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무기로는 모자라나…재래식 무기 강화하는 이유는

[정욱식 칼럼] 한반도 전쟁 위험 높이는 남북 군비 경쟁 완화해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이 최근 들어 재래식 군사력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조선은 작년 말부터 신형 전차 '천마', 공중조기경보통제기, 5천톤급 구축함인 '최현호' 및 이에 장착되는 극초음속 순항미사일과 전략순항미사일, 신형 반항공(방공) 미사일, 각종 무인기(드론), 미그29기 장착용 신형 공대공미사일과 활공유도폭탄 등을 연이어 공개했다.

핵무기의 전쟁 억제력과 가성비를 자랑해왔던 조선이 재래식 무기 증강에도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조선도 기존 핵보유국들과 유사한 길을 걷고 있다. 핵보유국들은 초기에는 핵무기를 보유하면 강력한 억제력이 생겨 재래식 군사력의 비중을 줄일 수 있다고 여기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핵무장은 군사안보 차원에서 크게 두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하나는 핵무장이 경쟁국이나 적대국과의 군비경쟁을 야기해 안보 불안감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핵무기가 '억제 가치'는 크더라도 '사용 가치'는 제로에 가깝다는 것이다. 핵무기를 실전에서 사용하기에는 군사적·전략적·정치적·윤리적·환경적 문턱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미국이 80년 전에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탄을 사용한 이후에 어떤 나라도 핵무기를 사용한 사례가 없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이 두 가지 특성, 즉 핵무장으로 인한 군비경쟁 및 안보 딜레마 격화와 '핵 금기(nuclear taboo)'는 핵보유국들이 이내 재래식 군사력 구축에도 박차를 가해온 사유로 작용하곤 한다.

실제로 미국의 군사력 평가기관인 '글로벌파이어파워'에 따르면, 조선을 제외한 8개 기존 핵보유국들의 재래식 군사력 순위가 상위를 차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식 핵보유국들인 미국은 1위, 러시아 2위, 중국 3위, 영국 6위, 프랑스 7위이고, 비공식 핵보유국인 인도는 4위, 파키스탄 12위, 이스라엘 15위를 기록한 것이다.

이에 반해 조선은 34위를 기록했다. 조선은 2017년에는 18위였는데, "국가 핵무력 완성"을 향해 폭주를 거듭할수록 재래식 군사력 순위는 계속 떨어졌다. 특히 최근 3년 연속 30위권 밖으로 쳐졌다. 이는 한정된 군사비를 핵무기 및 운반수단인 미사일 개발에 투입하면서 재래식 군사력의 비중은 낮춰 인민생활 향상과 경제건설에 쓰겠다는 '병진노선'에 따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조선은 올해 들어 재래식 전력의 몇 가지 분야에도 상당한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여기에는 앞서 설명한 두 가지 사유에 더해 몇 가지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경제가 바닥을 치고 상승하고 있다는 자신감, 3년 연속 세계 5위를 기록한 한국과의 격차, 남북 국지충돌의 위험성이 증가했다는 판단, 러시아와의 군사협력 강화, 트럼프 행정부와의 핵 군비통제 협상 대비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 4월 30일 북한 당 기관지 <로동신문>은 미사일총국과 국방과학원, 탐지전자전총국이 구축함 '최현'호에 탑재된 순항미사일의 시험 발사를 포함해 무장 체계들의 성능 및 전투 적용성 시험을 28일과 29일 실시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현지에서 이를 참관하기도 했다. ⓒ로동신문=뉴스1

이렇듯 조선이 핵무력에 이어 재래식 군사력 건설에도 박차를 가하면 한국의 안보 부담도 커질 공산이 커진다. 상당수 언론이 "북한 위협이 커지고 있다"며 대응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기도 하다. 유력 대선 후보들도 앞 다퉈 군사력 강화를 공약하고 있다.

하지만 자체 군사력과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화할수록 여러 가지 부작용도 커진다. 우선 국방비를 늘릴수록 민생회복에 쓸 수 있는 예산을 늘리기 어려워진다. 또 안보는 상대가 있는 게임인 만큼, 한국의 이러한 선택은 조선의 추가적인 군비증강으로 이어져 군비경쟁의 악순환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아울러 한미일이 군사적으로 결속할수록 북중러도 흡사한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에 따라 차기 정부의 가장 큰 과제는 문재인 정부 후반기부터 본격화된 군비경쟁을 완화하고 군비통제에 나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남북관계의 안정화뿐만 아니라 한반도 주민의 민생을 증진하는 데에도 반드시 필요하다. 또 지정학적 단층선에 위치한 남북이 지정학적 위기를 관리하는 데에도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차기 정부에 거의 거론되지 않고 있는 두 가지를 주문하고 싶다. 하나는 한국군이 보유한 무기와 장비의 상세 내역을 공개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한국은 3년 연속 세계 5위를 기록할 정도로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 세부적인 내용이 잘 알려지지 않아 끊임없는 결핍감이 시달리고 있다. 하여 '자강'이 유행인 시대에 우리 군사력의 자세한 내용이 알려지면 이미 상당한 수준의 자강을 갖췄다는 인식에 갖는 데에 도움이 된다.

또 하나는 선택과 집중이다. '북한급변사태' 발생이나 전면전 발생시 조선을 무력으로 통일하겠다는 비현실적이고 위험천만한 계획을 내려놓고, 조선을 비롯한 외부 위협 억제와 억제 실패시 방어·격퇴·응징에 초점을 맞추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효과적인 억제 능력을 구비하면서도, 평소에도 유사시 무력통일 계획에 쏟아부어온 막대한 인적·물적 자원의 낭비를 줄여 우리 내부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다.

※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은 최근 신간 <달라진 김정은, 돌아온 트럼프>를 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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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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