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아이답게 만드는 세상을 바랍니다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아이는 미성숙한 존재가 아니에요

오래된 동네의 길가에 일터가 있는 덕분에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가진 분들이 진료실을 찾습니다. 환자 중에는 막 첫 생일을 맞은 아이도 있고(이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엄마, 아빠를 먼저 만났지요), 나이가 아흔을 넘긴 어르신도 있습니다. 이웃 할머니로부터 한 동안 보이지 않으신다 싶던 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기도 하고, 수능을 준비하던 학생이 군대 휴가 나왔다가 저를 찾기도 합니다. 이곳에 터를 잡은 지 오래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이야기를 일부분 공유했지요.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라 그런지 몰라도, 아이들이 환자로 오면 왠지 더 관심이 갑니다. 아이들은 이것저것 관심이 많기에 진료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데 애를 먹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생기 넘치는 모습을 보면서 저 또한 재충전 되곤 하지요.

그런데 종종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를 만나곤 합니다. 아이들의 세상에 머물지 못하고 어른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 일찍 노출된 아이지요. 이런 아이는 어른의 법칙을 수용하는데 버거워하거나. 그 무게에 눌려 버립니다. 나름대로 어른의 방식을 수용했기에 도리어 아이가 성장을 방해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아이가 앓는 병의 증상은 영락없이 어른의 그것과 닮았지요.

병의 뿌리가 환자의 일상에 있음을 고려한다면, 아이가 어른이나 앓을 병을 얻는 이유는 아이의 삶이 어른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만 해도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기본적인 예의를 아이에게도 가르치곤 했지만, 지금처럼 아이에게 어른의 경쟁논리를 그대로 적용하지는 않았습니다. 채 크지도 않고, 준비도 되지 않은 아이를 어른의 기준에 맞춰 만들어 내려고 하다 보니, 아이들은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어른이 아이보다 낫다는 착각도 아이를 아프게 합니다. 이 착각은 아이가 가진 무한한 발전의 가능성을 어른의 수준으로 하향평준화해 버립니다. 더 커나갈 수 있는 아이를 어른의 잣대로 재단했기 때문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그리고 왜 감당해야 하는지도 모를 세상의 무게를 진 채 천재성을 발휘할 통로가 차단된 아이는 점점 생기를 잃고 침울해집니다. 마치 경쟁에 지쳐 패배감에 젖은 어른처럼 말이죠.

"만약 아이들이 어른들 하듯 세상을 보고 배운다면 우리는 지금 같은 성인으로 성장하지 못한다. 이런 시각으로 인간의 성장을 들여다 보면 아동기가 단순히 성인기 되기 위해 지나치는 과정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게 된다. 아동기는 그 자체로서 온전한 시기다. 아이들은 몸집이 작은 완성되지 않은 성인이 아니라, 아동기의 환경을 살아가는 적합한 행동과 생각을 가진 고유의 존재인 것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그들의 고유한 학습방법을 통해 성인의 삶을 준비하고, 아동기의 환경에 적응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아이들은 왜 느리게 자랄까?>(데이비드 F. 비요크런드 지음, 최원석 옮김, 알마 펴냄)

격변의 시기를 겪는 지금, 여러 정치인이 나서서 많은 약속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 미래세대가 살아가야 할 환경에 관한 고민이나 아이들이 좀 더 아이답게 클 수 있는 사회에의 약속은 찾기 어렵습니다. 아마도 아이들에게 투표권이 없기 때문이겠지요. 저는 제 아이 세대에게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는 약속을 하는 사람에게 투표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좀 더 발전하고 건강해지려면 아이가 아이답게 배우고 성장할 수 있도록 배려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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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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