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대선, 또 '증세 없는 복지'인가?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내만복 10대 제안과 복지·재정 공약 평가 (下)

앞선 글에서 '내가만드는복지국가(이하 내만복)'는 이번 대선의 핵심 10가지 복지 공약 가운데 9가지를 소개하고, 후보별로 평가했다. (☞바로 가기 : 재정 대책 없는 복지 공약 '말 잔치' 우려)

마지막 열 번째 제안은 "복지국가를 향한 조세 개혁, 공평 과세와 복지 증세 양날개로 가자!". 국민들이 지닌 조세 불신을 타파하기 위해서 과세 정의를 구현해야 하고, 복지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선 복지 증세가 동반돼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담긴 제안이다. 내만복이 제시하는 '공평 과세와 복지 증세'가 실현될 경우 우리나라 조세 부담율이 최소 GDP 23%에 이를 것이다(2014년 OECD 평균 조세부담률 25.1%.).

우선 공평 과세를 위해선 법인세, 소득세, 보유세가 핵심 대상이다. 법인세와 보유세는 이명박 정부의 감세 조치를 원상 회복하는 것이 시급하다. 소득세에서는 '소득이 있으면 과세된다'는 원칙을 주택 임대 소득이나 주식 양도 차익 등에 적용해야 한다.

복지증세는 우리나라처럼 재정 지출에 대한 불신이 큰 나라에서 유용한 정책이다. 사회보험료가 복지 증세에 속할 수 있는데, 이에 더해 내만복은 복지 목적세로서 법인세, 소득세, 상속증여세, 종합부동산세에 일정 비율로 부가하는 사회복지세 도입을 제안한다.

대선 후보들의 재정 공약은 어떨까? <표1>은 후보들의 재정 공약을 정리한 자료이다. 대체로 재정 공약이 빈약하다. 공약에 소요되는 재정 추계가 애매하고 재원 방안 역시 원론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


문재인 후보의 공약 이행에 필요한 소요 재정은 연평균 35.6조 원이다. 이 중 복지 지출은 24.3조원으로 GDP 2%에 미치지 못한다. 2016년 한국의 복지 지출이 GDP 10.4%로서 OECD 평균 21.0%의 절반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온건한 복지 공약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의가 요구되다. 이 소요 재정 추계에는 사회보험 지출이 제외돼 있다. 정부 총지출이 예산과 기금으로 구성되고, 후보의 복지 공약도 예산과 기금사업을 모두 포괄한다. 그렇다면 소요 재정도 당연히 사회보험 몫도 합산해야하건만 문 후보는 예산회계에서 지출되는 사업만 계산했다. 그래서 실제 문재인 후보의 복지 공약의 규모가 얼마인지를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문 후보가 공식 발표한 연 평균 35.6조 원은 실제 공약 소요액에 비해 과소 추계된 수치라는 점이다.

안철수 후보의 공약 소요 재정은 연 평균 40.9조 원으로 공식 수치로는 문 후보에 비해 조금 많다. 그런데 복지 공약(교육 분야 포함)은 21.5조 원으로 문 후보에 비해 적다. 문 후보의 복지 공약 소요액이 과소 계산된 것까지 감안하면 더욱 적다고 판단된다. 유승민 후보의 공약 소요 재정은 41.7조 원이고 이 중 복지 분야 지출이 약 40조 원이다. 심상정 후보 공약 소요재정은 연 110조 원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이 중 복지 지출도 99조 원에 달한다. 홍준표 후보의 공약 소요 재정은 공식적으로 확인할 수 없다. 다면 언론 보도에 의하면 연 18조 원이다.

2012년 박근혜 후보는 개별 공약별 소요액을 공개했는데…

다섯 후보들의 복지 공약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특징은 개별 공약별 소요액을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후보들이 개별 공약이 아니라 복지 분야별로 소요액을 합산해 제시했다. 문재인 후보만 선관위에 제출한 10대 공약에서 핵심 개별 복지 공약의 소요 재정을 밝혔는데, 최종 공약집에선 역시 분야를 포괄해 소요 재정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저출산 고령화 극복, 주거 복지, 사회 안전망 강화 등 복지 지원'으로 연 18.7조 원, 교육비 지원(누리과정, 고교 무상교육, 등록금 경감, 초등 돌봄교실 등) 5.6조 원 등이다. 이런 방식의 소요 재정 발표로는 개별 복지 공약의 실체를 명확히 검증하기 어렵다.

