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슨의 관심 분야와 활동 영역은 아주 폭이 넓어서, 물리학을 처음 공부하면서 대뜸 양자전기역학 분야에서 중요한 공헌을 했으나, 이후 곧 물리학 바깥 영역으로 나가서 핵에너지의 평화 시 이용을 위한 새로운 원자로 개발, 핵 추진 로켓을 개발하는 오리온 계획, 천문학, DNA 재조합 기술 자문위원, 컴퓨터, 환경 등등 엄청나게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본인 스스로가 <프리먼 다이슨, 20세기를 말하다>(김희봉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에서, 자신은 자신의 운명을 따라가는 바람에 자신을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 데려온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만족시키지 못했다고 말할 정도다. 이 책은 그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저자가 보고 듣고 느낀 이야기를 옮긴 것이다.
다이슨은 과학자로서는 대단히 독특한 관점과 소양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이 그대로 이 책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다이슨은 최고급의 과학자면서 대단히 풍부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음악가로서, 시골의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면서 작곡을 했고,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했으며 나중에는 런던의 왕립음악대학의 학장을 지냈다. 법률가였던 어머니는 고대 로마와 그리스의 시인을 좋아했고 종종 초서를 읊곤 했다. 다이슨도 이 책 전편에 걸쳐서 여러 차례 시와 연극을 인용해서 이야기를 전한다.
그렇다고 다이슨이 특별히 시대에 대한 대단한 통찰을 전하는 것은 아니다. 다이슨은 다만 자기가 겪은 일을 통해, 특별히 과학자라는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그는 "나는, 한 과학자가 '인간의 상황'에 대해 느끼는 것들을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설명해 주기 위해서 이 책을 썼다"라고 요약해서 말하고, "나는 안쪽에서 본 과학의 모습을 설명할 것이며, 기술의 미래에 대해서도 조금 말할 것이다. 또 전쟁과 평화, 희망과 실망의 윤리에 대해, 과학이 이러한 것들에게 주는 영향에 대해 말할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다이슨은 독자들이 이 책에서 '약간의 유머와 당혹감'을 느끼기를 바란다. 그의 표현을 빌면 '내 버전의 사실들'을 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책에서 느끼는 즐거움은 상당 부분이 다이슨이라는 매력적인 인물 덕분이다.
다이슨 개인의 매력을 제외하고 가장 흥미로운 내용이자, 다이슨의 업적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은 뭐니 뭐니 해도 양자전기역학에 대한 것이다. 다이슨은 미국에 건너간 직후에 코넬 대학교에서 한스 베테로부터 물리학을 배웠다. 한스 베테는 훌륭한 선생이었다. 이 부분에 대한 다이슨의 묘사가 내게는 하도 인상적이라서 잘 기억한다.
"며칠 만에 한스는 나에게 연구할 만한 좋은 주제를 찾아 주었다. 그는 좋은 문제를 골라내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학생의 재주와 관심사에 비추어 너무 어렵지도 않고 너무 쉽지도 않은 문제를 잘도 찾아 주었다. (…) 몇 시간쯤 대화한 뒤에 한스는 각각의 학생이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지 정확하게 알아냈다. 나는 코넬 대학교에 9개월만 머무르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는 그 시간 안에 내가 풀 수 있는 문제를 내주었다. 나는 그가 예견한 대로 주어진 시간 안에 정확하게 그 문제를 풀었다."
아아, 이런 선생이라니!
양자전기역학은 빛과 전자의 전자기 상호 작용을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을 모두 만족시키도록 기술하는 이론으로, 최초의 완전한 양자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양자전기역학을 제대로 구축하는 것은 제2차 세계 대전 후 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이를 성취한 사람이 코넬 대학교의 리처드 파인만과 하버드 대학교의 줄리안 슈빙거였다.
다이슨은 코넬 대학교에서 파인만과 함께 지내면서, 당시 막 싹을 틔운 파인만의 파인만 다이어그램 방법을 배우는 특권을 얻었다. 그리고 미시간 대학교에서 열린 서머스쿨에서 슈빙거로부터 정교한 수학적 방법도 터득했다. 아마도 그 시점에서 그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이해한 사람은 다이슨 한 사람 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두 이론이 동등하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새 시대를 열었다.
