다는 국민의당과의 '중도 통합'에 더 기울어 있다. (☞관련 기사 : 유승민 "단 한 명도 내 뒤에 남겨두지 않겠다")

물론 당 내에는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두 당 모두 반대의 목소리는 똑같이 요약된다. "그 쪽이 아니다!" 국민의당에서는 바른정당이 아닌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바른정당에서는 국민의당이 아닌 한국당이 '연대'에서 우선 고려할 대상이라고 한다.

안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는 사발통문이 국민의당 내에 돌아다닌 상황에 비길 바는 아니지만, 유 의원 역시 앞서 김무성 의원 등 탈당파를 설득하는 과정에서도 '전당대회 사수'를 꿋꿋이 외친 것에 대해 협량하다는 비판을 들었다. 정병국 의원, 남경필 경기지사 등 '전당대회를 연기해서라도 일단 탈당을 막고, 한국당과 통합 전당대회를 하자'고 주장했던 이들은, 현재 통합 전당대회를 계속 주장하기는 난망한 처지가 됐지만 그럼에도 유 의원의 리더십에 대한 회의는 계속 갖고 있다. "정치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 "물은 맑아지는데 물고기가 자꾸 떠난다"는 말이 들렸다.

연일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국민의당 내홍 사태도 그 본질은 안 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것이다. (☞관련 기사 : "이제 안철수가 소통하자고 하면 겁이 난다") 유 대표가 '자강파'의 지도자였던 것처럼, 안 대표 역시 자신이 대표가 되지 않으면 국민의당이 민주당에 흡수통합될 것이라는 당 내 일각의 주장을 동력으로 당 대표가 됐다. 다만 바른정당의 경우는 '탈당 후 한국당 입당'이 현실이 된 반면, 국민의당에서는 '탈당 후 민주당 입당'을 비안(非안철수)계에서 언급하지는 않는다.

당권을 잡는 데에는 성공했음에도, 자신들이 의사 결정 과정에서 배제됐다는 구성원들의 반발로 곤란을 겪고 있는 안 대표의 처지는 유 대표가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주장하는 것이 '새 정치'든 '개혁 보수'든 '중도 통합'이든, 그 주장의 내용보다 주장을 제기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정치 리더십의 요체다. 당장은 '그 사람 말고는 대안이 없다'는 이유에서 당원들이 과반 지지를 몰아 줬지만, 이후 하기에 따라서는 당내 일부 불만세력이라는 불씨가 산불로 번질 수도 있다.

특히 안 대표는 다른 면에서도 유 대표에게 좋은 '교재'가 될 수 있다. 2012년 2030 세대는 '안철수 현상'이라는 돌풍의 주역이었으나, 2017년의 2030 세대는 대선에서 안철수를 외면했다. 지난 대선에서 20대로부터 13.2%의 지지(출구조사 기준, 추정치)를 획득한 것은 현재 보수 정치인으로서 유승민이 가진 최고의 자산이다. 그때의 안철수와 지금의 유승민은 똑같이 '안보는 보수, 경제·사회는 진보'를 외친다.

2017년 현재의 2030세대는 DJ의 남북정상회담을 생방송으로 보고 열광한 세대가 아니다. 이들은 그 후에 태어났다. 이들에게 햇볕정책은 '대안'이 아닌 '기성'의 테제였다. 때문에 '안보는 보수'라는 수사는, 김정일-김정은 정권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가진 이들에게 '먹히는' 구호다. '경제·사회는 진보'라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20대나 30대 초는 세금을 거의 내지 않고, 주식 투자도 하지 않는다. 유승민의 '안보는 보수', '증세를 통한 중부담 중복지'는 이들에게 지지받을 만한 담론이었다.

이들은 또 취업난, 경제적 양극화와 불평등, 강자의 갑질 등 사회경제적 모순에서 가장 약자의 위치에 서 있다. 이는 이들이 2012년 "삼성 동물원"을 비판한 '안철수 원장'에게 열광했던 이유인 동시에, 2017년 "단설 유치원 자제"를 말한 '안철수 후보'를 외면한 이유다.

이와 관련, 오늘 대표직 수락연설에서 유승민이 "비정규직·저임금·여성·청년 노동자 차별을 시정하는 동시에 노동시장 유연성을 위한 노사정 합의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한 부분은 그의 강점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그는 차별의 존재를 인식하고 진지한 대안을 고민할 만큼 '진보적' 이지만, 근본은 노동시장 유연화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보수적' 인물이다. '알바' 중인 20대는 유승민에게 감동을 받겠지만, 그가 취업을 준비하면서 이력서를 쓸 만한 곳이 죄다 '유연화'된 비정규직 일자리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유승민에 대한 평가가 유지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정치인으로서 보낸 5년 세월 동안 2030 세대에게 안철수는 '우상'이자 '멘토'에서, 지지율 10%대의 그저 그런 정치인으로 탈바꿈됐다. 안철수는 지난 대선 출구조사에서 20대 17.9%, 30대 18%의 지지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유승민은 같은 조사에서 (보수 정치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받은 '13.2%'를 유지하고 더 키워갈 수 있을까, 아니면 곧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월급 통장을 만들 이 세대에게 실망감을 주며 내리막길을 걷게 될까? 이는 '중도 통합'이냐, '보수 통합'이냐는 질문이 단순히 유승민에게 지방선거 전략 차원을 넘어선 어려운 문제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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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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