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밥 한 톨에 온 우주가…

[민들레] 글로 차린 밥상

아기 엄마들의 식사는 대부분 간단하고 빠르다. 눈치 게임이기도 하다. 밥이라도 있으면 다행인데, 유난히 허기가 질 땐 영락없이 밥솥이 비어 있다. 그런 날은 처치 곤란이었던 냉동고 속 꽝꽝 얼린 밥조차도 없다. 너무 허기가 져서 얼른 밥을 해야겠다 싶어 쌀통 앞에 서면, 문득 방에서 자는 아기가 깰까 두려움이 앞선다. 그 두려움은 허기보다 커서, 쌀통을 등지고 냉장고 문을 열어보지만 금방 닫기 일쑤. 쳐다보지도 않던 그 흔한 과자나 빵, 초콜릿 한 조각이 집 안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물론 무사히 밥을 안치고 반찬을 꺼내 상을 차릴 때도 있다. 그럴 땐 신기하게도 취사가 완료됨과 동시에 아이가 우렁찬 울음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밥은 그렇게 물 건너간다.

이런 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밥통에 밥이 있고, 반찬도 있고, 아이가 깊이 잠든 날도 있게 마련이다. 잠든 아이를 몇 번이고 뒤돌아 확인하고, 확인하고, 또 확인한 후에 냉장고 문을 열어 반찬을 신생아 다루듯 조심조심 꺼낸다. 극도의(?) 긴장과 조심성 때문인지 꼭 마지막 한 번은 실수가 난다. 달그락 소리에 잠이 깬 아이는 울음을 터트린다. 얼른 달려가 젖을 물리며 자책한다. "미쳤지! 뭔 밥을 먹겠다고!" 밥은 그렇게 또, 물 건너간다.

혼자 점심을 먹으려 국을 데우고 반찬을 꺼내고 밥상을 차리면 늘 숟가락 들기 전에 아이는 일어났고, 다시 재우는 사이 국은 식고 밥은 말랐다. 이런 상황을 한두 번 겪다 몇 번의 실패가 거듭되어 일상이 되면 엄마들은 자신을 위해 차리는 밥상을 점점 포기한다. 어느 순간 국을 데워야 하는 이유를, 밥상을 차려서 먹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게 되고 그것은 습관이 된다. 아마도 밥상을 차리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노심초사 국을 데우고 밥을 풀 시간에 아무거나 재빨리 먹는 편이 허기를 채울 확률이 더 높기 때문 아닐까? 그래서 대부분 엄마들의 밥은 차갑고 간단하고 빠르다.

그러다 보니, 엄마는 아이를 재우며 쉽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뭘까 고민한다. 평화롭게 잠든 아이를 뒤로 한 채, 밥 한 숟가락, 두 숟가락 허겁지겁 먹다 보면(쑤셔 넣는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겠다) 문득 싱크대에 서서 혹은 냉장고 문 앞에서 밥공기를 들고서 반쯤 비워낸 자신의 모습이 제3자가 바라보는 것처럼 비친다. 반찬 뚜껑 한두 개 열어젖히고 숟가락 하나로 밥을 퍼먹는 자신의 모습이 어떤 날엔 서럽고 억울하고 불쌍하고 초라하다. 어떤 엄마는 그 모습이 너무 서글퍼 냉장고에 있는 반찬이란 반찬을 모두 꺼내 상을 차려 먹는데, 그렇게 눈물이 나더란다. 눈물을 먹었는지 밥을 먹었는지 모를,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서럽고 초라한 자신의 모습에 흐느껴 울었다고 한다.

물론 점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겐 저녁도 있고 식사 준비를 도와줄 남편도 있다. 그러나 그 저녁 식사도 따스한 위로의 밥상이 되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다. 남편이 오면 밥 좀 편하게 먹을까 싶지만, 상황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두 아이는 정신없이 발밑에서 알짱거리고, 울고, 엄마를 찾고, 남편은 퇴근 후 바로 욕실로 들어가 소식이 없다. 그렇게 저녁 식사는 또,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밥상이 된다.

엄마도 가끔 밥상을 받고 싶다. "애기 보느라 힘들었지.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했을 테니 당신은 가만히 있어. 내가 다 해줄게." 같이 사는 사람에게도 위로와 밥 한 끼 제대로 받지 못한다. 그게 그렇게 또 서럽고 울컥할 수가 없다. 이러려고 엄마가 된 것도 아니고 아이를 낳은 것도 아닌데. 원인 모를 분노와 울적함이 덮쳐오기도 한다. 이러한 감정들은 왕년에 잘나가던(?), 반짝반짝 빛나던 나와 겹쳐 더 서글퍼지고 속상하다. 우울한 마음이 깊어지는 것이다.

그래, 그렇다고 항상 서러운 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남편이 아이를 등에 업고 둥가둥가를 하며 나 밥 먹으라고 배려하는 날은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쌤통이다' 싶어 통쾌하기도 하다. '너도 한번 맛 좀 봐라. 킥킥.' 밥맛이 꿀맛이다.

