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예방, 흑백논리가 기준?

[민들레] 의무교육 강화가 아동학대를 예방하는 길일까

인근 초등학교에서 걸려온 전화

학교에서 대표교사를 맡고 있어 행정과 전화 업무는 주로 내 몫이다. 아이들과 바깥 활동이 많다 보니 교무실 전화를 내 휴대전화로 착신 전환해 받고 있는데, 보통 하루에 열 통 정도의 전화가 온다. 외부에서 걸려오는 전화 중에는 "대안학교가 궁금해요" 하는 상담 요청이 주를 이룬다.

그러던 어느 날,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안녕하세요. 인근 ○○초등학교 교무부장입니다"로 시작되는 전화였다. "저희도 대안학교 선생님들이 잘하고 계시는 건 알고 있는데요. 위에서 지침이 내려와 어쩔 수가 없네요"라며, 최근 사회적으로 부각된 아동학대 문제 때문에 일반 초등학교에 장기 결석하고 있는 아이가 대안학교에서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알아야겠다는 것이다.

그 이후 다른 학교에서도 비슷한 전화를 계속 걸어왔다. 덕분에 나는 인근 학교의 교무부장 선생님들과 연일 다정하게(?) 통화를 해야 했다. 각 학교에서는 수십 통의 전화로 아이들이 대안학교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확인했고, 나는 여러 학교에 열여덟 통의 재학증명서를 보내야 했다. 때로는 내부에서 혼선이 생겼는지 한 아이의 안부 확인 전화를 여러 명의 교사가 돌아가며 하기도 했다.

▲ 부산경찰은 지난 5월 학대당한 아이에게 웃는 얼굴을 되찾아 주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사진은 시민들이 아이의 얼굴에서 스티커로 제작된 멍 자국을 떼어내는 모습. ⓒ연합뉴스

최근 잔인한 아동학대와 방치에 대한 언론 기사가 급증하고 나서 교육부에서는 기자회견을 통해 장기결석 아이들에 대해 전수조사를 하겠다는 지침을 발표했다. 그리고 각 학교에 위원회를 만들어 학교에 나오지 않는 아이와 부모는 매달 한 번씩 그 위원회에 참석하게 해 잘 지내는지 확인하겠다고 했다.

그 지침을 받은 일선 학교에서는 바로 실행에 들어가, 짧은 기간에 해당 학생들에게 전화를 하고, 가정방문을 하고,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운영을 했다. 바쁘고 어수선한 시간이었다. 벼리학교의 여러 가정에는 이미 일선 학교 교사와 사회복지사가 찾아와 학교에 잘 다니는지 묻고, 전학 가고 싶지 않은지를 묻고 갔다고 했다. "이러는 거 저희도 좀 그렇지만 어쩔 수 없네요"라는 얘기를 반복하며 증거사진을 찍어 갔단다.

물론 언론에 나오는 끔찍한 아동학대 이야기들을 보면서 함께 분노하고 걱정했고, 사회적 우려도 이해가 되었기에 교육부의 전수조사 지침도 일선 학교나 주민센터의 요청도 가능하면 협조할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서 함께했다. 단, 조건은 해당 아이들과 가족들이 부당하거나 힘든 상황에 놓이지 않게 한다는 것이었다. 단순한 것 같은 그 조건이 지켜지기 쉽지 않아서, 아이와 부모들이 위축되고 마음이 상하는 것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한 학부모님은 인근 학교에서 "지침이 내려와서 그러니, 형식적으로라도 잠깐 방문해달라"고 요청해서 단순히 '방문'만 하면 되는 줄 알고 순순히 아이를 데리고 학교를 갔단다. 잠깐 확인서만 쓰고 가라는 안내를 받고 나서 교실 문을 열자 교감, 교무부장, 1학년 담임교사, 보건교사, 담당 경찰관, 학부모위원 두 명까지 모두 일곱 명의 사람이 한 줄로 앉아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당황한 학부모는 기분이 무척 상했지만, 온갖 질문을 받으면서도 그 순간을 고스란히 참아 내야 했다고. 아이와 더 많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더 행복하게 지내고 싶어서 선택한 대안학교였는데 졸지에 아이를 방치하고 학대할지도 모르는 부모로 의심받으며 조사를 받으니 너무 속상하다고 하셨다. 예고되지 않은 그런 위압적인 상황에서 아이는 또 얼마나 놀랐겠는가. '단순 방문'이라고 했던 것이 사전 알림도 없이 '취조'가 된 것이다.

