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우리를 너무 많이 부려 먹는 것 같아"

[민들레] 청소·②

무궁무진한 집안일, 누가 해야 하나

큰아이가 대안학교에 다니면서부터 설거지하는 게 눈에 띄게 달라졌다. 아주 깔끔하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에 '음식살림' 수업이 있는데, 아이들이 직접 점심 메뉴를 정해 요리하고 식사 후 뒷정리까지 하기 때문이다. 공개수업을 참관한 적이 있는데, 메뉴 선정에서 역할 나누기까지 아이들의 자발적인 토론으로 이루어지고, 요리하는 과정에서도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지시하지 않고 학생들과 함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요리를 마친 후에도 설거지하고, 부엌 바닥을 쓸고 닦는 서로의 모습을 보며 가르치지 않아도 저절로 배우는 듯했다.

음식살림 수업이 아니라도 청소는 거의 학교생활과 한몸인 것처럼 보인다. 큰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생긴 지 3년밖에 안 되어 시설이 열악한 편이라, 늘 여기저기 청소하거나 수리하는 것이 일상이다. 육체적으로 에너지가 왕성한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는 아이들에게 몸을 많이 쓰는 청소는 꽉 찬 에너지를 발산하는 데 도움이 되는 듯하다. 교과 과정 중에 목공이나 놀이터 만들기가 있어서 학교 선간판(세워 놓는 간판) 만들어 달기, 학교 벽 페인트칠하기, 교실 공간 재배치하기 같은 일들을 아이들이 같이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학기 중에 학교 부엌 바닥에 타일 붙이는 일을 선생님과 학생이 같이 마무리했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아이들이 청소와 수리에 적극적으로 함께하는 원동력은 '학교는 우리 것'이라는 주인의식과 책임의식이 있기 때문이고, 먼저 적극적으로 몸을 쓰는 교사들 모습을 보면서 공간을 정돈해가는 일을 자연스레 배울 수밖에 없었으리라 짐작해본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열심인 큰아이도 집에 오면 쉬고 싶고, 빈둥대고 싶은가 보다. 하긴, 집이란 그런 공간인 것이다. 나도 저녁에 바깥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면 밥 먹고 늘어져 쉬고 싶은데 설거지거리가 쌓여 있을 때가 있다. 큰아이에게 설거지 좀 해달라고 부탁하면 버럭! 할 때가 있다. "학교에서 지금까지 청소하다 왔는데 또 하라고? 나도 좀 쉬자!" 하고(내가 너무 한 건가?).

ⓒpixabay


여느 주부들이 그렇듯 집에서 청소는 대체로 내 몫이다. 글자로 써 보면 '청.소.' 두 글자지만, 이는 정말 무궁무진한 영역이다. 식사 후 설거지부터 뒷정리, 빨래 세탁과 널기, 개기, 방 쓸고 닦기, 먼지 털기, 유리창 닦기, 베란다 정리, 계절별 옷 정리, 서랍 구석구석 정리정돈까지. 회사 다니는 남편은 주말에 가끔 청소기를 돌리거나 설거지를 해 주는 정도지만 그래도 중3 큰아들과 초등학교 6학년인 딸아이가 청소뿐만 아니라 식사 준비, 정리까지 다른 집보다 집안일을 많이 하는 편이니 큰 도움이 되는 게 사실이다.

