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들고 집에 돌아가 시민단체 하나씩 만든다면?

[2017, 촛불을 묻다] 조한혜정-서복경 대담 ②

'촛불 민심'의 정체는 무엇일까? <프레시안>은 그 해답을 인류학자와 정치학자 각각 한 분씩을 초청해 찾아보았다. '촛불 민심'의 근원을 탐색해보고, '촛불 민심'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를 '가늠'해 봤다. 두 편으로 나누었는데, 두 번째 꼭지는 '대안'이다.

2013년 출범한 박근혜 정권은 두 개의 큰 분수령을 맞이하게 된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그리고 2016년, 아직 현재 진행형인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이다. 후자는 이미 '탄핵'이라는 절차적 고비를 한 단계 넘긴 상황이다. 그럼에도 진행형인 이유는, 지난 4년간 박근혜 체제에 대한 거센 '저항'의 물결이 광장에서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체제 4년' 이상의 문제가 켜켜이 쌓여 그 실체를 드러낸 것이라는 지적은 타당성이 있다. 우리는 1961년부터 시작된 재벌·전경련의 실체를 봤고, 18년 군부독재 과정에서 헌정을 농단했던 세력의 부스러기를 목도하고 있으며,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고쳐지지 않았던 낡은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었고, 1997년 구제금융 이후 심화된 경제 구조의 불평등을 체험하고 있다.

이 모든 부조리에 대한 외침은 2016년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그리고 모종의 변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 변화는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일 수도 있다. 아니, 이미 세상은 변했고, 우리 스스로 그에 맞춰 '조율'해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촛불 민심'을 분석하기 위해 <프레시안>은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와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의 대담을 마련했다.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와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의 대담 2편이다. 편집자.

☞조한혜정-서복경 대담 ① '외톨이 소비자'의 나라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 2016년 12월 31일 10차 촛불집회는 '송朴영신'으로 치러졌다. ⓒ프레시안(최형락)

촛불, 게임이 시작됐다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은 헌법재판소가 심판하고 있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해서는 특별검사와 국회 청문회가 조사하고 있다. '촛불'이 평화적으로 달성한 정치적 승리다. 그렇다면 '촛불'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서복경 : 먼저 '촛불'의 정보의 이동 과정을 살펴보자. 사람들이 '누가 무엇을 했다'는 사실과 사실을 엮어 해석하기까지 일반적으로 보름 정도가 걸린다. 이후 정보의 중요도에 따라 오더링(ordering)된 뒤, 중요 정보를 위한 행동에 들어간다. 그런데 이번 게이트의 경우, 목요일이나 금요일 관련 사실이 보도되면, 토요일 광장에 나가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며 사실 여부를 확인한다. 그리고 월요일과 화요일 바로 SNS로 확산한다. 정보의 이동이 굉장히 빠르다.

다음으로, '촛불'의 저항성을 생각해 보자. 지금과 같은 광장의 정보 유통 방식은 사실 공직선거법과 정보유통법에 위배된다. 누군가 광장의 정보를 법적으로 문제 삼는다면, '촛불'은 거세게 저항할 것이다. 또 공권력이 청와대 100m 앞 집회에 대해 물리력을 행사할 경우, '촛불'은 횃불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경찰이 지금과 달리 광장을 제한한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도 논의해야 한다.

조한혜정 : 촛불을 둘러싼 '민심'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자축'하기보다는 주변을 둘러봐야 한다. 여고 동창 연말 모임에서 한 친구가 말하길, 보톡스 등 미용 시술을 받은 장년·노년 여성들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비난을 자신에 대한 비난으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또 촛불집회 참여자들도 보수집회처럼 돈을 받고 온다고 믿고 있다고 했다. 경찰 측과 주최 측의 참가인원 수가 다른 것도 촛불집회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근거가 되고 있다. 카카오톡을 통해 벌써 유언비어가 퍼지고 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촛불의 열기는 뜨거웠다. 하지만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을 둘러싼 '구원파' 연계설에, 유 전 회장의 사체가 마늘 밭에서 발견되는 등 일련의 상황이 기괴해지면서 문제의 핵심이 흐려졌다. 이후 '의사자 요구' '시체 팔이' 등 유가족을 음해하는 소문과 보수단체의 폭식집회 등 믿을 수 없는 일이 공공연히 벌어졌다. 미디어 또한 중심을 잡기보다 그런 잡음(노이즈) 싣기에 바빴다. 미국 대선을 흔든 '가짜 뉴스' 사건처럼 보통사람들이 식별하기 어려운 '고도의 정보정치공작'이 불안한 민심과 만나고 있는 것이다.

