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 집에 '우리'가 있어서 좋아"

[격월간 민들레] 지리산 '우리 집' 이야기

지리산 자락으로 이사 오다

올해 8월 3일은 우리 가족이 지리산 자락으로 이사 온 지 만 4년 되는 날이다. 겨우 4년밖에 안 됐나 싶다가도, 이사하던 날부터 첩첩이 겪은 우여곡절이 바로 어제 일처럼 눈앞에 선하다.

이사하던 날 주룩주룩 비가 내렸다. 이삿짐 차가 마당까지 들어올 수 없는 상황이라 그 비를 다 맞아가며 짐을 옮겨야 했다. 빗속에서 겨우 짐을 다 들이고 한숨 돌리나 했는데, 갑자기 하늘이 시커멓게 변하더니 천둥 번개가 내리쳤다. 살면서 한 번도 경험 못 한 엄청난 굉음이 울리고 모든 전등이 깜박깜박하더니 전기가 뚝 끊겼다. '아이고, 여기가 지리산이구나'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지금에야 왕년의 추억이라며 신나게 수다 떨지만 당시는 하루하루가 황망하고 놀랍고 어찌할 바 몰라 허둥대던 나날이었다.

결혼한 지 4년쯤 되고부터 우리 부부는 시골로 눈을 돌렸다. 한동안 별생각 없이 살았는데, 둘째 낳고 큰아이를 맡길 어린이집을 알아보면서 눈이 뜨였다. 서울에서 아이 둘 키우며 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 듯했다. 아이 밑으로 들어가는 비용도 그렇고 아이가 겪어야 할 무한 경쟁, 부모로서 치러야 할 갖가지 경쟁에 자신이 없었다. 대단한 교육철학이라기보다는 단지 그 대열에서 빠지고 싶은 마음이 컸다. 공부에 열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입시라면 충분히 경험해봤으니 그걸 아이들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더더욱 한적한 지역을 찾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다행히 두 사람 다 프리랜서여서 가능했다).

뭐든지 '책으로 배웠어요' 스타일답게 나는 시골 생활을 꿈꾸며 이런저런 책을 찾아 읽었다. 그중에서도 단연 땅, 집, 건축 관련 책을 많이 읽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우리 가족에게 맞는 땅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고, 넉넉지 않은 예산에 맞춰 건축가와 시공사를 잘 만나는 일도 어려운 문제였다. 한데 그런 행운이 쉽사리 찾아올 것 같지 않았다. '집 한 채 짓고 나면 10년은 늙는다'고 으레 하는 말 때문에라도 집 지을 생각은 점점 더 아득해졌다. 용기도 부족하고 소심했던 우리는 대신 '잘 지어진 집을 찾아보기'로 결론 내렸다. 도시도 아니고 아파트도 아닌, 시골에서 마음 맞는 집을 찾기란 직접 짓기보다 더 힘들 수도 있지만 인연이 있을 터,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렇게 만나게 된 것이 지금의 우리 집이다.

먼저 소개받은 것은 '집'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집을 둘러싼 '마을'과 지리산 자락에 속한 남원이 마음에 들었다. 지리산에서 흘러내리는 물길 따라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들, 산의 안쪽이라서 마을 이름이 '산내'. 첩첩산중 들어가야 나오는 작은 면 단위임에도 이미 알음알음 귀촌자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선본 집은 '실상사작은학교' 근처로, 주민들이 많이 사는 마을과는 외떨어진 곳에 있었다. 집 앞으로 펼쳐진 풍광은 더없이 아름다웠고, 날씨 좋은 날 빼꼼하게 얼굴 내미는 천왕봉이 손에 잡힐 듯 아른대는 것도 큰 매력이었다. 마을도 맘에 들고 아이들이 다닐 초등학교도 좋아 보이고, 모든 게 우리가 꿈꾸던 그림이었다.

그렇지만 정작 중요한 '집'이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은 지 4년이 안 됐다는데, 전 주인은 짓자마자 이사 갈 요량으로 집 안팎을 가꾸지 않은 상태였다. 우리는 그때 왜 딴 집을 알아볼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 왜 꼭 집을 사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세를 살 생각은 왜 못했을까? 아니면 이 집이 정말 인연이었던 걸까? 어쨌든 나보다는 남편이 집을 더 마음에 들어 했고, 나도 마을을 돌아본 후 마음이 기운 상태였다. 결국 (솔직히는 마을을 사는 심정으로) 이 집을 사기로 의견을 모았다.

