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로, 여자는!"

[격월간 민들레] 여성의 '태도' 말고, '권리'에 대해 배웠더라면…

일상이 자꾸만 불편해진다

가족끼리 외식하러 갈 채비를 하면서 원피스 안에 속바지를 입을까 말까, 잠깐 고민했다. 치마를 입을 때면, 엄마나 아빠는 스무 살이나 된 내게 꼭 "속바지 입었어?"라고 단속하듯 묻는다. '안 입으면 한소리 듣겠지?' 싶어 입으려는데 문득 '속바지'라는 게 좀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속바지를 입어도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있으면, 엄마는 가자미눈으로 날 노려보면서 '다리 오므려!' 하는 신호를 보낸다. 속옷이 보이면 안 되니까 그 위에 껴입는 게 속바지인데, 속바지마저도 남에게 보이면 안 된단다. 그럼 속바지가 안 보이게 그 위에 '겉바지'를 또 입어야 하나? 목이 조금 파인 상의까지 입으면, 위아래로 단속은 더 심해진다. "끈 보인다. 옷 올려!" 당연히 브래지어 끈도 단속 대상이기 때문이다. 나도 입고 남들도 다 입는 속옷, 좀 보이면 뭐 어떻다고. 예전 같으면 부모님 말씀 따라 속바지 꼭 챙겨 입고 옷매무새 좀 가다듬고 말았을 텐데, 요즘엔 이런 사소(하다고 볼 수 있지만 더 이상 사소하지만은 않은)한 문제들이 그냥 안 넘겨지고 턱턱 걸린다.

'강남역 살인 사건'. 대한민국에 '여성 혐오'라는 큰 화두를 불러온 이 사건은, 나에게도 여러 의미로 큰 충격을 주었다. 친구들을 만나면, 이 사건을 두고 많은 얘기를 나눴다. 여자들끼리 있을 때는 직접 당했거나 전해 들은 크고 작은 성폭력 사건과 성추행 경험담을 나누기에 바빴고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이야기에 무척이나 놀랐다), 남자 친구들과는 아무리 얘기를 나눠도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해 어색하게 자리를 파하는 일이 잦았다.

남자들과 결론 없이 힘만 빠지는 논쟁을 몇 차례 하고 나서 나름 얻게 된 것도 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자꾸 불편한 게 많아지고, 일상이 새삼스럽게 다시 보이는 눈이 생겼다. 그리고 그동안 불쾌하고 찝찝했지만 그냥 넘겨 버렸던 사건들이 바로 '성추행'이었다는 것, 나에게도 집과 사회에서 요구되는 '고정된 여성성'이란 게 있었다는 것, 나 스스로도 "그래, 여자니까" 하고 순응하며 부당한 성차별에 무뎌져 있었음을 깨달았다.

딸내미는 감출 게 너무 많아

말해봤자 결론도 안 나고 감정이 퍽 상하지만, 자주 대화를 나누면서 친구들과 나는 기존의 생각이 깨지는 경험을 했다. 그런데 집에만 오면, 깨진 생각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일상 속에서 가족끼리 주고받는 대화를 살펴보면 "딸(여자)이니까" "아들(남자)이니까"로 시작되는 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엄마가 신신당부하던 게 몇 가지 있다. 앞에서 말한 '속바지 입기'와 같은, 주로 여자다운 몸가짐이나 조신함과 관련된 것인데, 그중 하나는 (가족끼리 있을 때조차) 빨래바구니에 속옷을 넣을 땐 반드시 수건으로 둘둘 말아 아빠나 남동생한테 안 보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귀 따갑게 듣고 자란 덕에 습관이 되었지만, 가끔 깜빡하고 욕실에 속옷을 두고 나올라치면 엄마의 잔소리를 피할 수 없었다. 남동생은 샤워만 하고 나오면 벗은 속옷이 그대로 허물처럼 남아 있는데도 아무 말이 없으면서 말이다.

엄마는 나에게 담배도 절대 안 된다고 누누이 말했다. 왜냐고 물으면 당연한 듯 "여자는 엄마가 될 몸이잖아"라고 했다. 예전보다 여자들이 기를 펴고 살게 됐다지만, 담배 피우는 여자들 보면 아니꼬운 마음이 먼저 든다는 거다. 그리고 여자가 담배 피우는 게 보기에도 안 좋단다. 딸내미인 '나'보다 아직 있지도 않은 내 '미래의 아기'가 더 먼저 걱정된다니.

생리에 대해서는 할 말이 더 많다. 생리대는 검은 비닐봉지에 잘 싸서 욕실 선반 구석에 숨겨놓아야 하고, 생리대가 떨어져도 아빠와 함께 마트에 갈 때면 카트에 담지 못했다. 건강한 가임기 여성이라면 누구나 하는 것인데, 마치 생리를 하지 않는 사람인 것처럼 굴어야 할 때가 있다. 남녀공학 학교를 다녔는데, 생리대가 없을 때 나는 남자애들 눈을 피해 아주 은밀하고 신속하게 생리대를 찾으러 다녔다. 생리대를 가지고 있던 친구는 들키지 않도록 잽싸게 주머니에 찔러 넣어 줬고, 나중에는 여자애들끼리 생리대와 초성이 같은 '샐러드'라는 은어를 만들기도 했다.