2008년 FTA 반대 집회 때도 촛불집회 참여자에게 도로교통방해죄라는 명목으로 과도한 벌금을 부과했다. 광장에 나오는 것 자체를 어렵게, 두렵게 만든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촛불집회, 촛불정국도 이런 음해와 공작으로 지저분해지지 않을까 겁이 난다. 눈앞의 전쟁터가 전부는 아니라는 말이다.

프레시안 : 통수권자가 탄핵 심판을 받고 있기 때문에 2008년과 같은 압박은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황교안 권한대행이 법무부 장관이던 시절 박근혜 정권에 우호적인 세력이 세월호 유가족을 '종북'으로 몰며 이념 갈등을 부추겼던 것을 생각하면, 조한 교수의 말처럼 광장의 위축도 고민해야 할 것 같다.

▲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조한혜정 : 개인적으로는 국회의 탄핵안 가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12월 3일 6차 촛불집회 분위기가 제일 좋았다. 광장의 목표가 뚜렷했다. 하지만 12월 9일 이후 '촛불'의 방향이 애매해졌다. 여전히 구호는 '박근혜는 하야하라, 구속하라'인데, 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다음 주에도 또 나올 거죠?'와 같은 다짐도 부담스러웠다. 지난 크리스마스이브 집회에서 산타가 주목을 끌었는데, 선물이 수갑이어서 사실 좀 불편했다. 조금 더 풍성하고 따뜻한 선물들을 기대했는데 말이다.

지금 광화문 광장은 '비상식적인 정부'에 맞선 '상식적인 시민들'의 혁명이 진행 중이다. 이런 모습은 2002년 한일 월드컵 응원 때 얼핏 봤다. 식민 치하와 한국전쟁, 보릿고개를 경험한 국민과는 때깔이 다른, '국민'보다 '시민'이라고 부르게 된 국민이다. 이들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으로 극에 달한 정치 타락을 더는 그냥 둘 수 없다고 쏟아져 나왔다. 특히 이들은 동원되는 것을 거부하고 섣불리 하나로 묶이는 것을 불편해하는 다양한 개인의 집합이다. 그간 '박근혜정권퇴진 퇴진국민행동(퇴진행동)'은 이런 시민의 무정형(無定型) 흐름을 나름대로 잘 담아왔다. 그러나 '위기 상황이니 일단 함께 행동하자'는 '연대'로 변질할 위험성 또한 농후하다.

미국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Richard Sennett)은 '68연대는 독재와 근본적으로 비슷하다'면서 연대를 넘어 서로를 알아보는 사회성을 키워가야 한다고 했다. 단언하는 태도를 삼가고 서로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퇴진행동'이 '68연대'가 되지 않으려면 동일성을 전제하지 않은, 차이에 바탕을 둔 협력의 장으로 진화해야 한다. 단언하기보다 의논하는 정치, 심판의 언어를 넘어선 생성의 언어를 만들어가는 대대적인 학습의 장을 열어야 한다. 협력과 연대는 전략이 아니라 공동체의 목적 자체이다.

그동안 국민들은 국가 권력에 너무 많은 것을 위임했다. '공공' 내지 '공공성'을 국가와 동일시하기까지 했다. 원래 '공공'은 시민(국민)이 만드는 것이다. '시민적 공공성의 회복'이 관건이다. 다중에 대한 존중의 질서가 광장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이 일시적 공공질서를 어떻게 하면 지속적 공공질서로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직접 민주주의, 풀뿌리 민주주의, 조합주의 등의 논의가 시작될 때다.

