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씨책방은 곧 검은 옷 입은 사내들과 마주할 것이다.

[권리금의 유혹 上] 쫓겨날 위기에 처한 공씨책방 이야기

무릇,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혼란스러운 개념어는 '상가 재테크'라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통해 임차상인에게로 다가온다. 신촌의 터줏대감 '공씨책방'의 경우 또한 다르지 않았다. 전(前), 현(現), 두 건물주(임대인)의 요구는 간단했다.

"나가!"

새로운 건물주 전 씨는 고백했다. "이 건물은 재산 증식을 위해 사들인 것이다!" 공씨책방에게먼저 나가라고 한 것은 원래의 건물주 정 씨다. 임대차계약 갱신일이 한 달여 남은 시점에 기습적으로 "나가!"라고 했다. 그리고 곧장 전 씨에게 건물을 팔았다. 정 씨는 전 씨에게 약속했을 것이다. "반드시 공씨책방을 내쫓아 주겠소!"

이는 상가건물 매매현장에서 흔하게 목격되는 이른바 '특약 사항'이다. 매수인의 '상가건물 개발계획'에 기존 임차인이 없는 경우에 따라붙는다. 가령 다음과 같은 생각 따위가 매수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울 때. '1, 2, 3층 임차인을 내쫓고 거기에 프렌차이즈 커피숍을 들이는 것이 더 낫겠다!', '저 건물 그냥 내가 다 쓰자!'

ⓒ정용택 감독

왜 하필이면 한 달 전에 "나가!"라고 했나?

공씨책방은 지금의 자리에서만 20년 넘게 영업하였다. 정 씨는 그런 공씨책방에 이사 갈 시간을 한 달여밖에 주지 않았다. 정상 영업하는 가게가 그렇게 짧은 기간에 다른 점포 자리를 물색하여 이전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나 일반상식적으로나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공씨책방은 책이 그득한 헌책방이다.) 정 씨는 왜 이런 몰상식한 행동을 취한 걸까? 바로, '임대차계약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서'다. 2015년 5월에 개정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은, 아래의 조문으로써 건물주가 임차인의 양수·양도(권리금) 계약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제10조의4(권리금 회수기회 보호 등) ① 임대인은 임대차 기간이 끝나기 3개월 전부터 임대차 종료 시까지 (…) 권리금 계약에 따라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 임차인이 되려는 자로부터 권리금을 받는 것을 방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말 그대로다. 기존 임차인이 "임대차 기간이 끝나기 3개월 전부터 임대차 종료 시까지" 새로운 임차인을 데려와 "전 이 사람과 권리금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러니 건물주님께서도 이 사람과 임대차계약을 체결해주세요."라고 요구하면, 건물주는 (특정한 사유가 없는 한) 별수 없이 기존 임차인이 주선한 그 새로운 임차인과 임대차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정 씨는 바로 이러한 '불의의 사태'를 막기 위하여 임대차계약 갱신일이 임박해서야 "나가!"라고 했다. '꼼수'를 부려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의 기간' 3개월을 훼손한 것이다. 해당 방법은 재테크꾼들 사이에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부수기의 한 방법으로써 널리 쓰이고 있다. 필자의 책 <합법적으로 임차인을 내쫓아드립니다>에도 나와 있다.

왜 하필이면 1개월 전일까? 하루 전에 "나가!'라고 하면 더 효과적일 텐데 말이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내 다른 규정 때문이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제10조 제1항 및 제4항에 의거, 임대차계약만료일 6개월 전부터 1개월 전까지의 사이에 건물주가 임차인에게 갱신거절의 통지를 하지 않으면, 해당 임대차계약은 자동으로 갱신된다. 그렇다. 임대차 관련 필수 상식으로 취급되는 이른바 '묵시의 갱신' 관련 조항이다.

그런데 이미 언급한 것처럼, 정상 영업하는 가게가 다른 장사하기 좋은 자리를 찾아 1개월 이내에 짐을 옮기는 것은, 사회통념 따위에 비추어볼 때 결코 온당치 못하다. 임차인에겐 적어도 6개월 이상의 이사할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실제로 영국과 일본의 임대차 제도의 경우, 건물주가 임대차계약 만료일 6개월에서 12개월 전에 계약갱신 거절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해당 계약이 자동으로 연장되도록 하고 있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은 임차인을 보호하는 법률이지, 내쫓는 법률이 아니다. 관련 조항, 하루빨리 개정되어야 할 것이다.


