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석 수 20석인 원내 4당 바른정당의 임시 지도부 구성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바른정당의 진로가 향후 있을지 모를 정계 개편 가능성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사퇴한 이혜훈 대표는 대표적인 '자강론'파였다. 이 대표와 하태경 최고위원 등은 자유한국당과의 연대·통합은 절대 불가하며 오히려 국민의당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해 왔다.
하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희들이 국민의당과 연대 생각을 한다"며, 우선 정치 개혁을 고리로 정책 연대를 추진해 보고 이를 통해 신뢰가 쌓이면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바른정당 대선후보였던 유승민 의원과, 유승민계로 분류되는 전현직 의원들 역시 한국당 내 친박계와는 당을 함께할 수 없는 처지인 만큼 '자강파'로 분류된다.
반면 김무성 의원은 당 안팎에서 '보수 통합'이 이뤄질 경우 주요한 역할을 맡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김 의원은 19대 대선 패배 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었으나, 오는 11일 정기국회 대정부질문 정치분야 질의자로 나서는 등 정치 활동을 재개하고 있다.
특히 김 의원은 최근 자유한국당 정진석 의원과 함께 '열린 토론, 미래'라는 의원 연구모임을 출범시켰다. 김 의원은 지난달 30일 이 모임 1차 세미나 이후 기자들이 '토론 모임이 정책연대로 시작해 양당 통합으로 가는 것이냐'고 묻자 "그런 고민도 하고 있다"며 한국당과의 재통합에 긍정적 의사를 밝혔다.
때문에 유승민·김무성 둘 가운데 누가 비대위원장을 맡느냐에 따라 바른정당의 정치적 진로가 달라질 수 있다. 실제로 당 내에서 한국당과의 연대·통합에 긍정적인 이들은 김 의원을, 자강·독자 노선을 주장하는 이들은 유 의원을 지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현재로서는 둘 모두 자신이 비대위원장을 맡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상태는 아니다. 김 의원은 "직접 나설 생각이 없다"고 주변에 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서도 "나는 하지 않겠다. 뒤에서 돕는 것이 더 낫다"고 말했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헀다.
반면 유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비대위원장 등판론에 대해) 그 점은 제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고 우리 당 의원·당협위원장과 함께 당의 총의를 모아 결정할 일"이라고 원론적 입장만 밝혔다. 유 의원은 자신이 자강론파로 분류되는 데 대해 "저는 자강이라는 단어 자체를 써본 적이 없다"고도 했다.
유 의원의 이같은 입장은, 거꾸로 의원들의 요구가 있을 경우 비대위원장직을 맡을 수 있다는 뜻도 된다. 실제로 전날 바른정당 국회의원-원외 당협위원장 연석회의에서는 이기재 서울 양천갑 당협위원장이 "유 의원이 대선 패배 이후 뒤에 물러나 있는 것은 좋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아니다. 홍준표·안철수 대표 모두 전면에서 당을 지휘하고 있다"며 "유 의원이 전면에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병국 경기 파주갑 위원장도 "유 의원이 100일 동안 조용히 있었는데 충분하다. 국민의 아이콘으로 발돋움한 유 의원이 당원들에게 대선에서 진 빚을 갚아 달라"고 말했다.
다만 유 의원이 비대위원장을 맡는 방안에 대해 이른바 '통합파'의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 바른정당 관계자는 "유 의원이 비대위원장을 한다면 김 의원 쪽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며 "그리고 유 의원이 사람들을 포용·통합하는 타입의 지도자는 또 아니지 않느냐"고 했다. 한국당과 국민의당이 앞서서 홍준표·안철수 전 대선후보를 대표로 선출하며 '물꼬'를 터주기는 했지만, 유 의원 입장에서는 대선 패배 책임론도 부담스러울 수 있다.
때문에 온화한 성품인 주호영 원내대표가 지난 대선 직후 6.26 전당대회 때까지처럼 당 대표 권한대행을 맡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3선인 김용태 의원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일단 좀 안정을 취해야 하니, 주 원내대표가 당분간 권한대행을 하면서 (의원들의) 이야기를 두루두루 들어야 하지 않겠나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 원내대표가 온화하고 합리적인 인물이기는 해도 대중적 인지도나 인기를 가진 카리스마적 지도자는 아니라는 점 때문에 '주호영 권한대행' 체제로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당 내에서도 회의론이 짙다. 김 의원도 주호영 권한대행 체제는 지방선거 전 조기 전당대회를 치를 때까지가 적당하다고 본다며 "(전대 시점은) 정기국회 끝나고 나서 하면 된다"고 했다.
조기 전당대회 주장에도 현실적 문제는 있다. 정기국회 후 지방선거를 준비해야 할 시점에, 전당대회를 치르느라 한두 달 시간을 보내게 된다면 선거 준비에 적잖은 차질을 주게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번에는 주 원내대표께서 대행 체제로 이끌어 주셨지만, 이제는 비대위로 가는 것이 맞다"(조병국 위원장, 전날 회의에서)라는 주장이 나온 이유도 애초에 그래서다.
일각에서는 조기 전당대회 대신 비대위 체제로 가되, 김세연·김용태 의원 등 비교적 젊은 3선 의원들이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각각 바른정당의 부산시장·서울시장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만큼 이들이 비대위원장직을 맡으려 할지도, 맡기는 게 적절한지도 의문인 상황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