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밸'이 가능한 사회인가?

[과로死회] ② TVN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과 방송 업계 내 청년 과로

'워라밸'이라는 신조어가 회자되고 있다. '일과 삶의 균형'(work life balance)을 뜻한단다. 과연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가능할까. 균형을 맞추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신조어가 생긴 것은 아닐까.

이 문제에 이렇게 부정적인 이유는, 여전히 하루 평균 노동시간이 OECD 회원국 중 최장수준을 자랑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퇴근 후에도 메신저를 통해 업무 지시를 하거나 받는 게 당연시되고 있기 때문만도 아니다.

평가라는 이름 하에 행해지는 실적 압박, 그래서 자기 착취를 경쟁하도록 만드는 시스템이 큰 이유다. 그리고 실적 압박과 자기 착취를 경쟁하는 시스템이 가장 만연한 곳은 바로 방송통신업계 콜센터들이다.

대개의 콜센터는 한 시간 또는 하루 단위로 콜 수 목표를 설정한다. 관리자가 상담사들을 평하가는 지표는 보통 고객 응대율, 평균 통화 시간, 평균 후처리 시간, 시간당 평균 콜 수, 하루 평균 콜 수, 상품 판매 건수, 통화 품질 등으로 구성된다. 화장실 가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하고 퇴근 시간 뒤에 남아 전화를 돌려야 하는 것도 이 같은 평가 기준 때문이다.

실적은 고스란히 임금에 반영된다. 대부분의 콜센터는 기본급은 낮고, 인센티브가 높다. "노력한 만큼 돈을 번다"는 착한 말로 포장되지만, 사실과 다르다. 인센티브는 상담업무 실적, 때로는 상품 판매 실적으로 매겨진다. 상담사들을 줄 세워 인센티브를 차등 지급하며, 노동자를 '근로 자영자'로 만들어 버린다. 이는 노동자들을 개개인으로 갈라서게 했다. 결국 노동자들이 자기 자신을 착취하고, 동료들과 경쟁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도록 강제한다.

지난 1월 엘지(LG)유플러스 고객센터에서 현장 실습 노동자로 일하던 홍수연 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콜 수'로 불리는 고객 응대 할당을 채우지 못해 초과 근무를 해야했고, 휴대전화 해지를 요구하는 고객들에게 회사가 요구하는 새로운 서비스를 판매하며 엄청난 감정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또 친절도를 높인다며, 해지 방어를 잘하는 상담사의 콜을 손 글씨로 따라 쓰는 일명 '깜지'도 써내야 했다.

홍수연 님의 죽음을 자살이 아닌, '과로 자살'이라고 명명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류로는 6시 정시 퇴근을 한 것으로 되어 있다 하더라도, 실제로 과도한 장시간 노동을 행한 것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실적 압박과 감정노동 등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그리고 그 스트레스로 인한 죽음, 이것 또한 과로사다. 그러니 이 또한 회사가, 이런 시스템을 만들어내고 이용한 원청이 책임져야 한다.

한선미 일과건강 미디어팀장은 LG유플러스고객센터특성화고현장실습생사망사건대책회의와 과로사 예방 센터 준비 모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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