권리금을 빼앗는 3가지 방식

'상가 재테크'라고 불리는 '건물주의 합법적 임차인 내쫓기'는, 결국에 '권리금의 약탈'로 이어진다. 요즘 유행하는 상가 재테크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권리금이 형성된 가게의 임차인을 빈손으로 (그러나 합법적으로) 내쫓아, 새로운 임차인으로부터 바닥권리금을 받아 챙긴다!' 말이 좋아 '상가건물을 활용한 재산증식의 기술(상가 재테크)'이지, 사실은 강도질에 다름 아닌 것이다. '상가 재테크'의 방식은 크게 다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말 그대로의 권리금 빼앗기
둘째, 직접 장사해 권리금 빼앗기
셋째, 월세 올려 권리금 빼앗기

"임차인 A에게 줄 것을 내게 줘!"라는 식으로 정말 표나게 권리금을 빼앗는 것이 첫 번째 방법이다. 두 번째 방법은 이보다 덜 직접적이다. (일단) 권리금이 아닌 임차인이 가꿔놓은 '공간'을 빼앗는다. 즉 "내가 장사할 테니 나가주시오!” 하며 그 자리를 차지해 버리는 것이다. 물론, 건물주가 장사하다가 나중에 다시 세를 놓더라도, 새로운 임차인에게 권리금을 요구할 수 있다. 역시 이 또한 첫 번째 방법과 다를 바 없는 권리금 빼앗기지만, 어찌 된 일인지 대중은 이를 권리금 약탈로 인식하질 못한다. 다만 '건물주도 장사 좀 하자는데 뭐가 문제야?'라는 식으로 반응한다. 그래서 해당 방법은 주위 시선을 신경 써야 하는 위치에 있는 건물주(가령 연예인)가 쓰기에 좋다(그래서 리쌍이 썼었다.).

마지막 방법은 새로운 임차인에게 권리금을 받지 않는다. 대신에 월세를 이전 임대차계약보다 엄청나게 올려 받아 포기한 권리금만큼을 오른 월세로 채운다. 권리금이 비싸 세가 잘 나가지 않을 때 쓰이는 방법이다.

이상의 세 가지 방식은 즉각적, 단독적으로 쓰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때에 따라선 유예적, 복합적으로 쓰이기도 한다. 전 씨가 공씨책방에게 권리금을 보상해주지 않는 한, 그는 절대로 셋 중 하나의 약탈 방식을 피해갈 수 없다. 한편, 흥미롭게도 대부분의 건물주는 자신들의 합법적 임차인 내쫓기가 권리금 약탈의 다른 이름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아마도 본인들 행위를 차분하게 분석해본 적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온다

만약 임차인이 "당신 같은 재테크꾼에 의해 별안간 쫓겨날 수는 없다!"며 '뻗대면' 어떻게 될까? 상가 재테크에는 이에 대한 오래된 매뉴얼이 있다. 저항하는 임차인을 만난 매수인은, 다음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한다.

하나, 이사비를 주어 내보낼 것이냐?
둘, 아니면 강제집행을 해 내쫓을 것이냐?

일반적으론 전자를 선호한다. 소송까지 거쳐 가며 강제로 문을 따고 들어가 사람과 집기 등을 끄집어내는 폭력적인 방식(강제집행)보다는, 그것이 훨씬 더 빠르고 깔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 씨는 공씨책방에게 제안했다. "이사비조로 500만 원 줄 테니 나가주시오!" 물론, 신촌역 1번 출구 옆에 위치한 공씨책방에게 돈 500만 원이란, 권리금에 한참이나 미치지 못하는 액수다. 따라서 공씨책방은 그 돈을 받지 않았다. 다만 '저항'을 약속했다.

이사비는 강제집행 비용 등(강제집행에는 임차인이 극단적인 선택 따위를 할 경우에 따른 건물 가치의 하락, 임대인의 평판 실추 등 +α의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등'이라는 글자를 붙였다.)과 견주어 정해진다. 500만 원은 전 씨가 상정한 '강제집행 비용 등'이다. 재테크꾼들은 아래의 식에 한해 임차인과 합의, 이사비를 준다.

강제집행 비용 등 ≥ 이사비

강제집행 비용 등과 이사비의 액수가 같은 경우에도 이사비를 택하는 이유는, 강제집행 비용 등이 추측의 영역에 머물기 때문이다. 다음의 경우엔 강제집행을 한다.
강제집행 비용 등 < 이사비

공씨책방과 전 씨 간 이사비에 대한 협상은 진작에 깨어졌다. 공씨책방은 곧 검은 옷 입은 건장한 사내들과 마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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