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지점 직원이 중소기업 고용으로 분류되는 '마법'

[오민규의 인사이드경제] 중소기업이 한국 고용 88%를 담당한다는 건 사기

'9988'. 일부 독자들은 생소할 수도 있겠다. 조만간 치러질 것으로 보이는 조기대선에서 회자될 말이니 이번 기회에 익혀두자.

"99세까지 88하게 살자."

그래, 바야흐로 '백세시대'라는데 이런 공약이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하지만 오늘 <인사이드 경제>가 다룰 '9988'은 다른 의미이다. 뭐, 길게 설명할 것 없이 현재 자의건 타의건 유력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두 분이 작년과 재작년에 쏟아낸 말들을 살펴보자.

"우리 경제가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성장하려면 전체 기업수의 99%를 차지하고 고용의 88%를 담당하는 중소기업의 역할이 절대적." (2015년 8월 20일, 황교안 국무총리, 중소기업 단체장과 일부 기업 대표 만난 자리에서)

"'9988'이라고 한다. 국내 전체 기업의 99%를 중소기업이 차지하고, 고용의 88%를 역시 중소기업이 맡고 있어 중소기업을 살리는 게 나라를 살리는 것." (2016년 9월 19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해지역 기업인들과 간담회에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한국 기업체의 99%가 중소기업이고, 이들 중소기업이 국내 고용 인력의 88%를 담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재벌 천국인 한국에서 대기업의 고용 규모가 고작 12% 밖에 안 된단 말인가.

'9988' 경제구조?

본래 정부와 사용자들 통계자료를 삐딱하게 쳐다보기로 정평이 난 <인사이드 경제>는 일단 의심부터 해보기로 했다. 도대체 이 수치가 나오게 된 근거는 무엇일까? 포털 검색을 해보면 통계청이 실시하는 '전국 사업체 조사'결과라고 한다.

통계청 홈페이지를 뒤져보니 현재 시점에서 활용 가능한 자료는 '2014년 기준 전국 사업체 조사'였다. 과연 사업체 전수조사를 통해 종사자 규모를 세분화하여 사업체수와 종사자수 통계치를 제시하고 있었다. '중소기업'의 정의가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규모로 따지면 300인 미만 사업장을 뜻하므로, 이를 중심으로 통계표를 재구성해 보았다.

종사자 규모

사업체수

종사자수

300인 미만

(비율)

3,809,364

(99.9%)

17,184,426

(86.4%)

300인 이상

(비율)

3,456

(0.1%)

2,715,360

(13.6%)

합계

(비율)

3,812,820

(100.0%)

19,899,786

(100.0%)


사업체 수의 비중을 보면 중소기업이라 할 300인 미만 사업체와 대기업이라 할 300인 이상 사업체의 비율은 99.9 : 0.1 로 나타난다. 고용 규모(종사자 수) 비중을 보면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비율은 86.4 : 13.6 으로 나온다. 300인 이상 사업체의 고용규모는 대략 271만 명 수준이라니, 이 수치만 보면 '9988' 이론이 맞는 것처럼 보인다.

비슷한 조사가 하나 더 있다. 고용노동부가 시행하는 '사업체 노동력 조사'이다. 이 조사 역시 사업체 전수조사를 통해 종사자 규모별 사업체 노동자 수에 대한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다. 가장 최근 자료는 지난 1월 31일 발표된 ''16.12월 사업체노동력조사 결과'이다.

구분

300인 미만 사업체

300인 이상 사업체

합계

노동자 수(단위 : 천 명)

14,298

2,492

16,791

전체 노동자 대비

85.2%

14.8%

100.0%

▲ '16.12월 사업체노동력조사 결과, 고용노동부, 2017.1.31.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수치를 토대로 300인 미만과 300인 이상 사업체로 나누어 표를 구성해 보았다. 마찬가지로 300인 미만과 300인 이상 사업체 노동력 규모의 비율은 85.2 : 14.8 로 나타나고 있다. 300인 이상 사업체에 고용된 노동자 규모는 250만에도 미치지 않는다. 정말로 중소기업이 대한민국 고용의 대부분을 담보하고 있는 걸까.

