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인 대런 아세모글루와 사이먼 존슨은 그들의 저서 <권력과 진보>(김승진 옮김, 생각의힘 펴냄)에서 기술의 진보가 자동적으로 전체 사회의 번영으로 이어지지 않으며, 기술을 둘러싼 권력관계가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법학자 로베르토 웅거는 그의 저서 <지식경제의 도래>(이재승 옮김, 다른백년 펴냄)에서 지식경제 하에서 만들어진 선진적 생산방식이 사회 전체로 퍼져나가기 위해서는 지식경제가 사회로부터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확산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접근방향은 다르지만 이들은 경제의 가장 생산적 영역에서 나타나는 혁신이 '자연스럽게' 경제와 사회 전체의 번영으로 퍼지는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20세기에 가장 성공적인 복지국가라는 평가를 받았던 스웨덴 모델의 핵심은 경제의 가장 생산적인 부문에서 형성된 부를 사회 전체로 퍼뜨리는 것에 있었다. 여기에는 북유럽 복지국가의 보편적 복지정책이 물론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연대임금제도와 공공부문이 담당하는 교육, 돌봄, 복지 서비스 영역에서 만들어진 좋은 일자리의 몫이 컸다. 스웨덴 모델의 이와 같은 특성은 대런 아세모글루와 사이먼 존슨, 그리고 로베르토 웅거의 지적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이들 역시 경제적 혁신을 사회 전체의 번영으로 이어가는 경로에서 일자리의 역할을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반세기 만에 고도성장을 통해 선진국에 이르렀지만, 그 성장은 중심부문에 자원을 집중하고 주변부를 소외시키는 불균형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불균형 성장은 적어도 빈곤에서 벗어나 고도성장이 이루어지는 기간 동안에는 성장의 속도뿐 아니라 어느 정도의 분배적 효과도 가졌지만 이후에는 경제의 중심부와 주변부의 격차에서 비롯된 불평등 문제를 심화시키기도 했다. 여기에는 고도성장기 동안 지체된 사회정책의 영향도 컸지만 흔히 '노동시장 이중구조'로 불리는 일자리의 격차가 핵심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아세모글루, 존슨, 웅거 등의 우려처럼 경제의 선진적인 부문에서 나타난 혁신과 번영이 사회 전체로 확산되지 않는 문제가 나타난 것이다. 최근 반도체 부문을 중심으로 주가와 성장률 전망이 상향 조정되는 가운데 고용지표는 개선되지 않는 '고용 없는 성장' 문제 역시 그 연장선 위에 있다. 경제의 가장 선진적인 부문이 다른 부문들과 분리된 채 고립된 번영에만 머무는 문제가, 최근 우리나라에서 더욱 심화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고립된 번영은 분배의 관점에서뿐 아니라 지속가능한 성장 관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미 지난 2010년대 OECD, IMF, 세계은행, ILO, UNDP 등 많은 국제기구들은 성장의 과정에서 사회 전반을 포용하지 못할 경우 성장은 지속되지 않는다는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에 대한 어느 정도 합의된 입장을 제시한 바 있다. 경제의 선진부문에서 만들어지는 부를 어떻게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킬 것인가는 규범적 평등론 관점에서뿐 아니라 성장과 발전의 지속을 위해서도 중요한 문제다. 여기에서도 재분배적 사회정책뿐 아니라 성장의 기회에 대한 참여, 즉 일자리와 경제적 기회가 포용적 성장의 핵심으로 제시된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최근 이재명 정부에서 '메가특구'에 대해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 주52시간제 완화와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도입, 파견대상 업종 확대 등 비정규직 사용과 노동시간에 대한 규제 완화가 논의되는 상황은 당혹스럽고 놀랍다. 경제의 선진부문에서의 번영을 일자리를 매개로 경제 전반으로 확산해야 한다는 논리는 선진부문에서는 양질의 일자리가 생겨나도 다른 부문은 그렇지 못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메가특구의 노동규제 완화는 아예 경제의 가장 선진적 부문에서조차 노동권을 할인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경제의 가장 선진적인 부문에서 나타나는 번영을 다른 부문으로 확대하기는커녕 해당 부문 안에서도 일부가 전유하겠다는 이야기다. 할인의 대상은 노동만이 아니다. '메가특구특별법'은 환경영향평가를 비롯한 각종 절차의 단축을 함께 예고하고 있다. 특구의 경쟁력을 혁신이 아니라 노동과 환경이라는, 공동체가 떠안게 될 비용의 할인에서 찾겠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노동권과 환경적 책임의 할인이 반도체 부문의 경쟁력을 높여 결과적으로는 더 많은 좋은 일자리로 이어진다는 낙수효과 주장에 기초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용 없는 성장'이나 '포용적 성장' 논의가 거듭 확인해온 것은 애초에 포용적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로 이루어지는 성장이 자동적으로 번영의 확산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경제의 어떤 부문에서의 성장도 그 부문만의 공로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모든 종류의 혁신은 오랫동안 축적된 지식, 사회가 함께 길러낸 사람, 국민 전체가 기여하여 만들어낸 인프라, 그리고 공동체가 함께 지켜온 물·에너지·토지라는 자연적 기반에 기대어 이루어진다. 막대한 용수와 전력을 필요로 하는 반도체 산업은 특히 그러하다. 지역의 댐과 전력망에 기대어 성장하면서 그 환경적 부담은 지역사회와 미래 세대에 남기는 방식이라면, 그것은 번영의 공유가 아니라 비용의 전가일 뿐이다. 경제의 선진적 부문에서 만들어진 부에 대해 해당 부문이 어느 정도의 권리를 가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공동체 전체의 지속을 위해서는 어떻게 그것을 경제 전체의 공유된 번영으로 이어갈 것인지를 고심해야 한다. 경제의 가장 선진적인 영역에서조차 노동에 대한 권리와 환경에 대한 책임을 유예해야 경쟁력이 생겨난다고 생각한다면 사회 전체의 번영으로부터는 점점 더 멀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메가특구는 노동과 환경을 할인하는 특구가 아니라, 좋은 일자리와 지속가능한 발전의 특구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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