'뭣이 중헌지'를 아는 사회

그나마 함께 의논하고 대응해줄 대안학교라도 있는 아이들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하루는 한 홈스쿨러의 어머니에게서 상담 전화가 왔다. 격앙된 목소리였다. 장기결석 학생에 대한 조사 때문에 학교와 주민센터에서 전화가 오고 사람들도 찾아왔었는데, 아이가 어떤 곳에도 다니고 있지 않자 방치하거나 학대를 하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로 몰렸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정기적으로 찾아와 아이의 일상을 확인을 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간 그들의 방문에 어머니는 무척 힘들어했다. 그분께 교육부의 지침과 예상되는 흐름에 대해 말씀드리고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의지할 곳 없이 개인적으로 응대해야 하는 홈스쿨링 부모와 아이들에게 이런 식의 강제조사는 무척 부담스럽고 때론 상처가 되는 일이다. 교사회의 때 우리 지역 홈스쿨러들과 연대해 힘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지 얘기가 나오기도 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답을 찾지는 못했다.

십여 년 전, 나는 고양시 일산구 백석동에 살았던 적이 있다. 2004년 어린이날을 며칠 앞두고 보도된 인터넷 기사 하나가 많은 사람들을 분노와 슬픔에 잠기게 했다. 일명 '백석동 세 아기 방치 사건'이다. 여덟 평 남짓한 1층 셋방의 방범창 사이로 어린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계속 나자 주민이 신고를 했고 경찰이 출동을 했다. 현관문을 열자 대소변으로 얼룩진 방바닥에는 쏟아진 우유와 과자 부스러기, 옷가지가 널려 있고 심한 악취와 함께 파리 떼가 들끓고 있었다고 한다. 한 살짜리 막내아들은 침대와 벽 사이에 머리가 끼여 귀의 염증이 얼굴까지 번져 있었고, 세 살짜리 둘째와 네 살짜리 첫째는 모두 영양실조에 걸려 있었다. 부모는 어린 세 아이만 남기고 가출을 한 상태였다. 이 기사를 읽고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아이들을 이렇게 방치한 부모가 도대체 누군지 화가 났다. 얼마 뒤 경찰에 검거된 부모의 나이에 또다시 나는 슬퍼졌다. 스물네 살 아빠와 스물세 살 엄마….

십여 년이 지났지만, 아이들을 둘러싼 학대문제와 사회환경은 좋아지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더 나빠지는 것 같기도 하다. 한 가정이 행복하게 살기에 경제적으로 더 힘들어졌고 아이들 교육을 잘 시키는 것도 더 어려워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때도 지금도 우리 부모들은 싸움을 벌이고 있다. 한국의 교육환경이 악화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서 아이들을 잘 키우고 조금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한 싸움을 나름대로 벌이고 있는 것이다. 내 아이가 대안학교에 다니든 일반학교에 다니든 아이의 행복과 가족의 행복을 위해 무엇이 중요한지 매일 고민하고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런 흐름 속에서 교육 당국이 아동학대 방지책으로 강행하고 있는 이분법적인 대처 방식은 안타깝기 짝이 없다. 일반학교 학생들 중에서도 해체된 가정 속에 방치된 아이가 얼마나 많은가. 꼬박꼬박 일반학교에 출석하고 있으면 아이가 안전한 것이고, 대안학교나 홈스쿨링 영역에 있으면 학대나 방치 가능성이 높다는 흑백논리의 기준은 매우 편파적이며 부당하다. 지금까지의 아동학대 방지 정책은 가장 쉽지만 실질적으로 아동학대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방법이다. 오히려 아동의 행복을 위해 다른 길을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는 대안학교 부모와 홈스쿨링 부모들에게 상처를 안겨주고 있으니 말이다.

더 이상 고통 받는 아이들이 없도록 아동학대 방지책이야말로 요즘 유행하는 말처럼 '뭣이 중헌지'를 다시 생각하며 원칙을 세워야 한다. 어떻게 하면 자라나는 아이들과 하루하루 더 교감을 나눌 것인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삶과 어른들의 삶을 조화롭게 일치시키며 행복할 수 있을 것인지, 어떻게 하면 와해된 가정에서 아이들이 방치되지 않고 이 사회가 함께 보듬어갈 수 있을지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교육 당국에서도 아동학대를 근절하고, 아동들의 행복을 확장하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무엇을 지원하고 어떤 것을 규제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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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와 함께 대안적인 삶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민들레>는 1999년 창간 이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출판 및 교육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이라는 통념을 깨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다양한 배움'의 길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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