▲ '집을 샀다'라기보다 '지리산 자락 마을을 샀다'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한수경

건축가가 생각하는 '특별한 집'이란

집은 전체적으로 깨끗한 인상이었지만, 비전문가인 내가 봐도 허술한 부분이 눈에 띄었다. 짐을 다 빼고 보니 청소만 하고 들어오기엔 여러모로 심각했다. 결국 이사를 바로 하지 못하고, 한 달간 내부를 수리했다. 짓는 게 두려워서 기존 집을 구한 건데, 어쩌다 보니 내부 공사에 테라스, 담장까지 새로 만들고 있었다. 그러면서 남편은 점차 집수리에 익숙해졌다. 목공도 하고 용접도 배워 실습하면서 나중에는 사람을 쓰지 않고 직접 만들고 고치는 경지에 이르렀다. 거의 2년 넘도록 집을 손봤다. 꾸준히 집을 다듬다 보니, 집에 관해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이렇게 집을 고칠 거였다면 차라리 땅을 사서 직접 지을 걸, 그러면 비용도 절약되고 살 집을 짓는 보람도 있었을 텐데, 후회가 됐다. 집을 지어본 사람은 처음 겪은 시행착오 때문에라도 또 집을 짓고 싶어 한다더니, (나는 지어보지도 못했건만) 내 맘이 그러했다.

집을 생각하면 먼지가 한 겹 내려앉은 마냥 마음이 뿌옇던 즈음, 집 관련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도대체 사람에게 집이란 뭘까? 나는 왜 자꾸 집에 불만이 생기는 걸까? 그런저런 의문이 떠돌던 차에 눈에 띈 저자가 바로 임형남, 노은주였다. 부부 건축가인 두 사람이 쓴 책을 몇 권 읽다가 문득 특이한 걸 발견했다. 바로 저자 소개였다. 시인이자 건축가이며 임·노 부부의 친구이기도 한 함성호 시인이 글맛을 한껏 살려 저자 소개를 썼는데, 재밌는 것은 책마다 새롭게 썼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노은주는 일에는 꼼꼼하지만, 일상에서는 뭘 잘 잃어버리고 다닌다. 그걸 챙기는 사람이 임형남이다. 임형남은 일에 겁이 없다. 그러나 그 일을 마법처럼 마무리하는 건 노은주다."(<작은 집 큰 생각>(교보문고 펴냄) 저자 소개 중)

"늘 사람에게 베풀고, 남의 뒤에 서고, 먼저 말하지 않고 들으니 그들의 한상차림은 글이든 건축이든 삭힌 맛처럼 깊고, 배인 맛처럼 은은하고, 무친 맛처럼 생생할 수밖에 없다." (<집, 도시를 만들고 사람을 이어주다>(교보문고 펴냄) 저자 소개 중)

▲ <작은 집 큰 생각>(임형남·노은주 지음, 교보문고 펴냄) ⓒ교보문고
저자 소개 덕분에 마음이 동하여 부부가 쓴 여러 책을 읽게 됐다. 그중 밑줄을 쳐가며 두 번이나 읽은 책이 바로 <작은 집 큰 생각>이다. 이 책은 '한국공간디자인대상'을 수상한 금산주택 이야기, 임·노 부부가 직접 살았던 집 이야기가 구성된다. 두 이야기 모두 나와 가깝게 느껴진 것은, 금산주택이 지어지기 전 우리도 구경삼아 그곳에 땅을 보러 간 적이 있었고, 뉴타운 확장 공사로 그들이 어쩔 수 없이 이사 나간 바로 그곳에 우리 가족이 이사해 살기도 했기 때문이다.

상을 받은 금산주택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건축가 부부가 살았다는 집이 몹시 궁금했다. 사람들의 막연한 꿈을 집이라는 실체로 재현해주는 건축가이니, 그들이 사는 집은 얼마나 독특하고 특별할까? 보통 사람들은 미처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가 집 안 구석구석 스며 있지 않을까? 한데 이 건축가 부부가 묘사하는 집 모양새는 그다지 특별할 게 없었다. 자신들이 직접 설계해서 짓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집 구조나 자재나 가구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다만 엉뚱하고 특이한 점이 있다면 집을 인격체 대하듯 한다고 할까. 이를테면 "우리는 심지어 집도 나이를 먹으면 사람처럼 자아가 생기고 생각도 생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했다"(155쪽)거나 "하긴 이 집도 한때는 싱싱함과 아름다운 자태를 온 동네에 뿜어댔을 것이다. (…) 같이 늙어가다가 갑자기 꽃을 피우려니 피곤하기는 했을 것"(156쪽)이라고 짐작하면서 말이다.

글 앞부분에 이사 간 집의 형태가 간단히 소개되고 겨울에는 집 안에서도 스웨터를 입고 양말도 꼭 신어야 할 만큼 춥다는 말도 슬쩍 흘리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집 이야기는 늘 딴 데 있다. 눈 오는 날 아이들과 마당에서 뒹굴고 논 이야기, 기운 넘치는 진돗개와 갑자기 나타난 오리 이야기, 무성한 잡초와 야생화 이야기, 창문 너머로 뵈는 북한산이 근사하다는 이야기, 앞집 시인이 뜯어다 준 쑥으로 국 끓여 먹은 이야기…. 이 모두가 그들이 살던 집을 구성하는 중요한 내부 요소가 된다.