▲ 영화 <러브픽션>(전계수 감독, 2011)에는 겨드랑이털을 깎지 않는 여주인공(공효진 분)이 나온다. 개봉 당시 여성의 겨털이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됐다. ⓒ삼거리픽쳐스 , (주)판타지오픽쳐스

사람의 신체에 붙어 있는 '털'에 대한 인식도 남녀 간 차이를 보인다. 친구는 욕실에서 겨드랑이털(흔히 줄여서 '겨털'이라고 한다)을 밀다가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남자친구와 헤어지니 겨털 깎는 것을 깜빡했고, 수북한 겨털을 보는 순간 남자친구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는 거다. 적어도 그 헤어진 남자는 겨털을 깎으며 울음을 터뜨릴 일은 없을 것 아닌가! 나도 내 주위 여자들도, 데이트가 있거나 중요한 날을 앞두고 주기적으로 제모를 한다. 누가 그렇게 하는 거라고 가르쳐 준 적도, 살면서 겨털이 불편했던 적도 없지만, 그냥 한다. 겨드랑이털을 깎는 남자는 아직 보지 못했다. 여자애들이 팔을 움직일 때 겨드랑이 사이로 털이 슬쩍 보이면, 남자 애들은 정말 이상한 무엇을 본 것처럼 뒤에서 수군대곤 했다. "야, 깬다. 어떻게 겨털이 있냐?" 남자애들끼리 어떤 애 겨털을 봤다고 얘기하는 걸 엿듣고는, 그 여자애를 찾아가 "너, 겨털 보여" 하고 조심스레 말해주고 "우리 조심하자"고 했다. 그게 그 애를 돕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곤 내 것도 자라 있진 않은지 슬쩍 만져봤던 거 같다.

그동안 내가 보고 배운 '여성'은 많은 것을 감춰야 하는 존재이고, 동시에 늦은 밤에 혼자 다닐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이기도 했다. 스무 살이 되면서 오후 9시 통금이 해제되었지만, 그렇다고 귀가 시간이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었다. 지금도 귀가가 늦어지면 엄마는 내가 들어올 때까지 잠 안 자고 기다리고 아빠는 10분마다 어디냐고 전화를 건다.

엄마가 벌건 눈으로 늦게까지 잠도 못 자는 게 싫으면, 내가 일찍 들어오면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남동생이 늦을 때는 별말이 없다. 여자친구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막차가 끊겨 집까지 한 시간 넘는 거리를 남동생 혼자 택시 타고 온 날, 엄마는 드르렁드르렁 자고 있었다. 다음 날에는 여자친구를 집까지 안전하게 바래다준 일을 칭찬하기까지 했다. 밤에 집 앞 편의점에 가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 난 남동생과 대비되는 처우가 못마땅했다. "여자가 밤늦게 돌아다니면 남자들이 해코지할까 봐, 무슨 일 날까 봐, 걱정인 거지? 그럼 여자를 가둬놓을 게 아니라, 해코지할지 모르는 남자들을 가둬놔야지!" 입에서 이런 말들이 굴러다녔지만, "다 너 걱정해서 하는 소리잖아"로 시작될 말싸움이 그려져 입술만 삐죽거리고 말았다.

남동생에게도 종종 '남자다움'이 요구될 때가 있다. 동생은 어릴 때부터 비위가 약해서 꿈틀대는 산낙지나 선짓국, 곱창, 닭발 같은 걸 못 먹었는데 아빠는 "사내자식이 이런 것도 먹을 줄 알아야지" 하며 숟가락에 조각난 낙지 다리, 때로는 개고기를 발라 얹어주었고, 동생은 한참 버티고 가끔은 울다가, 안 먹으면 고추가 떼일까 봐 코를 막고 겨우 목으로 음식을 넘겼다.

집안일을 할 때 형광등 갈기, 망치질, 가구 조립하기, 무거운 짐 옮기기 같은 일은 남동생을 시켰고, 예쁜 글씨로 메뉴판 쓰기, 과일 깎기, 빨래 널고 개기, 청소, 식사 준비 돕기는 언제나 내 몫이었다. 집안에서조차 여성의 성별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행동들은 때때로 칭찬이 되었고 어떤 것은 흠이 되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일과 잘하는 일과 관계없이 나와 남동생은 각자 맡게 되는 일들이 뚜렷하게 구분되었다.