그럼 이 데이터는 뭐야?

'300인 이상'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통계자료가 하나 더 있다. 정부가 직접 전수조사를 하는 건 아니지만 상시고용 300인 이상 사업주들이 해마다 고용규모를 공시하는 제도, 즉 '고용형태공시제'에 따른 통계수치이다. 2014년부터 시행된 이 제도에 따라 사업주들이 공시한 결과를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아래 표)

(단위 :

천 명)

직접고용 합계

(소속 근로자)

간접고용

(소속외 근로자)

총 노동자 수

2014

3,468

861

4,330

2015

3,676

918

4,593

2016

3,805

931

4,737


눈치 빠른 독자들은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알아챘을 것이다. 간접고용(소속외 근로자) 규모는 논외로 하더라도, 300인 이상 사업주가 직접 고용하고 있는 노동자 규모가 340만~380만 명이라고 나타나니 말이다.

이 정도 수치라면 전체 노동자 대비 300인 이상 사업주의 고용 규모는 약 25% 가량이 된다. 게다가 이 규모는 사업주들이 공시한 수치이므로 실제보다 작을 가능성이 높다. 공시대상 기업의 대부분이 공시하고 있기는 하나 100%가 다 한 것도 아니니 말이다.

앞에서 통계청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300인 이상 사업체에 고용된 노동자 규모는 249만~271만 정도가 아니었던가? 무려 100만 가량의 수치가 차이가 나는데, 도대체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일까?

'사업체'와 '기업체' : 정말로 '아' 다르고 '어' 다르다

<인사이드 경제>가 누누이 강조하지만, 정부 통계자료는 의심부터 하고 봐야 한다. 일단 정답부터 공개하자면 조사대상이 '사업체'냐 '기업체'냐에 따라 통계수치 차이가 엄청나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두 단어가 뭐가 다를까? 똑같은 말처럼 들리지만 통계자료 생성이라는 점에서 보자면 정말로 '아' 다르고 '어' 다르다. 우선 통계청이 공식적으로 두 단어에 대해 정의하고 있는 내용을 한번 살펴보자.

기업체

재화 및 서비스를 생산하는 법적 또는 제도적 최소 경영단위로 자원배분에 관한 의사결정의 자율성이 있고 수입, 지출 및 자금관리에 관한 재무제표(손익계산서, 대차대조표, 기타 기록)를 독립적으로 유지, 관리하는 단위

사업체

일정한 물리적 장소 또는 일정한 지역 내에서 하나의 단일 또는 주된 경제활동에 독립적으로 종사하는 기업체 또는 기업체를 구성하는 부분단위


<인사이드 경제>가 좀 쉽게 설명을 시도해 보겠다. 예를 들어 대형은행에 속하는 KB국민은행은 전국적으로 1000여 개의 '지점'을 갖고 있다. 그런데 통계청과 노동부가 '사업체' 조사를 할 경우 이들 '지점'은 모조리 별개의 사업체로 분류한다. 그러나 '기업체' 조사를 할 경우에는 이들 지점 모두 같은 기업 소속이므로 별개로 치지 않고 KB국민은행이라는 하나의 기업체로 분류된다.

단순해 보이는 이 차이가 엄청난 착시 효과를 가져온다. 2만여 명을 고용해 연간 수조 원을 벌어들이는 KB국민은행이라 할지라도 지점별로 보자면 직원 수가 300명을 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사업체' 조사를 할 땐 KB국민은행에 고용된 2만여 명의 노동자 대부분이 '300인 이하 사업체' 소속 노동자로 분류되고 만다.

현대자동차의 생산공장들이야 개별로 보더라도 대부분 300인 이상 사업체로 분류되겠지만, 전국에 분포된 직영 판매영업소의 경우는 300인 이상인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사업체' 기준 조사를 하게 되면 대기업 현대자동차의 판매영업소들은 중소기업으로 분류되고 마는 것이다. 이걸 과연 정상적인 통계수치라고 인정할 수 있을까?

지점장과 영업소장들이 직원들 월급 주나?