다른 후보의 공약집에서도 소요 재정 공개 방식이 동일하다. 안철수 후보는 기초연금, 아동 수당, 노인 일자리, 저소득층 사각지대 해소 등을 모두 포괄해 '복지 분야' 제목으로 연 12.2조 원을 제시했다. 심상정 후보 역시 교육, 주거, 보건의료, 노인 등 부문별로 소요 재정을 제시했다. 심지어 유승민 후보는 '더불어 사는 공동체 복지 실현'이라는 제목으로 총 125조 원이라 종합해 제시했고, 홍준표 후보는 소요 재정 수치를 공식적으로 찾을 수 없다.

이는 2012년 대선에서 당시 박근혜 후보가 개별 공약별로 소요액을 구체적으로 밝힌 것과 크게 비교된다. <표2>에서 보듯이 박근혜 후보는 투표일 직전에 개별 공약별 소요액을 구체적으로 발표했다. 만약 최종 투표일까지 다섯 후보가 개별 공약별 소요액을 밝히지 않는다면, 복지 공약의 투명성과 명확성이 2012년 박근혜 후보보다 뒤떨어진다는 불명예스런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 <표2> 2012년 대선 박근혜 후보의 개별공약별 소요액(사례, 억 원). (출처 : 박근혜 후보 선대위, "대선공약 공약별 소용재정", 2012년 12월)


재원 방안 : '증세 없는 복지' 어게인?

이제 후보들의 재원 방안을 살펴보자. 우선 문재인 후보의 재원 방안은 빈약하다. 연 평균 35.6조 원 중 22.4조 원을 재정 지출 개혁으로 마련한다. 내용은 방산 비리, 최순실 예산, 저평가 사업, SOC 등 당위적 방향에 그친다. 조달 금액은 상당히 큰 편이다. 2017년 중앙 정부 총지출 400.5조 원 중 순재량 지출은 141.5조 원이다. 22.4조 원은 순재량 지출의 약 16%에 달하는데 과연 이러한 조정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반면 증세 몫은 6.3조 원으로 너무 적다. 세목별 목표 수치도 밝히지 않았다. '증세 없는 복지'라는 비판이 제기될 만 하다.

안철수 후보는 소요 재정 40.9조 원 중 지출 개혁으로 9.9조 원을 마련한다. 2017년 순재량지출 145조 원의 7%를 적용한 금액으로 적절한 규모라 판단된다. 비과세 감면을 포함한 증세 몫은 23.7조 원으로 문재인 후보보다 많다. 문재인 후보보다 증세에 더 적극적이다. 하지만 안 후보도 세목별 개혁 방향을 제시할 뿐 목표 수치를 밝히지 않았다.

특히 안 후보가 세수 초과 징수 예상분으로 연 7.3조 원을 상정한 것은 무리수로 판단된다. 2016년 초과 세수를 근거로 삼은 추정이지만, 그 이전 4년 내내 세입이 예측보다 줄었던 것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문재인 후보는 자신의 경제 공약에서 추가 세수로 연 10조 원을 공언하다 최종 재정 공약에서는 이 금액을 제외한 것과 비교된다.

유승민 후보는 소요 재정 대부분을 증세로 마련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지출 개혁 몫은 연 5.6조 원으로 후보 중에서 가장 규모가 적다. 지출 개혁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으나 지출 개혁의 어려움을 감안하면 합리적 추계라는 평가도 가능하다. 유 후보의 문제는 중부담 중복지를 제안하며 증세를 강조하지만, 막상 재원 공약에서 구체적 증세 방안을 밝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지 증세 목표로 GDP 21.5%를 선언할 뿐이다.

한편 홍준표 후보는 증세 대신 담뱃세, 유류세 인하를 토론에서 언급했는데, 증세 없이 지출 개혁으로 재정을 조달한다.

