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운집…오직 "박근혜 하야" 목소리뿐

[현장] 일상이 멈췄다…"제폭구민"

버스로 이동하기가 쉽지 않으리라 예상했다. 촛불집회 본 행사에 앞서 청소년들의 시국 선언을 취재하기 위해 지하철 3호선 종로3가역으로 향했다. 이때부터 심상치 않았다. 집회에 참가하는 청소년들이 최순실에 관해 이야기했다. 노인들이 모여 시국을 이야기했다. 종로3가역에 수많은 인파가 한 번에 내렸다.

12일 오후 3시경,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난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앞은 일찌감치 많은 이들로 붐볐다. 이날 청소년 시국 선언에만 약 4000여 명이 참여했다. 청소년뿐만이 아니었다. 이곳에서부터 광화문 광장으로 이동하려는 인파가 인도를 가득 메웠다. 어른들은 교복을 입고 "박근혜 하야하라"고 외치는 청소년을 놀라움과 대견함 가득한 눈길로 지켜봤다. 곳곳에서 휴대폰 카메라로 이들을 찍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때맞춰 도로를 메웠던 차량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학로로 이어지는 종로 5가 방향에서부터 사람의 거리 행진 대오가 도로를 점거해 나갔다. 저 멀리서 깃발이, 위안부 소녀상이, 백남기 농민의 그림이, 그리고 거대한 인파가 북소리, 외침 소리, 꽹과리 소리와 함께 종로를 채워가기 시작했다.

청소년 시국 선언 취재를 마치고 본 행사가 열리는 광화문 일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금세 사람의 물결에 묻혔다. 광화문으로 이동하려는 행렬은 종로 영풍문고 앞에서부터 일찌감치 주저앉았다. 사람의 물결이 도로를 가득 메웠다. 큰 길을 따라 더 들어가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대로변 골목을 돌아다녀 보았다. 종로구청 방향으로 이동하는 행렬을 따라갔다. 주말 데이트하는 이들로, 장기 두는 노인들로, 쇼핑하려는 외국인으로 북적이던 종로 일가가 텅 비었다. 일상이 멈췄다.

ⓒ프레시안(최형락)

대신 광화문에 가까워지자, 함성이 거리 곳곳을 가득 메웠다. 이곳의 사람들은 오직 하나의 목소리만 냈다. 박근혜는 하야하라. 아빠 손을 잡은 조그마한 아이가, 연인이, 교복을 입은 청소년이, 학교 점퍼를 입은 대학생이, 오랜만에 친구와 만난 중년이, 머리가 희뿌옇게 샌 노인이 모두 한 목소리만 냈다. 개신교도가, 불교도가, 천주교도가 거리로 나왔다. 민주화운동단체가, 노동조합이, 대학이, 인권운동단체가 모두 한 목소리를 냈다.

충남 예산에서 동창과 함께 집회에 참여했다는 신중현(47) 씨는 "1987년에 우리가 미완의 승리로 좌절했는데, 이번에는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하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집회에 참여해 목소리를 크게 내는 청소년들을 두고 "청소년이 이런 데 나와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안타깝다"며 "지금이 80년대 전두환 독재 시절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고 탄식했다.

아이 손을 잡고 집회에 참석한 박진호(41) 씨는 '왜 나왔느냐'는 질문에 "역사의 현장 아니냐"며 "후대에 떳떳하려면 이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아이까지 데려 나왔다"고 말했다.

퇴근 후 집회에 참석할 것이라면서 자신을 더불어민주당 당원이라고 소개한 택시기사는 "박근혜 대통령이 단 하나 실천한 공약이 국민 대통합"이라며 "1987년에도 거리에 있었는데, 그 때 이후로 이처럼 많은 사람이 나온 건 처음 본다"고 감탄했다.

그럼에도 분출하는 요구는 제각기였다. 박근혜 하야로 통일된 목소리는 언론 보도 이상으로 많은 요구를 담았다. 이들은 박근혜 하야로 상징되는 민주정 되찾기를 요구했다. 이들은 미완에 그친 87년 체제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했다. 이들은 학교에 학생 자치를 키워달라는 깃발을 들었다. 양심수를 석방하라는 깃발을 들었다. 세월호를 인양하라는 깃발을 들었다. 친일파를 청산하라고 했다. 재벌 감시를 강화하라고 했다. 박근혜 정부는 상징일 뿐이었다. 그간 억눌린 이들의 분노를 폭발시킨 불씨에 불과했다. 이들은 부패로 무너진 87년 민주정을 근본부터 회복하길 원했다.

경기 고양시에서 집회에 참석했다는 김모 학생(고등학교 2학년)은 "학생들 힘을 보여줘서 자랑스럽다"며 "이참에 입시 제도도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웃었다.

오후 6시 30분경, 이미 이들의 대오는 주최 측 추산 85만 명에 달했다. 오후 7시 30분경에는 주최측 추산 100만 명에 달했다. 지난 2008년 촛불집회 당시를 넘어서는 규모다. 이들이 광화문을 중심으로 한 도심 곳곳을 메웠다. 이날 경찰은 272개 중대 2만5000여명을 현장 곳곳에 배치했다. 일상을 멈춰버린 이 거대한 분노가 요구하는 청와대 앞 행진에 경찰이 어떤 대응을 보이느냐는 한국 역사에 중요한 한 페이지로 기록될 것이다.

▲ 이날 오후 대학로에서 열린 대학생 시국 대회에 참여한 대학생들. 이들은 대회 후 광화문에 합류했다. ⓒ프레시안(안종길 조합원)

ⓒ프레시안(안종길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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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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