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됨에 따라 야권은 일단 눈앞의 당면 과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3당은 야권 공조를 통해 탄핵소추안을 공동 발의했고, 새누리당 일부의 동참을 끌어내 탄핵 가결 정족수(200석)을 넘겼다.
하지만 가결 직후부터 야권은 또다른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의 거취는 이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에서 결정되게 됐다.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아직 확실히는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은 어떤 정치적 행보를 취하기도, 취하지 않기도 난감한 국면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차기 대선, 국무총리, 개헌 등의 과제가 당장 불거질 테지만 누가 선뜻 나서서 논의를 주도할 수도, 그렇다고 아예 논의를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야3당은 모두 '탄핵 가결 이후에 대해서는 미리 생각하지도, 논의하지도 않겠다'는 태도를 공통적으로 보여 왔다. 유력 대선 주자들을 포함한 정치권 지도자들은 모두 '탄핵 이후'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이들은 다시 입장 표명을 요청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민심'의 요구는 '탄핵에 집중해 달라'는 것으로 이해됐다. 하지만 이제는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하는 것 역시 민심의 요구에 포함되는 국면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차기 대선은? 나서자니 '촛불'에 눈치, 안 하자니 '발등의 불'
현재까지 차기 대선과 관련한 뚜렷한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대선 주자는 없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29일 JTBC 방송 인터뷰에서 "헌법에 정해진 절차가 있으니 그 절차에 따르면 되는 것"이라면서도 "지금 이 단계에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상황을 놓고 거기까지 이야기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했다. "이후 대책은, 지금으로서는 '헌법 절차를 지키는 것' 이상으로는 저희가 말할 수 있는 게 없다"고 그는 강조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도 지난 5일 같은 방송 인터뷰에서 "지금은 대선에 대해서 유불리를 따질 때가 아니다"라며 "헌법에 규정된 절차를 피해 갈 수 없다"고 했다. 다른 야권 주자들도 대선 관련 직접 언급은 피해 왔다. '직설 화법'으로 유명한 이재명 성남시장이 최근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완전국민경선과 결선투표 정도만 보장된다면 괜찮다"고 언급한 정도다.
그러나 헌재가 '인용' 결정을 내려 박 대통령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될 경우, 당장 60일 내에 대선을 치러야 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각 정당은 당장 대선후보 경선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사실 그에 앞서 헌재가 심리를 하는 도중에도, 각 후보 측은 대선캠프를 꾸리고 공약을 준비하는 한편 서로에 대한 치열한 물밑 견제에 들어가게 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더불어민주당에서 가장 유력한 것으로 평가받는 대선 주자는 현재까지 문재인 전 대표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이번 탄핵 국면에서 지지율이 급상승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김부겸 의원 등은 물밑에서 움직이고는 있지만, 현재로서는 두드러진 활동은 하고 있다고 평가받기 어렵다. 말 그대로 '잠룡(潛龍)'이다. 박 시장과 안 지사의 경우 현역 광역단체장이라는 점도 '조기 대선'의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2012년 김두관 당시 경남지사가 대선 출마를 위해 지사직을 사퇴했던 일로 아직까지도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 이들을 움츠러들게 할 수도 있다.
국민의당에서는 안철수 전 대표가 가장 앞서 가는 후보이고, 천정배 전 대표, 정동영 의원 등도 대선 주자로 꼽힌다. 또 민주당·국민의당 어느 당에도 속하지 않은 이들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정운찬 전 국무총리 등도 있다. 이같이 다양한 '인재 풀'은 야권의 강점이지만, 이들이 분열하게 될 경우 1987년 대선 패배의 경험을 되풀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엄존한다. 특히 새누리당을 포함한 보수 진영이 예상보다 빠르게 전열을 정비해 대선에 임할 경우, 분열은 더 치명적일 수 있다. '조기 대선'이란 점을 감안했을 때, 야권 내 후보 단일화 등의 전략을 시도하기에 시간이 부족하다는 조건에서다.
일각에서는 정치권의 합의로 대선 시기를 연기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문 전 대표는 인터뷰에서 "헌법적인 절차를 따르는 것이 기본"이라면서도 "그러나 그것을 넘어선 어떤 정치적 해법들이 필요하다면 그런 것은 국민 여론이 만들어줄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안 전 대표는 오히려 "헌법에 규정된 절차이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하고 있다.