요즘 아이들이 주로 맡은 건 주방일 돕기와 세탁이다. 일주일에 두어 번 정도 설거지, 음식물 쓰레기 내다 버리기, 빨래 널고 개기를 한다. 때로는 아이들을 너무 부려먹는가 싶기도 한데, 아닌 게 아니라 아이들은 이따금 자기 친구들보다 청소를 많이 한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밤 10시까지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과 달리 하교 후 곧장 집으로 오니, 청소할 시간도 넉넉한 것이다(설사 학원에 다니느라 바쁘더라도 시간 내서 청소하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처음에는 항상 "엄마가 피곤한데, 청소 좀 도와줄 수 있어?" 하는 부탁으로 시작한다. 명령이 아니라 부탁이니, 아이들한테도 설득력이 크다. 아주 피곤하거나 기분이 안 좋을 때를 제외하고는 늘 쿨하게 집안일을 거드는 편이다. 아들은 설거지와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를 적극적으로 해주는 반면, 딸아이는 빨래 널기, 정리 정돈을 잘한다. 아이들 이 그 일에 능숙해지기까지는 과정이 있다. 처음에는 옆에서 내가 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점점 함께하는 단계로 넘어간다. 일을 처음 배울 때는 그냥 지시만 하기보다는 청소 내용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서 실제로 시범을 보여주는 게 제일 좋다.

예를 들어, 빨래를 널고 갤 때도 말로만 설명하는 게 아니라 옷 종류별로 적절한 방법을 시연하는 것이다. 처음에 설명과 시연 없이 빨래 널기를 시켰더니, 세탁기에서 나온 옷들을 털지 않고 뭉쳐진 그대로 건조대에 걸쳐 놓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 후론 하나하나 차근차근 보여주게 되었다. 온갖 모양으로 생긴 빨래를 잘 개는 요령은 고도의 기술이다. 티셔츠, 남방, 바지 등 그냥 마구 접는 게 아니라 보기 좋게, 그리고 구겨지지 않게 모양에 따라 개는 법을 설명하면서 보여주는 것이다. 몇 번 보여주면서 함께해보고 나면, 마구잡이가 아니라 자기 식대로 방법을 터득해가는 변화가 보인다. 그리고 가끔은 그 과정에 집중하며 즐기는 모습도 종종 엿볼 수 있다.

식사할 때도 식사 준비를 나와 한 아이가 함께하면, 뒷정리와 설거지는 다른 아이가 한다. 가정 안에서의 청소는 가족 모두의 몫이라고 오랫동안 얘기해왔다. 가족 구성원이 함께 살면서 먹고, 입고, 자는 공간이니 그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함께 역할을 맡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이런 설명을 하면 아이들도 딱히 토를 달지는 않는다. 다만 다른 친구들보다 집안일을 많이 하는 것 같다고 불만을 털어놓은 일이 종종 있긴 했다.

성토대회가 된 가족회의

중학생이 된 큰아이가 집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대안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용돈을 주었는데, 그냥 준 것은 아니고 청소를 일상적으로 하는 조건을 걸었다. 작은아이에게도 오빠보다는 적지만 용돈을 주었다. 긴 통학거리를 오가며 간식비도 필요하고 예기치 않은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 용돈을 주겠지만, "대신 책임지고 집안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용돈 받는다고 기뻐하다가 청소를 꼭 해야 한다는 조건을 듣는 순간, 아이들 표정이 어리둥절해졌다.

가정교육 차원에서 노동의 대가로 용돈을 받는 것은 그냥 받는 것보다 아이들 스스로 뿌듯함과 자긍심이 느껴질 것으로 생각했다. 용돈을 받는 기쁨과 더불어 청소를 도우면서 집안일이 숙련되어가자 아이들의 뿌듯함과 자긍심도 커졌다. 아이들은 달력에 집안 청소 목록을 기록하면서, 청소하는 매주 월요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엄마로서도 용돈 주는 날이 손꼽아 기다려질 정도로 아이들과 함께하는 청소가 즐거웠다.

