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줄이는 4차 혁명 공약? 역발상 필요하다

[오민규의 인사이드경제] 4차 산업혁명 아닌 노동혁명으로의 전환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위원회 신설'을 골자로 한 4차 산업혁명 선도전략 공약을 내놓았다.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은 '대전을 4차 산업혁명 특별시로 육성'하겠다는 공약을 비롯해 특별강연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 공약 풍년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자동화는 일자리를 줄이기만 하는가?

4차 산업혁명은 제조업과 정보통신기술(ICT)을 융합해 작업 경쟁력을 높이는 차세대 산업혁명을 의미한다는데, 학계에서도 이 개념이 옳은지 그른지를 놓고 논쟁이 그치지 않고 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의 화두, 즉 기계와 로봇을 비롯한 자동화 기술과 정보통신기술이 융합될 경우 일자리가 대폭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서는 평범한 이들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실제로 고속도로에 하이패스가 도입되면서 톨게이트 수납 일자리가 줄어드는 현상은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다. 하지만 이게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수납 일자리가 줄어드는 대신 하이패스 도입을 위한 인프라 산업과 각종 기계장치 제조업 일자리가 또 생기기 때문이다.

지난해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19세의 청년 노동자가 숨져간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동일한 유형의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서울시와 시민사회단체, 노동조합이 함께 진상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당시 조사결과 중 스크린도어 이상 신고의 상당수가 스크린도어 안쪽에 붙은 센서에 매우 많은 먼지가 앉아서 발생한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당시 질의응답 과정에 나온 얘기 한 대목을 소개해본다.

"사고 신고가 접수되어 가보면 스크린도어 문을 열고 안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면 끝나는 조치들이 상당하다. 그렇다면 센서 옆에 소형 팬을 하나 설치하면 어떨까? 그걸로 센서 쪽에 바람을 불어주면 먼지를 털어낼 수 있을 테니. 음 … 그렇게 되면 자동화로 인해 스크린도어 수리 일자리가 줄어들게 되려나?"

"그게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팬을 설치하면 그 팬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안하는지를 검수하는 일이 또 늘어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기계가 일자리를 대체한다 하더라도 결국 그 기계를 움직이고 수리하는 건 사람의 역할일 수밖에 없다."

전기차 시대를 조망해 본다면?

4차 산업혁명의 주요 사례로 얘기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전기차 시대이다. 우선 전기차는 내연기관, 즉 엔진과 변속기가 필요없는 시대를 열기 때문에 엔진과 변속기를 만들고 장착하는 일자리를 없애는 등 자동차산업의 판도 변화를 몰고 올 부문으로 얘기되어 왔다.

하지만 아직은 순수 전기차 시대가 곧바로 열리기보다 내연기관과 배터리를 함께 사용하는 ‘하이브리드(Hybrid)’ 시대를 지나고 있다. 하이브리드 시대에 자동차산업 일자리는 오히려 소폭 늘어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그 이유는 하이브리드 특성상 엔진·변속기도 만들고 배터리도 만들어서 장착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기차 시대가 열리면 석유산업이 망한다", "석유 자본가들이 전기차 개발을 가로막고 있다"는 세간의 말도 모순이 있다. 현재 전기를 생산하는 압도적 원천이 석유이기 때문이다. 대체 에너지 개발이 당장 이뤄지지 않는 한, 전기차의 동력은 석유를 태워서 만든 전기가 될 공산이 크다. 전기는 친환경이지만 원료는 화석연료인 셈이다.

물론 장기적으로 보면 내연기관이 사라질 개연성이 높기에 전기차 시대에 대비한 대응방안이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전기차 산업의 현재를 한번 짚어보도록 하자. 순수 전기차 시대가 빨리 열리지 못하는 이유, 전기차 상용화가 늦어지는 핵심 이유는 '배터리'에 있다.

하나의 배터리가 방전되기까지의 최대 주행거리가 겨우 200km 수준이고, 그 배터리를 다시 충전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1시간 가까이 걸린다면, 고속도로 주행이나 장거리 주행에 전기차를 사용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충분한 주행거리를 보장하는 배터리 소재를 찾아야 하는데, 이게 거의 연금술에 가까워서 글로벌 완성차업체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최근에 등장한 전기차산업의 강자인 테슬라(Tesla)는 이 문제를 역발상으로 뒤집어 버렸다. 대부분의 완성차업체들이 최고 주행거리를 늘리려고 소형차나 경차를 모델로 전기차개발을 해온 반면, 테슬라는 차라리 대형차에 큰 배터리를 장착해 주행거리를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기술 개발이 아니라 발상의 전환으로 활로를 찾은 사례이다.

대형차를 모델로 전기차를 개발하다니? 초창기에는 테슬라의 시도를 많은 이들이 비웃었지만, 테슬라는 최근 한국 진출까지 성공하며 세계로 뻗어나가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아직은 전기차를 자가용으로 구입할 만한 수요층이 부자들이라는 점에서 대형차를 모델로 삼은 발상이 주효했다.

이런 역발상은 불가능할까?

테슬라의 역발상을 활용한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상상력을 도입해볼 수 있다. 주행거리와 충전시간을 감안하면 전기차 도입에 가장 안성마춤인 업종은 오히려 '대형버스' 쪽이라고 할 수 있다. 대형 배터리 장착이 가능하니 주행거리를 대폭 늘릴 수 있고, 보통 대형버스 운행은 교대근무 형태로 진행되니 교대 시간에 충전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전기차 산업에 보조금을 도입해 전기차 구매를 활성화시키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데, 여기서도 역발상을 도입해보자. 차라리 시내버스와 고속버스 업종에 보조금을 도입하고 이 산업을 공영화한다면 대중교통 요금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지 않을까? 해외 토픽에서나 구경할 만한 '무상 버스'가 불가능한 얘기만은 아닐 텐데 말이다.

이런 역발상이 가능하다면 자가용의 도로 점유율을 낮추고 교통체증을 해결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도로에 버리는 시간을 아끼고 여가를 늘리는 방식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일자리를 늘리는 내용을 패키지로 묶어 '노동혁명 공약'을 만들어 본다면? 자동화와 정보통신기술의 융합이 노동자와 인류에게 보탬이 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면, 우리가 주목해야 할 영역은 4차 산업혁명이 아니라 발상의 전환을 통한 노동혁명이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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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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