▲ 매달리는 아이를 달래가며 끼니를 해결하자니, 엄마의 밥상은 늘 단출하다. ⓒ정선이

웬일로 아이가 달그락 소리에도, 취사 소리에도 일어나지 않을 때가 있다. 무슨 일 있나 걱정되어 조심스럽게 다가가 숨 한번 확인하고 쾌재를 부른다! 직감적으로 안다. 내가 오늘은 밥상을 차려 먹을 수 있다는 것을. 로또가 절로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최대한 행동을 신속하게 밥상을 차려 낸 후 한 손으로 티브이 리모컨을 잡고 급하게 프로그램을 스캔한다. 좋아하는 방송 프로그램을 보며 혹여나 아이가 깰까 큭큭, 웃음 참아가며 밥 한 수저 입 안에 넣을 때는, 시원한 맥주 한 캔 목으로 넘기는 그런 기분이 든다.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먹으면 스트레스가 풀리기도 하고, 한두 수저 먹다 보면 푹 자는 아이에게 고마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 내 새끼는 효자였어, 뿌듯함까지 한 수저 입안에 가득 넣는다.

조용하게 밥을 내 속도대로 먹은 날엔 한없이 너그러워져서 아이와 신랑에게 감사함과 뭉클한 연민이 마구 샘솟는다. 그이는 밖에서 상사, 동료 눈치를 보며 재미없는 농담에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할 텐데. 혹은 너무 바빠 끼니를 거른 건 아닌지, 그이도 나처럼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있진 않을지. 아니면 배가 고픈지도 모르게 정신없을지도. 더운 날, 추운 날 밖에서 묵묵히 애써주는 당신 덕분에 내가 더운 날 시원하게, 추운 날 따뜻하게 밥 한 끼 먹는다며 노고에 대한 감사와 찬사를 보내기도 한다.

어쩌면 사랑하는 이들에게 "밥 먹었어?"라고 묻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흔한 인사가 되어버린 그 물음이 실은 나를 온몸으로 사랑하는 마음 한 숟가락이었을지도. 서로의 안부를 묻고 당신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확인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그렇게 내 부모를, 내 연인을, 내 사람들을 떠올린다.

밥 한 끼 다 해치운 것으로도 모자라 밥상을 싹 치워도 아이가 깨어나지 않을 때가 아주 가끔 있기도 한데, 그럴 때면 새삼 사소한 것에 대한 감사와 일상에 대한 위대함을 문득 느끼곤 한다.

그래, 밥. 어느 만화작가의 말처럼 그 사소한 일상이 무너지지 않았는지를 되새겨보게 된다. 이럴 때 엄마의 밥은 따스함과 연민과 사랑과 감사가 벅차오르는 충만한 밥 한 끼가 되는 것이다. 엄마가 '되고 나서' 알게 된 서러운 밥 한 끼. 엄마가 '되어서야' 알게 된 뭉클한 밥 한 끼. 내가 엄마가 되지 않았으면, 지금의 아이가 없었으면 느껴보지 못할 소중한 감정들.

그렇다. 어쩌면 엄마의 밥은 대부분 슬프고, 차갑고, 외롭고, 서글프고, 초라할 것이다. 동시에 엄마의 밥은 즐겁고 따스하고 평온하고, 애틋하고, 감사하고, 경이롭고, 위대하기도 하다. 그렇게 엄마의 밥은 희로애락이 되는 것이다. 쌀 한 톨에 온 우주가 담겨 있다 했다. 엄마의 밥 한 톨에도 온 우주가 담겨 있다.

오늘도 나처럼 밥 한 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어느 엄마에게 따스한 밥이 되고 싶다. 솜씨가 좋아 엄마들을 초대해 밥 한 상 거하게 차려주면 좋겠지만, 글로라도 모락모락 김 올라오는 밥상이 되고 싶다. 아니, 어쩌면 나에게 주는 밥상이 되고 싶었을지도. 위로라는 것이 별거 있겠는가. 그냥 같은 처지에 있는 우리가 '함께'한다는 것. 그 어딘가에서 그대와 똑같이 앉거나 서서 맨밥에 물 말아 흡입하듯 배를 채우거나 혹은 온갖 반찬을 섞어 먹거나 오늘도 끼니를 거른 그대와 같은 내가 있으니, 괜찮다.

오늘의 이 서러움과 슬픔이 또 기쁨과 감사의 날이 되기도 하니, 우리 그날의 행복을 위해 지금 잠깐, 아주 잠깐 불편한 것이라고, 그렇게 위로하고 토닥거리며 내 앞에 놓인 한 끼에 감사하자고. 무교인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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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와 함께 대안적인 삶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민들레>는 1999년 창간 이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출판 및 교육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이라는 통념을 깨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다양한 배움'의 길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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