시작은 좋았는데, 점점 뭔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꼬박꼬박 열심히 청소하던 두 아이가 가끔 맡은 청소를 빼먹기도 하고, 친구들보다 너무 많이 한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일이 잦아졌다. 나 역시 아이들 얘기를 들어주고 심정을 헤아려주기보다 '규칙은 규칙'이라며 단호하게 맞서거나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어떨 때는 감정조절이 안 돼 아이들 앞에서 불같이 화를 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

▲ <섬기는 부모가 자녀를 큰사람으로 키운다>(전혜성 지음, 랜덤하우스 펴냄). ⓒ랜덤하우스
2011년 4월부터 마을에서 책 모임을 하고 있다. 초기에는 자녀교육에 관한 책을 함께 읽었는데 그중에 우리 집에서도 가족회의를 해 봐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책이 있다. 전혜성 씨가 쓴 <섬기는 부모가 자녀를 큰 사람으로 키운다>(랜덤하우스 펴냄)라는 책이었다. 자녀의 교육은 학교나 학원처럼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 이루어진다는 걸 강조하고 있었다. 저자가 자신의 가정교육으로 행했던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도 '가족회의'가 와 닿았다. 책 내용이 너무 좋아 남편에게도 살짝 추천했는데 웬일인지 한자리에서 읽어 내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평소 남편은 주로 철학 책이나 고전을 읽었고, 누가 추천해주는 책보다는 주로 자신이 직접 골라서 보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은 그 주 주말 아침, 가족들에게 선언했다. 가족회의를 하자고. 아니, 가족회의를 할 것이라고. 아이들은 흥미진진한 표정이었고, 남편은 회사에서 제일 싫은 게 회의인데 집에서도 해야 하냐며 불평부터 했다. 그러면서도 드센 마누라의 강권으로 하는 수 없이 부엌 식탁으로 와서 자리를 함께했다.

처음에는 격식도 없이 무작정 둘러앉았다. 그런데 그 순간이 마냥 좋았다. 가족이 온전히 마주 앉아 집중하는 그 순간, 들뜨며 좋아하던 딸아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빈 공책을 가져와 즉석에서 가족 회의록을 만들고, 사회자와 기록자도 정해 첫 회의를 했다. 내가 하자고 주장했으니 가족회의를 하고 싶은 이유를 가족들에게 밝혔다. 안 그러려고 노력은 하지만 일상에서 부모는 아이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권유하게 된다. 가족 행사나 여러 일정에 대해서도 아이들과 의논하기보다는 즉흥적으로 부부끼리 결정하는 일이 빈번하다. 그러나 아이들이 커가면서 그 시기에 따라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들여다보며 그것을 가족들에게 표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가족구성원이 그 표현을 온전히 들어줄 수 있는 장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갈수록 가족회의는 나름의 꼴을 갖추며 안정을 찾았다. 회의 시작할 때 바로 안건을 다루는 게 아니라, 각자 지난주에 읽었던 책을 소개하면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가족회의는 최근 연초와 방학 중에 진행되는 가족워크숍으로까지 진화했다(딸아이가 초등 1학년, 큰아들이 4학년 때 시작한 가족회의는 5년째 이어지고 있다. 가족회의에 관한 이야기만 해도 책 한 권을 쓰고 싶을 정도다).

가족회의에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주요 안건은 단연 '청소'다. 청소를 도맡아 하는 엄마의 고충을 토로하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구체적인 청소 역할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기도 한다. 청소 영역과 방법을 공유하며 서로의 역할을 정하지만 처음에는 잘 되는 듯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되기를 반복하며 우리 가족 청소의 역사는 이어져 왔다.

그러던 지난 7월 16일 열린 제141회 가족회의. 사회자는 큰아들이었고, 기록자는 딸아이였다. 최근 바깥 활동이 많아진 데다 집 안 청소까지 늘어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던 차에 회의 자리에서 나도 모르게 남편에게 화풀이를 해버렸다. 회의 자리에서 청소를 도맡아 하는 엄마의 고충과 스트레스를 조리 있게 전달하면, 아이들은 눈빛이 흔들리며 크게 공감을 해주었다. 회의가 끝나고 나면 (일시적이지만) 이것저것 도와주려 애쓰기도 하는데, 정작 남편은 자신은 알 바 없다는 듯이 행동할 때가 있다.