방송인 김제동 씨가 이끄는 '만민공동회'나 다양한 온라인 시민 의회 등의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일부에서 '직접 민주주의'를 '직접 행동' 정도로 이해하는 것 같다. 불신과 적대에 너무 깊어져서 그런 것 같다. 직접 민주주의는 서로를 믿어주고 다양한 실험이 가능한 토양에서 제도와 체제를 바꾸어내는,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방법이다. 광화문 광장, 그리고 촛불은 직접 민주주의를 키우는 묫자리여야 한다.

촛불, 일상의 정치 참여자로 거듭날 수 있을까


프레시안 : 광장의 '촛불'은 소수의 대표성에 거부감이 있는 것 같다.

조한혜정 : 지금 사람들이 제일 못 참는 일 중 하나가 누군가가 자신을 대변한다고 나서는 것이다. 삶의 영역에서 각자가 고군분투(孤軍奮鬪)해왔으니, 이해할 만하다. 각 대학의 시국선언 과정이 이런 경향을 잘 보여준다. 앞서 개개인이 자신의 취향을 좇는 소비자이자 이익을 좇는 투자자가 됐다고 했는데, 이에 덧붙여 개인이 모든 것을 판단하는 조물주가 되기도 했다. '탈(脫)계몽'의 시대에 와버린 것이다.

탈계몽주의 시대의 개개인은 좀체 서로를 듣지 않는다. 독보적인 자신의 경험과 자유만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자유'는 모두를 외톨이로 만들 뿐이다. 자유의 개념이 달라져야 한다. 억압에서 벗어나는 자유가 아니라, 스스로가 살고 싶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자유, 내 삶이 제대로 살아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적 자유'의 개념으로 전환해야 한다. 독일의 철학자 악셀 호네트(Axel Honneth)는 <사회주의 재발명 : 왜 다시 사회주의인가>에서 초기 사회주의자가 주장한 '연대' '연합' '코뮌'을 '사회적 자유'라고 번안했다.

▲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프레시안(최형락)

서복경
: 일상의 정치가 필요하다는 부분에 공감한다. 하지만, 반대로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원자화·분열화된 개인이 촛불을 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광장이 만든 긍정적 힘이다. 예컨대, 지역구 의원에 대한 정치적 압박은 지역을 매개로 일상의 정치가 가능한 '연대의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일이다.

4.19혁명과 6.10민주항쟁 등 광장이 열리면서 정치적 혁명을 이룩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광장이 끝나면, 시민의 정치 활동도 끝난다. 또는 선거가 끝나면, 정치적 관심도 끝난다. 이렇듯 광장과 일상의 정치가 분절되어 있다.

그런데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의 경우, 시민들이 광장에서 '입법부(국회)'라는 제도적 기관을 향해 '너희가 대통령을 탄핵시켜라' 외치며 매주 워치독(watchdog, 감시견) 역할을 했다. 일상의 정치와 이를 운영하는 제도가 갈등 없이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이런 일상의 정치가 가능하려면, 국회와 정당이 '시민의회' 또는 '시민모임'과 같은 구조적 틀을 인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역 커뮤니티 기획자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민들과 토론하며 지방 의회나 정부에 관련 의견을 개진할 수 있어야 한다. 제도적 공간에서도 적극적인 시민의 권리 행사가 정치 참여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게 받아들여져야 기존 제도와 맞물릴 수 있다.

광장에서 '은혜'를 받다

조한혜정 : 개개인이 자신의 일상과 연결된 지점에서 '정치'를 파악하고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제안하고 협력하는 행위가 대통령 선거에까지 이어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홍세화 선생님의 표현대로 '국민 수준에 맞는' 정부와 국회를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선 결선투표제,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주장하는 비례대표제 도입 등 제도 정비 논의가 본격화되는 것은 고무적이다.

