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합격해도 못 가나? 트럼프, 하버드 유학생 등록 차단…재학생에게도 "전학 가라" 경고

트럼프 정부, 하버드에 보복…학생 4분의1이 유학생, 극심 혼란 불가피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유학생들의 시위 참여 정보 제출 거부를 빌미로 22일(이하 현지시간) 미 하버드대의 유학생 등록을 차단하고 재학생에게도 전학을 가라고 경고했다. 하버드대가 트럼프 정부의 대학 길들이기에 앞장서 반발한 데 대한 보복 조치로 재학생의 4분의 1이 넘는 유학생 등록을 막아 이 대학의 돈줄을 죄겠다는 엄포로 풀이된다.

트럼프 정부가 유학생을 정치적 장기말로 이용함에 따라 학생들은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크리스티 놈 미 국토안보부 장관은 22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대학이 외국인 학생을 등록시키고 이들의 더 높은 등록금으로부터 이득을 얻는 것은 권리가 아니라 특권"이라며 하버드대가 "학생 및 교환 방문자 프로그램(Student and Exchange Visitor Program·SEVP) 인증을 상실했다"고 밝혔다.

SEVP는 국토부 산하 이민세관단속국(ICE)의 유학생 정보 관리 프로그램으로, 이 프로그램 인증을 상실한 학교는 더 이상 유학생 등록을 받을 수 없게 된다. 국토부는 하버드대에 보낸 공문을 통해 이러한 조치에 따라 하버드대가 2025~26학년도 유학생(F 비자 소지자) 및 교환 방문자(J 비자 소지자) 등록을 받는 것이 금지된다고 밝혔다.

이 조치는 재학생에게도 적용돼 큰 혼란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는 하버드대에 재학 중인 "기존 외국인 학생들은 다른 대학으로 전학가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합법적 (체류) 지위를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번 조치는 트럼프 정부의 대학 길들이기에 반기를 든 하버드대에 대한 정부의 추가 보복이다. 트럼프 정부는 하버드대가 입학 및 고용, 다양성 정책(DEI) 등을 정부 입맛에 맞춰 바꿀 것을 거부하자 지난달 14일 이 대학에 대한 22억 달러(약 3조 원) 규모 보조금을 동결했다. 이틀 뒤엔 유학생의 수강 정보 및 "위험한" 활동 연루 정보를 정부에 제출할 것을 요구하고 따르지 않으면 유학생 등록을 막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국토부는 이번 조치가 지난달 요구한 유학생 정보 제공을 하버드대가 "뻔뻔스럽게 거부"한 데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국토부는 하버드대가 정부 요구를 따르지 않고 유대인 학생들을 괴롭히는 선동가들을 허용했다고 주장했다. 또 "많은 선동가들이 외국인 학생"이라고 주장하며 이 대학에 대한 조치를 정당화했다.

트럼프 정부의 대학 내 반유대주의 주장은 지난해 가자지구 전쟁에 반대해 미국 전역 대학에서 일었던 항의 시위를 의미한다. 트럼프 정부는 이에 참여했거나 관련해 이스라엘을 비판했던 외국계 학생들의 비자를 취소하고 체포하고 있다.