그날도 그랬다. 그래서 얘기하다가 더 화가 났다. 남편도 무척 불편했는지 정색을 하고 말했다. "나름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아이들을 너무 힘들게 하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뭐라고!!" 사회를 보던 아들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자, 진정하시고 차분히 말하세요." 호흡을 가다듬은 남편이 다시 힘주어 말했다. "청소에 대한 강박증을 가진 엄마 때문에 우리가 너무 힘든 것 같습니다." 공감되는 문제 제기였는지, 사회를 보던 아들이 갑자기 거들었다. "하긴, 엄마가 없는 동안 열심히 요리하고 설거지까지 해놨는데 빨래는 왜 안 널어놓았느냐고 닦달하면 너무 속상합니다." 조용히 회의록을 적던 딸아이가 말을 이었다. "맞아요. 친구들은 용돈도 저보다 많이 받는데, 그렇다고 집안일을 하는 것도 아니에요. 엄마는 우리를 너무 많이 부려 먹는 것 같아요." 지지발언에 힘을 얻은 남편이 작정을 하고 불만을 쏟아놓자, 내용을 받아 적던 딸아이가 갑자기 고개 들어 아빠를 쳐다보며 말했다. "엄마한테 반말하지 마세요."

아무튼 그날 회의가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 생각도 나질 않는다. 다만, 남편과 아이들이 청소에 대해 많은 불평과 불만을 품고 이렇게까지 힘들어하는 줄 몰랐다는 약간의 충격만이 머릿속에 남았다.

친정 엄마의 청소

그날 가족회의를 마친 후, 내가 너무했나 싶기도 하고 이런저런 생각이 들던 차에 친정 엄마를 떠올리며 느낀 게 하나 있다. 나는 '청소'하면 친정 엄마가 떠오른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실루엣은 대부분 걸레질하고, 부엌 구석구석을 정리 정돈하는 모습이다. 청소하는 모습이 어떤 때는 진지하고 어떤 때는 즐거워 보이기도 한다. 부산에 사시는 친정 엄마가 얼마 전 우리 집에 일주일 정도 머무르셨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청소만 하다 가셨으니, 다른 가족들이 고개를 저을 정도였다.

그런데 나랑 다른 게 있다면 잔소리를 않으신다는 것. 아이들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일절 입을 떼지 않고, 그냥 묵묵히 청소만 하신다. 그런데 마지못해 하는 것이 아니라 즐겁게 집중해서 하는 모습이 신기하다. 예전에 명상프로그램에 참가했던 게 생각난다. 숲에서 조용히 눈을 감는 것만 명상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모든 것이 명상이 될 수 있다는 말. 심지어 설거지나 청소도 피곤한 일이 아니라 즐거운 명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 그런 덕인지 집안일을 내켜 하지 않는 아이들도 할머니와 청소하는 시간만큼은 투덜거리지 않고 묵묵히 함께한다. 심지어 표정도 아주 밝다.

그 모습을 보며 '청소'가 정말 '가정교육'이 되려면 딱딱 규칙을 정하고 보상을 주는 것보다 어쩌면 묵묵히 청소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큰아이가 학교에서 선생님들의 뒷모습을 보고 군소리 없이 몸 쓰는 일을 배웠듯이 말이다. 구역을 정해서 따로따로 책임을 지우지 말고 서로 이야기 나누며 같은 구역을 함께 청소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엄마인 나도 '집안일은 무조건 똑같이 나누어 해야 한다는 것' '청소를 아이들에게 교육적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것'과 같은 강박에서 벗어나, 먼저 마음 내어 즐겁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친정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며 앞으로는 그렇게 해보고자 한다. 나부터 청소를 즐길 것. 아이들은 말이 아니라 그런 어른의 모습에서 저절로 배우게 될 테니 말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민들레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와 함께 대안적인 삶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민들레>는 1999년 창간 이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출판 및 교육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이라는 통념을 깨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다양한 배움'의 길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