돌이켜 보니 나에게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의 크기나 프로그램은 생각보다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하루 종일 각자 볼일을 보다 겨우 저녁에 얼굴을 맞대고 기껏 함께 밥 먹기도 바쁜 일상에서 집의 하드웨어들은 있는 듯 없는 듯 그냥 고장만 나지 않으면 되었다. 집의 기억들은 현관문을 열고 신발을 벗고 들어갈 때 발바닥의 느낌처럼 몸에 남겨진 촉감, "오늘은 뭐 재밌는 일 없었니?"로 시작해 아이들과 나누었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차가 들어오지 않는 좁은 골목을 느린 속도로 걷던 걸음 같은 것들로 채워졌고, 그것이 이리저리 뭉뚱그려지며 좀 더 구체적인 '나의 집'이라는 고유명사로 치환되곤 했다.(161쪽)

내가 꿈꾸는 '나의 집'은 바로 여기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불만이 점점 쌓이기에,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요량으로 집의 장단점을 찬찬히 적어봤다. 하나도 빠짐없이 쓰고 나니 내가 생각하는 우리 집의 장점은 아홉 개, 불만은 열일곱 개였다. 싫은 점이 좋은 점의 갑절이었다. 하지만 '장점이 사라지는 대신 단점을 고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의향이 있는가?' 자문해보니, 내 대답은 '아니올시다'였다. 장점은 압도적으로 큰 비중이지만 불만은 소소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평소 내 신경이 온통 그 소소한 곳에 가 있다 보니 집 자체에 삐딱선을 탄 것이다.

이 집을 결정할 때 가장 우선순위에 둔 것은 마을이었다. 집 자체만 생각할 때는 퍼뜩 이런 노래가사도 떠올랐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몇 번 들어본 적 없는 최희준 선생의 '하숙생'을 나는 반복해서 첫 부분만 중얼거렸다. '어차피 나그네 인생인데 집이 뭐가 중요해, 마음 편하면 됐지.' 가사를 읊조릴 때 스미던 느긋한 기운에 이 집으로 올 용기가 생긴 것인지도 모른다.

결혼한 뒤로 10년 동안 이사를 다섯 번 했다. 그리 깔끔한 성격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번씩 집 청소를 할 때면, 쓸고 닦고 빡빡 문지르면서 천년만년 살 것처럼 부산을 떨곤 했다. 허나 지금 그 집들은 다 어디 있는가? 내가 특별히 좋아했던 집의 어떤 부분이나 끊임없이 불만을 토로했던 부분도 결국은 다 부질없어졌다. 한 줌 남은 거라곤 그 공간을 함께 채운 소중한 사람들의 아련한 모습뿐.

첫 번째 시행착오를 통해 두 번째 집까지 짓게 된 사람은 만족할까? 그렇지 않다고 한다. 두 번째 집을 짓고 나면 또 세 번째 집이 짓고 싶어지는 게 사람 욕심. 중요한 것은 껍데기가 아닌데 우린 너무 껍데기에만 집착하는 병이 있다. 누구와 더불어 그 공간을 채우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왜 나는 매번 까막까막하는지.

아이들에게 물었다. "너희는 이 집에서 뭐가 제일 좋아? 뭐가 제일 싫어?" 둘째가 그런다. "나는 우리 집에 '우리'가 있어서 좋고, 영화관이 있어서 좋아." 우리 집에는 어떤 용도로도 쓰기 애매한 공간이 하나 있다. 습하고 어두워서 잘 쓰지 않는 그곳을 남편이 가족 영화관으로 꾸몄다. 실은 내가 애물단지로 여기는 곳인데, 우리 아이들은 제일 좋아하는 장소로 꼽은 셈이다. 사람마다 이렇게 다르다니. 먼 훗날 아이들의 기억 속에서 이 집은, 애매한 그 영화관은 방울방울 얼마나 아련한 추억이 될까.

땅 모양, 집 구조, 골조, 마감재, 조경에 대해 누구보다도 전문가인 건축가 부부가 내게 조곤조곤 충고한다. "우리는 집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고, 집도 우리로부터 자유롭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30쪽)고. "살았던 집을 아름답게 추억하게 하는 것은 집의 크기도, 위치도, 재산적 가치도 아닌 그 집의 한 부분을 구성했던 지난 삶의 조각들"(178쪽)이라고. 그동안 끊이지 않는 내 불만에 우리 집이 얼마나 주눅 들었을까. 전문가 부부의 충고대로 집에 대해 부질없이 쌓았던 불만을 걷어내고 훨훨 자유로워져야겠다. 집은 집대로 세월 따라 연륜을 쌓아갈 것이라 믿고.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장난감, 거실 탁자 위에 쌓인 책, 덩그러니 놓여 있는 머그잔 하나, 그 사이로 삐죽이 한발 들여놓은 햇살까지도 훗날 따뜻하게 기억하고픈 오늘 우리 집의 흔적이다. 둥지를 튼 지 5년째, 앞으로 또 어떤 냄새와 소리와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이 집을 채워나가게 될까. 둘째아이 말마따나, 나도 우리 집에 '우리'가 있어서 참 좋다.

▲ 한 장 한 장 직접 벽도를 쌓아 담장을 만드는 남편. ⓒ한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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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와 함께 대안적인 삶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민들레>는 1999년 창간 이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출판 및 교육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이라는 통념을 깨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다양한 배움'의 길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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