국토부는 하버드대가 향후 72시간 안에 외국인 학생들이 지난 5년 간 캠퍼스 안팎에서 시위, 불법 활동, 폭력에 가담한 영상 및 음성 기록 등을 제출하면 SEVP 인증을 되돌릴 "기회"를 줄 수 있다고 밝혔다. 놈 장관은 "이번 조치가 이 나라의 모든 대학과 교육 기관에 경고가 되길 바란다"며 다른 학교로 이러한 조치를 확대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하버드대는 성명을 통해 정부 조치가 "불법"이라며 "이러한 보복 조치는 하버드 공동체와 우리나라에 심각한 피해를 입히고 하버드의 학문 및 연구 사명을 훼손할 위험이 있다"고 비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하버드대의 생각을 잘 아는 소식통이 하버드대가 관련해 또 다른 법적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고 보도했다. 이 대학은 이미 지난달 정부의 연구 자금 동결에 대해 항의해 트럼프 정부에 대한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전문가들도 정부 조치가 법적 절차에 위배된다고 봤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유학생 및 이민자 친화 정책을 옹호하는 미국 대학 지도자 연합(Presidents' Alliance)의 미리암 펠드블럼 회장은 정부의 SEVP 인증 취소가 가능하긴 하지만 통상 소유권이 변경되거나 재인증 절차를 완료하지 못한 학교에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또 취소에 정당한 근거가 있더라도 이의 제기 절차가 있는데 이 또한 실행되지 않았다며 국토부가 규정과 절차를 준수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조치로 트럼프 정부가 "국내 최고의 대학 중 하나가 전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최고의 학생들을 유치하는 능력을 직접적으로 훼손해 고등교육 문화를 뒤엎으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버드대 학생 중 4분의 1 이상이 유학생으로, 이번 조치가 이 대학의 돈줄을 직접 겨냥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대학 자료에 따르면 2024~25학년도 등록생 중 27.2%를 차지하는 약 6800명이 외국인 학생이다. 출신국으로는 중국, 캐나다, 인도, 한국, 영국 학생이 가장 많았다.

<뉴욕타임스>는 2025~26학년도 하버드대 등록금은 5만9320 달러(8100만 원) 수준으로 기숙사비까지 더하면 거의 8만7000 달러(1억2000만 원)에 달한다며 유학생 등록 금지가 이 대학 수익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로이터> 통신은 이 조치가 유학생을 유치하는 미 전역 대학의 주요 수입원을 겨냥하기 때문에 다른 대학에도 경고로 다가온다고 지적했다. 통신이 분석한 미 국가교육통계센터(NCES)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학생 수가 1000명 이상인 대학 중 43곳이 하버드대보다 유학생 비율이 높았다.

지난해 가자지구 전쟁 반대 시위의 시발점으로 트럼프 정부의 집중 공세를 받은 컬럼비아대의 경우 외국인 학생 비율이 39%에 달했다. 통신은 센트럴미주리대 총장을 지낸 척 앰브로스가 유학생들은 전액 등록금을 지불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사실상 다른 학생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워싱턴포스트>는 미 국제교육자협회(NAFSA)에 따르면 매년 100만 명이 넘는 국제 학생이 미국 대학에 다니며 미국 경제에 거의 440억달러(60조 2450억 원)를 기여한다고 설명했다.

하버드대에 재학 중인 외국 학생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미 CNN 방송을 보면 이 대학 3학년인 오스트리아 출신의 칼 몰덴은 "우리 중 많은 이들이 하버드 같은 대학에 오기 위해 평생을 노력했는데 이제 전학을 가야 할지, 비자 문제로 어려움에 직면하진 않을지"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해외여행 중인데 학교로 돌아오는 것이 허락되지 않을까봐 두렵다고 말했다. 또 국제 학생들이 여름 인턴십을 마칠 수 있을지, 다른 학교에서 하버드와 같은 넉넉한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을지 걱정하며 서로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몰덴은 CNN에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사이 싸움"에서 국제 학생들이 이용되고 있다며 "난 오스트리아 출신이어서 권위주의 각본과 권위주의자들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파괴할 수 있는지 좀 더 잘 안다. 지난 몇 달간 미국에서 목격한 게 바로 그것"이라고 비판했다.

<뉴욕타임스>는 다음 주 졸업을 앞둔 스웨덴 출신 하버드대 4학년생 레오 게르덴도 "국제 학생과 전세계에서 최고의 인재를 데려오는 능력 없이 하버드는 더 이상 하버드가 아니다"라며 "트럼프 정부는 우릴 포커칩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는 매우 위험하다"고 비판했다고 전했다.

▲지난 4월17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있는 하버드대 캠퍼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하버드대 공격 항의 시위가 열려 시위 참여자들이 팻말을 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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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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