이들의 인터뷰 발언은 '자기에게 유리한 상황에서 대선을 치르려 하는 것 아니냐'는 세간의 의심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정권 교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는 상황에서, 야권 대선 주자 가운데 지지율 선두를 달려온 문 전 대표는 대선을 조기에 치르면 가장 유리할 것으로 예상돼왔다. 하지만 다른 해석도 있다. 헌재가 탄핵 심판을 예상보다 조기에 끝낼 경우, 새누리당에서 유력한 대선 후보가 나오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실상 '문재인 대 안철수'의 일대일 대결이 될 수도 있는데, 이럴 경우에는 오히려 보수 쪽 표심에 확장성이 높은 안 전 대표가 더 유리할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이다.
개헌, 국무총리 등 이슈는?…변수는 '촛불'
변수는 많다. 특히 개헌 문제가 다시 제기될 수 있다. 야권의 모든 정당과 대선 주자들은 '대통령 퇴진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개헌을 논의하지 않는다'는 암묵적 합의를 이룬 상태다. 문재인 전 대표는 "일찍부터 개헌의 필요성을 이야기했었고 지난 대선 때 개헌을 공약하기도 했었다"면서도 "지금 이 시기에 개헌을 말하는 것은 뭔가 순수하지 못하다. 지금은 개헌을 논의할 시기가 아니고 대통령의 퇴진에 전념할 시기"라는 입장이다. 안철수 전 대표 역시 "지금은 개헌을 논할 때가 아니다"라고 했고 <매일경제> 인터뷰에서는 아예 '개헌은 차기 대통령의 몫'이라고 못박기도 했다.
그러나 탄핵안 가결이 '대통령 퇴진 문제 해결'이라는 조건을 충족했다고 보는 측에서는 탄핵안 가결 직부후터 개헌 드라이브를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와 정의화 국회의장이 참석했던 지난달 25일 '개헌과 제3지대'를 주제로 한 토론회에 예상 외의 관심이 쏠린 것도 주목할 만하다. (☞관련 기사 : 손학규 "총리 바꾸고 개헌도 해야", 정의화 "새누리 소멸될 것, 촛불 집회 나가겠다")
황교안 국무총리 교체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 물론 이에 대해 추미애 대표는 7일 기자들과 점심을 들며 "법적 방법은 총리 탄핵 뿐이지만, 계속 대통령도 탄핵하고 총리도 탄핵하고 이렇게 하는 게 현실적이지 않다"며 "총리 탄핵이 아닌 정치적 해법을 찾는 노력은 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우상호 원내대표도 앞서 "세상에 안 되는 일이 없다. 찾아보면 다 방법이 생긴다"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헌법'에 근거한 발상은 아니다.
궁극적으로 차기 대선 준비와 마찬가지의 문제이지만, 개헌이든 총리 교체 문제든 가장 큰 변수는 '촛불 민심'이다. 특히 탄핵안 가결 이전의 정치적 환경에서 '개헌은 논점을 흐리는 것'이라고 야권 지도자들이 주장해온 것 때문에, 개헌에 대해 민심이 부정적일 경우 추진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력 대선 주자들이 대선 전 개헌에 우호적이지 않다는 점에 더해, 여론의 지지까지 얻지 못하게 된다면 개헌은 현실적으로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총리 교체 문제 역시 같은 형국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민심'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 대행'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만큼이나, 야당 지도자들이 총리 교체를 위해 황 총리 본인이나 새누리당 등과 주고받기 협상을 하는 장면 역시 받아들이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국면이니만큼, 야권 제 정당과 대선 주자들의 반응은 한동안 '촛불 민심'에 따라 결정될 확률이 높다. (☞관련 기사 : 탄핵 가결…이제 촛불 민심은 어디로?) 특히 대통령 탄핵안 가결로는 만족하지 않고, 대통령의 즉각적 사퇴까지 요구하는 민심이 높은 것으로 드러날 경우에는 정말 헌재의 탄핵 심판 결정 전까지는 아무런 정치적 시도도 제기되지 못할 가능성마저 있다. 정치권, 특히나 야권의 시선은 앞으로도 한동안 광화문 광장을 향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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