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난 어디에도 속한 것 같지 않고 떠돌이 혹은 박쥐 같은 느낌으로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소속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주변의 직장 동료, 학교 동문들, 현장의 연극 선후배 등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이야기해 봐도 항상 미래에 대한 불안, 생활고, 직업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사회보장제도 밖에 있는 투명인간 같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천덕꾸러기로 취급받고 천대받는 느낌이었다.
분명히 선배들은 옛날보다 좋아진 환경이라는데, 현실에서는 체감되지 않았다. 오히려 옛날보다 목숨을 잃거나 스스로 끊는 사람이 많아졌다. 무엇이 좋아진 걸까? 그 많은 협회와 단체는 우리가 처한 현실에 대해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정부는 긴급지원금이나 창작지원금 등 당장 밥값을 주는 생색내기식 임기응변 지원제도를 만들어 냈다. 그것도 당신이 얼마나 가난하고 힘든지 증명해라, 그러면 주겠다라는 심사기준으로….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마로니에에서 몇몇 연극인들이 모여 추모를 하기 시작하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몇몇이 모여 서명을 받고 잊지 않으려 지금도 주말마다 촛불을 밝힌다. 그렇게 예술하는 사람들이 광화문 단식 텐트를 지키며 릴레이 단식을 이어 갔고, 거리로 나가 이것은 잘못된 거라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때 만난 인연들과 이야기 나누다 우리의 환경개선을 위해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하는 동료들과 만났다. 그러나 노동조합에 대해 잘 모르고, 우리가 노동자인지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정체성 문제부터 혼란스러웠다. 그럼 조합에 대해 공부를 해 보자 해서 책을 읽고 토론하고 노동조합의 경험이 있는 분들과 함께 2년여간 스터디를 했다. 그러면서 '연극인유니온준비위'라는 이름으로 인터뷰도 하자 주변에 이런 것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문도 났다.
검열, 블랙리스트 등 공연예술계의 문제가 탄핵의 사유가 되고, 특검의 조사가 이루어지면서 올바른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연극이, 예술이 침묵하고 있을 수 없었다. 이제는 우리도 우리의 권리를 찾고, 건강한 사회, 건강한 문화예술 생태계를 위해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하는 선후배님들과 토론회를 갖고 공연예술인 노동조합창립준비위원회를 발족했다. 일단 조합원 100명을 모아 창립하자고 했지만, 3월 27일 창립식까지 100명은 안 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계속 조합 신청자들은 늘어나고 있다.) 지난 4월 28일 서울시에서 설립신고증을 발급받아 정식 단위 노동조합이 되었다. 이상이 대략적 설립 과정이다.
1993년에 극단에 들어갔지만 일하고 학교 다니는 기간을 경력단절로 보면 내 경력은 15년 정도라 할 수 있다. 30여 년간의 사회생활로 정말 다양한 분야의 일을 경험한 노동자였던 나이기에 다른 노동환경과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과 최저임금 인상들처럼 시급한 것들이 많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을 누가 나서서 해결해 주길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된다고 해도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릴 것이다.
공연예술인노동조합은 나의 일을 내가 나서서 그것에 공감하는 우리가 되어 조금 더 큰 목소리로, 단결된 목소리로 요구하는 단체다. 우리 스스로의 권리와 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보편적 복지를 요구하는 것이지 예술인으로서의 특권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기초공연예술에 대한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것이다. 기초예술인 생존권 보장(기본소득법 제정), 기초공연예술진흥법 제정,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관련자 처벌. 이것이 노동조합을 출범하며 요구한 것들이다. 앞으로 이를 위해 공연예술인노동조합은 노력할 것이며 예술계 문제뿐 아니라 사회의 적폐와 부당함에 대해 행동하는 양심으로서 목소리를 내고 현장에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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