광장에서 마주치는 시민들에게는 일상의 고단함이나 짜증이 느껴지지 않는다. 나름의 멋을 부린 시민들은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나라의 주권자로 광장에 모이고 자신과 같은 이들이 그렇게 많았다는 것에 감동하고 있는 중이다. 그곳에 가면 서로의 존재를 알아보는 시민들 간의 연대가 느껴진다. 층간 소음을 이유로 살인을 저지르는 사회, 놀러 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서로를 경계하는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광화문에서 '은혜를 받는다'고들 말하는 것이다. 무대 발언자에게 쏟아지는 반응, 얼마나 즉각적이고 환대적인가. 그래서 시민들이 절에 가듯, 교회에 가듯, 집회에 나가고 있다.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Emile Durkeim)이 말하는 '집합의식(collective conscience)'이 광장을 신성하게 만들었고, 그 신성함의 순간이 시민들을 더욱 고양된 존재로 키웠다. 이런 광장의 기억이 새로운 정치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

ⓒ프레시안(최형락)

서복경 : 시민들이 직접 피켓을 만들고, 퍼포먼스를 준비하는 등 매주 광장은 개개인의 자유로운 표현양식으로 넘쳐난다. 이런 표현의 자유가 선거 유세 기간에도 일상적으로 허용되어야 한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플래쉬몹도 불허하고 있다. 법원의 청와대 앞 100m 행진 허용 과정에서도 알 수 있듯 시민의 정치 참여를 위한 일상 공간의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

조한혜정 : 지난 10년 동안 국민을 옭아매는 나쁜 규정과 법이 많이 만들어졌다. 공평성을 위해서라지만, 실상은 '규제와 배제의 수단'이었다. 4대강사업처럼 공공성 운운하면서 끼리끼리 해먹는 판을 만들었다. 지금 그 타락한 판이 한 눈에 드러났으니, 법과 제도 정비 작업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믿는다.

서복경 : 광장이 민주주의의 산실 역할을 하지만, 반대로 '광장의 역설'이라는 게 있다. 사회정치적 이유로 광장에 나왔다가 일상에 돌아간 뒤 다시 원자화되는, 그 결과 투표를 통한 정치적 결과가 더 나빠지는 것에 대한 우려다. 저 또한 그런 걱정이 있다. 그래서 제도적 정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마을 단위, 조직 단위로 자주 모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조한혜정 :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 등 지나치게 중앙집권화된 제 3세계적 정치 풍토를 바꿔야 한다. 지금과 같은 글로벌 시대에는 특히 그렇다. 서울시의 정치가 헛발질만 하는 중앙 정부의 정치보다 국가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혁신 정치를 시도하고 있는 박원순 시장이 왜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중앙 정치는 한계에 달했다. 공공재를 자유 경쟁에 맡기겠다는 신자유주의는 국민과 국가를 파탄에 이르게 한 신호였다. 시민들이 자신들의 구체적 삶을 위해 의논하고 상생하는 행위가 정치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광화문 광장의 기적도 지난 10여 년간 이뤄진 크고 작은 공부모임, 지역 모임들이 있어서 가능했다. 지역의 일상 정치가 활발해져야 하고 그런 경험을 어렸을 때부터 할 수 있어야 한다. 엄마는 아이들이 친구들과 몰려다니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고 하는데, 사실 이런 '작당(作黨)'이 민주주주의 시작이다. 학교에서 반장도 뽑고 환경 미화도 하면서 리더십을 키우고 '민주시민(촛불시민)'의 감각을 키워야 한다. 민주시민은 '친구들과 수시로 의논하고, 가끔은 싸우듯 토론하다 보면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는구나'와 같은 깨달음을 통해 탄생한다.

ⓒ프레시안(최형락)

대전환이 필요하다
기회는 50대의 변화!

프레시안 : 엄청난 대전환, 대개혁이 필요할 것 같다.

조한혜정 : 그렇다. 근대 국민국가와 자본주의 체제는 급속히 붕괴하고 있다. 진영 논리를 넘어서 산적한 문제들을 풀어가기 위한 기획에 들어가야 한다. 기후 변화, 노동을 넘어선 사회, 혼자 살다 혼자 죽는 무연사회에 이르기까지 정치 개혁만이 아니라 경제사회적 개혁을 동시에 해내야 한다.