얼마 전엔 할머니 댁에서 남동생이 다 먹은 저녁 밥상을 옮기려 하자, 할아버지는 남자가 부엌에 가는 거 아니라며 발로 날 툭툭 밀었다. 네가 가서 할머니 좀 도우라고. 따지고 싶은 것을 꾹 참고 방으로 들어갔다. 매번 뭐든 나만 부리는 할아버지에게 화가 났다. 그런데 따질 수 있다 해도 내 생각을 조리 있게 정리할 수 있는 언어가 내 안에 별로 없어서 입을 꾹 다물고만 있었던 것이 더 분했다.

여성의 '태도' 말고, '권리'에 대해 배웠더라면

엄마, 아빠나 남동생, 할아버지, 친구들이나 택시기사, 편의점 점원처럼 일상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타인들과 말을 섞을 때 "여자가"라는 부당한 말에 자주 고개가 갸웃거렸다. 조목조목 따지고 싶다가도 어려서부터 엄마가 나에게 당부해 이미 깊숙하게 자리 잡은 통념을 스스로 깨기 어려웠다. 바락바락 따지고 덤벼들고 싶다가도 내 안에서 옳다고 믿는 생각과 이미 깊이 박혀 있는 의식과 습관이 부딪히면서 말문이 자주 막혔다.

전형적인 가부장의 모습을 지닌 할아버지는 그렇다 쳐도, 엄마의 말에서 할아버지의 흔적을 찾을 때는 조금 섬뜩하기도 했다.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수도 없이 "자고로 여자는" "어디서 여자가" 하는 말을 들었을 텐데, 엄마는 한 번도 억울하다거나 불편함을 느낀 적이 없을까? 하긴, 내가 그동안 엄마 말을 의심 없이(?) 곧이곧대로 들은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나도 강남역 사건 같은 충격을 겪지 않았다면, 그대로 커서 나중에 내 딸에게 서운하고 부당한 말들을 늘어놓았을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성교육은 붙들고 앉아 교육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가정에서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걸 느낀다. 예를 들면, 내가 만난 남자애들은 엄마가 생리를 어떻게 여기는가에 따라 생리를 대하는 태도가 판이하게 달랐다. 내가 쿡쿡 찌르는 생리통으로 배를 움켜쥐고 있을 때 "그렇게 아프면 참지 말고 화장실 가서 (생리혈을 똥 누듯이) 싸고 오라"며 무식함을 드러내는 애가 있는가 하면, "우리 엄마는 면 생리대 쓰던데, 생리통에 좋대" 하며 정보를 일러주는 애도 있었다. 집에서 일상적으로 보고 배우는 것, 즉 가정의 문화가 한 사람에게 '인식의 출발점'을 만든다. 집에서 알게 모르게 습득하는 것들은 내면 깊숙이 박혀 있어 교육으로도 고치기가 힘든 것 같다.

▲ '강남역 살인 사건'이 발생하자, 시민들은 지하철 2호선 강남역에 피해 여성을 추모하는 쪽지를 남겼다. ⓒ연합뉴스

기차 안에서 어떤 남자가 졸고 있는 내 허벅지에 손을 갖다 댄 적이 있다. 친구들과 얘기해보면 여성이 느끼는 성적인 불쾌감은 생각보다 만연해 있고, 일상적으로 가해지는 언어적 추행까지 헤아리자면 끝이 없다. 그때마다 불쾌하다고 말하는 게 망설여졌다. 막상 현실로 닥치면, "싫어요! 안돼요! 도와주세요!"를 분명하게 외치라던 성교육 교과서 가르침 따위는 이미 머릿속에 없었다. 불쾌한 것을 불쾌하다고,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남동생 대신 부엌에 가서 할머니 일 좀 도우라는 할아버지에게 내 생각을 조목조목 전할 수 있었다면, '여자는 여자답게'에 익숙해진 엄마에게도 내가 느끼는 불편함을 함께 이야기하자고 설득해내는 능력을 가졌더라면, 초등학생 때 귀엽다며 뽀뽀 한 번 해보자던 동네 오빠의 정강이를 보기 좋게 걷어찼다면, 지하철에서 내 허벅지를 더듬던 그 자식에게 따귀를 날리며 사과를 요구했더라면. 그렇게 하는 것이 여성으로서 나의 '권리'라는 걸 어딘가에서 진즉에 배울 수 있었더라면, 이제야 불편함을 '인식'하기 시작한 내 인생이 조금은 더 달라지지 않았을까?

말할 용기는 없고,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질문은 자꾸 생겨나니 확실히 인생이 더 피곤해졌다. 주위 사람들과는 얼마나 더 숱한 말싸움을 벌이게 될까. 그래도 이 '까칠함'이 무지한 누군가를 자극할 수 있다면, 주위에 나처럼 불편함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조금씩 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달라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적어도 "자고로 남자는" "어디서 여자가"로 시작하는 언어들은 사라지지 않을까? 조기교육 선행학습이 열풍이지만, 진짜 선행해야 할 학습은 바로 사회가 정해놓은 성 역할을 깨는 열린 사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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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와 함께 대안적인 삶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민들레>는 1999년 창간 이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출판 및 교육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이라는 통념을 깨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다양한 배움'의 길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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