재원 방안이 구체적이고 대규모인 후보는 심상정 후보이다. 심 후보는 각 세목, 사회보험별로 조달 금액을 제시했는데, 증세 규모가 약 66조 원, GDP 4%에 이른다. 2016년 우리나라 조세부담률 19.4%에 이 수치를 더하면 23.4%가 된다. 이는 2014년 OECD 평균 조세부담률 25.1%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심상정 후보의 증세 공약은 복지국가를 지향한다면 증세 의제를 정공법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심 후보의 세목 설계에서 논란의 소지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소득세, 법인세 세율을 인상하면서 별도로 신설하는 사회복지세에서 다시 두 세목의 세율을 인상한다. 이러면 소득세 최고세율이 60%에 육박하고 법인세 명목세율은 30%를 넘게 된다(지방소득세 포함). 사회보험에서는 고용보험, 건강보험료 인상은 제시했지만, 국민연금 소득 대체율 50%에 따른 보험료율 인상은 재원 방안에 누락되어 있다.

정리하면, 문재인 후보는 소요 재정을 실제 복지 공약에 비해 과소 추계하고 재원 방안도 지출 개혁에 크게 의존한다. 소요 재정의 실체가 명확치 않고 재원 방안도 불투명하다. 안철수후보는 복지 공약 규모나 재원 방안이 온건한 수준이다. 유승민 후보는 중부담 중복지를 강조하나 아직은 선언적 수준에 머문다. 홍준표 후보는 여전히 선별주의 입장에서 기존 복지를 보완하는 수준이다. 심상정 후보는 강한 복지 공약, 강한 증세를 내놓았는데, 재원 방안이 구체적인 건 장점이지만, 현실가능성을 두고 논란의 소지를 지닌다.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자유한국당 홍준표, 정의당 심상정, 바른정당 유승민, 국민의당 안철수,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프레시안

총괄 평가: 강한 복지 공약, 빈약한 재정 공약

이제 곧 투표일이다. 박근혜 정부를 권력에서 끌어내린 촛불의 민심이 만든 대선이다. 과연 후보들의 복지 공약이 이 민심을 온전히 반영하고 있을까? 집권 이후 촛불의 염원이 실제 국정에서 제대로 구현될 수 있을까?

이번 대선에서 후보들의 복지 공약은 대체로 강한 편이다. 전체적으로 2012년 야당 후보의 복지 공약 수준을 웃돈다. 당시 논란이 되었던 무상급식, 무상보육, 기초연금 20만 원, 반값 등록금은 일부 조정된 형태로 실행되고 있다. 당시 야당 후보의 공약이었던 아동 수당, 국공립 보육시설 확충, 청년 실업부조,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등은 이번 대선에서 주요 후보들의 공약에 포함돼 있다. 여기에 더해 기초연금 30만 원,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는 2012년 대선 공약 수준을 넘는 정책이다.

반면 재정 공약은 빈약하다. 문재인 후보의 일부 개별 공약을 제외하곤, 후보들의 공약에서 개별 공약별 소요 재정을 알 수 없다. 2012년 대선에서 개별 소요 재정을 모두 공개한 박근혜 후보와 비교된다. 국민에게 권력 위임을 요청하면서 그 근거의 공약의 소요 재정을 명확히 밝히지 않는 행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게다가 재원 방안은 다수 후보들이 원론적, 포괄적 수준에 머문다. 촛불 민심이 만들어낸 대선인데, 후보들의 재정 공약은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곧 새 정부가 출범한다. 어느 후보든, 대한민국 국정을 운영할 때는 자신의 공약 한계를 직시하고 이를 보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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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시민들이 복지국가 만들기에 직접 나서는, '아래로부터의 복지 주체 형성'을 목표로 2012년에 발족한 시민단체입니다. 건강보험 하나로, 사회복지세 도입, 기초연금 강화, 부양의무제 폐지, 지역 복지공동체 형성, 복지국가 촛불 등 여러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칼럼은 열린 시각에서 다양하고 생산적인 복지 논의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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