사회적·경제적 성공 경험이 있는 베이비붐 세대와 386운동권 세대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반성한다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간 이들은 자녀를 입시 경쟁에 몰아넣으면서까지 성공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제 자녀들에게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주어야 한다면서 광장에 나왔다. 그들이 새로운 일상 문화와 제도적 정비를 고민한다면 한국 사회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서복경 : 2016년 초 연구소에서 '대한민국 50대'를 기획·조사했다. 이들은 20대 민주화에 일조했지만, IMF를 겪으며 치킨집 사장님이 되거나 실업자가 된 세대다. 동시에 자식의 성공에 모든 것을 건 세대다. 하지만, 현 시대 요구는 이들에게 거울 앞에 서서 반성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50대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보며 그 어떤 세대보다도 자신들이 갈구했던 민주화는 '이게 아니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1987년 이후 일곱 번의 총선(1992년 14대~2016년 20대)과 여섯 번의 대선(1987년 13대~2012년 18대)을 거치면서 실망도 하고 기대도 하고 갈등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원하던 것은, 우리가 바라던 것은 이게 아니었다'는 자각이 들었을 것이다. 이제는 민주화든 촛불이든 '이후'를 고민해야 할 때다.

ⓒ프레시안(최형락)

촛불, 정당과 공적 제도를 점령하라

조한혜정 : 그래서 '시민력(市民力)'이 키워져야 한다. 감시만 하는 수동성에서 탈피해 일상의 정치를 통한 창의적 공공지대를 만들고, 다시 공유재와 공통재(common-wealth)를 확보해야 한다.

서복경 : 감시하든, 창조하든 시민적 인프라(시민력)이 일상적으로 돌아가려면, 개개인의 사회경제적 여유가 담보되어야 한다. 돈의 노예처럼 노동하는 게 아닌, 일상의 시간과 기본적 소득이 주어져야 한다.

조한혜정 : 그렇다. 한국이 지속가능한 국가가 되려면 정치를 정상화하는 것과 함께 경제체제도 제대로 전환해야 한다. 전환의 핵심 방법은 '기본소득' 내지 '시민배당' 제도다. 특히 더는 안정된 직장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 청년 먼저 시민배당을 줘야 한다.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떠는 사람이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를 보면 절감하겠지만, 중산층이 급격하게 붕괴하는 시점에 어쭙잖은 복지제도는 행정 비용만 높인다. 공동주거나 호혜경제(economy of reciprocity) 등의 실험을 통해 시대의 문제를 풀고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시민이 등장할 수 있도록 국가는 최소한의 시간과 돈을 확보해주어야 한다. 과도한 경쟁, 적대와 혐오로 가득한 사회는 미래가 없다. 신뢰지수가 높을 때 경제도 살아나고 문화가 성숙해지고 예술이 꽃핀다. 국민에게 시민배당을 줘야 하는 이유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광장의 민의가 '일상의 정치'로 '사회적 자유'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얘기인데, 불통과 독선의 정치가 초래한 현 사태를 근본적으로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서복경 : '촛불'의 이후, 다음은 '정당과 공적 제도를 점령하라'가 되어야 한다. 시민 스스로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정부로, 기존의 구성을 적극적으로 리모델링해야 한다.

조한혜정 : 지금 광장에서는 '다중'의 언어가 폭발적으로 발화하는 중이다. 이번 기회에 우리 안에 소통과 합의가 이루어지는 '사회'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 '사회'만이 낙후된 국가체제를 손볼 수 있다. 카리스마적 대통령제가 아니라 온 국민의 지혜가 모이고 수렴되는, 국민들이 쉽게 비토를 놓을 수 있는 정치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동시에 국민(시민)들의 집단 지성을 통하지 않고는 현시대의 위기를 풀어갈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국민들과 함께 마스터플랜을 만들어야 한다. 이 같은 전환을 위해 무엇보다 미래를 살아갈 청년이 활약할 수 있는 자율적 시공간이 많아져야 하며 세대 간, 성별 간, (수저)계급 간, 지역 간 소통과 협력이 이뤄져야 한다. 진보 진영은 평등, 보수 진영은 경제와 안보를 담당한다는 식의 이분법 프레임에서도 벗어나 '박사모'라는 타자를 어떻게 만날지도 고민해야 한다.

상식이 통하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 앞으로 태어날 7세대를 생각하며 섬세하게 서로 알아보고 협력해가야 하는데, 광화문 광장의 촛불이 그를 위한 등댓불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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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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