이런 '데이터 마사지'는 단순한 착시 효과를 일으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은연중에 "중소기업의 고용규모가 이렇게 많으니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나 최저임금 대폭 인상은 불가능하다"는 거대한 허위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낸다. 이른바 '지불능력'이란 면에서 보자면 평범한 국민들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정부가 구사하는 '숫자의 마법' 진실을 알게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KB국민은행 ◯◯지점 직원의 월급을 지점장이 주나? 현대자동차 □□영업소 직원 월급을 영업소장이 주나? 그렇지 않다. 이들 직원 월급은 모두 KB국민은행과 현대자동차가 지급한다.

'사업체' 조사로 보면 중소기업으로 분류되어 지불능력이 부족한 것처럼 보이지만 '기업체' 조사로 보면 대기업이 되어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말로 지불능력이 문제라면 '기업체'를 상대로 한 조사결과를 놓고 얘기하는 것이 옳다.

'사업체' 조사에 비해서는 진일보하긴 했지만 앞에서 인용한 '고용형태공시제'의 경우 '상시고용 300인 이상 사업주'를 상대로 한 조사이다. '기업체'를 상대로 한 조사로 인정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체'를 상대로 한 조사는 없는 것일까?

있다, 임금근로 일자리 행정통계!

통계청이 일자리 정책수립과 취업준비자의 일자리 선택에 유용한 기초자료를 제공할 목적으로 작성하는 '임금근로 일자리 행정통계'가 있다. 이 통계자료는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아왔는데, 그 이유는 이 자료가 2012년부터 작성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통계자료는 국민연금·건강보험·고용보험·법인세 등 다양한 행정자료를 활용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법인, 즉 '기업체'를 상대로 한 조사가 벌어지게 된다. 아울러 이들 행정자료를 활용하면 무급가족종사자 등이 제외된 '임금노동자'가 정확히 통계치에 잡힌다.

각종 검색을 통해 <인사이드 경제>는 통계청이 발표한 2012~2014년 기준 '임금근로 일자리 행정통계' 자료를 구해볼 수 있었다. (2015년 기준 자료도 지난해 연말에 발표되기는 했으나, 여기에 인용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다음 글에서 구체적으로 밝히려 한다)

자, 그럼 '임금근로 일자리 행정통계' 자료에 실린 종사자 규모별 임금근로 일자리 수 통계수치를 공개하겠다. 일단 2013년과 2014년 기준 자료를 비교해보는 표를 한 번 만들었다. (2012년 기준 자료 역시 다음 글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볼 예정이다)

종사자규모

임금근로 일자리 수 (단위 : 천 명)

2013

2014

<50인 미만>

6,101

(37.0)

6,396

(37.5)

<50~300인 미만>

3,201

(19.4)

3,278

(19.2)

<300인 이상>

7,194

(43.6)

7,379

(43.3)

총계

16,496

(100.0)

17,053

(100.0)


앞서 인용한 '사업체'를 대상으로 한 조사와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은가! 300인 이상 기업체가 고용하고 있는 노동자 규모는 700만 명을 훌쩍 넘는 수준이며, 전체 임금노동자 대비 무려 43~44%에 달한다.

다시 말해 한국에서 '대기업'이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규모는 10% 남짓이 아니라 거의 절반에 육박한다는 것이다. 통계수치가 이 정도의 차이를 보여준다면 이른바 '9988 경제규모'라는 말은 완벽한 사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금근로 일자리 행정통계 수치만을 보자면 '9988'이 아니라 '6644'가 더 옳은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인사이드 경제>가 더 중요하게 보는 것은 올바른 수치가 무엇인가 하는 게 아니라, 이들 통계자료가 말해주는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그 의미에 대한 분석을 다음 글에서 시도해 보려고 한다. 일단 오늘은 '9988 경제구조'라는 말이 사기라는 점만 분명히 해두자. 대선에서 이런 얘기를 떠드는 후보들이 있다면, 참모진들의 공부가 부족하거나 사기꾼임에 틀림없다. '9988'을 얘기하려면 차라리 "99세까지 88하게 살 수 있는 정책"을 내놓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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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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