이 업적이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 아마도 정말로 실감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 많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물리학자라도 그렇다. 나와 같은 현대의 물리학자들은 모두 (슈빙거의 방법으로 뒷받침되기는 하지만) 파인만의 방법만을 배웠고 그것으로 계산을 한다. 그래서 다이슨의 다음과 같은 표현을 보고 다만 짐작만을 할 뿐이다.
"한스가 내게 제시한 문제를 풀기 위해 나는 정통 이론을 이용해서 몇 달 동안 수백 장의 종이에 계산을 해댔다. 하지만 딕은 칠판 하나에 30분 만에 똑같은 답을 적었다."
놀랍게도 일본의 도모나가 신이치로는 전혀 독립적으로, 그들보다 먼저 양자전기역학의 토대를 만들었다. 비록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도모나가는 전쟁 중의 일본이라는 어려운 환경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제일 먼저 나갔던 것이다. 결국 파인만, 슈빙거, 도모나가 세 사람이 양자전기역학을 완성한 공로로 1965년의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노벨상은 세 사람까지만 받을 수 있다는 제한이 없었다면 다이슨도 공동으로 상을 받았을 거라고 말하는 물리학자들이 많다.
이 책에서 다이슨은 몇몇 사람에 대해서 공들여 소개한다. 스승인 한스 베테가 그렇고,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만난 오펜하이머 역시 그렇다. 특히 오펜하이머에 대해서는 오랜 시간 같이 지내기도 했고, 오펜하이머가 한참 어려운 일을 겪을 때 옆에서 지켜보기도 해서 애정이 넘치는 묘사가 많다. 그 밖에 에드워드 텔러, 폰 노이만 등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적어도 물리학자로서 다이슨이 가장 깊은 감정을 가진 사람은 역시 파인만이 아닐까 한다. 이 책에서도 파인만의 비중은 작지 않고, 심지어 뉴턴에 비견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이슨이 파인만에 대해서 가지는 생각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이 책보다 파인만의 책 <발견하는 즐거움>(리처드 파인만 지음, 승영조·김희봉 옮김, 승산, 2001)에 실린 다이슨의 추천의 글이다. 이 글에서 다이슨은 파인만을 "사랑하는 나의 우상"이라고 부르며, 파인만에 대한 그의 생각을 고백한다. 다소 긴 내용이라 여기에 옮기지 못함을 양해 바라며, 기회가 되면 한 번쯤 읽어보시길 권한다. (아 물론, 추천의 글만 읽지 말고 책 전체를.)
책의 나머지 부분에도 많은 다채로운 이야기가 있다. 다이슨은 과학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서 아주 뚜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다. 그의 생각에 과학자가 그가 속한 사회에 대해서 발언하고 참여하는 것은 당연하며, 필수적인 일이다.
"과학자도 인간이다. 지식에는 책임이 따르기에 과학자는 공적인 일에 참여한다."
이 책에 나온 그의 활동 중 많은 부분이 과학과 사회가 날카롭게 부딪치는 지점과 가까이 있다. 과학자로서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과학에 대한 다이슨의 생각은 매우 적극적으로 과학을 활용하고자 하는 쪽이다. 핵 추진 우주선을 개발하는 오리온 계획에 참여하면서 '우주 여행자 선언'이라는 문서를 작성했을 정도다. 여기서 그는 그의 모든 행동의 기반이라고 해도 좋을 과학적 믿음을 이야기한다.
"하늘에는 땅보다 더 많은 것이 있고, 현재 과학이 꿈꿀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우리는 그곳에 직접 가 보아야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계획에 대해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는 처음으로 어마어마하게 쌓인 폭탄 재고를 살인 외에 더 좋은 목적으로 사용하는 상상을 한다. 우리의 목적과 우리의 믿음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파괴한 폭탄을 사용해 언젠가는 사람을 우주로 내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오리온 계획은 실패하고, 핵 추진 우주선 계획은 금지된다. 그래도 그는 우주여행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한다. 어떻게 보면 그는 정말 대책 없는 낭만주의자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는 증거를 또 하나 보이자면 소련과의 핵 실험 금지 조약과 관련해서 상원에서 증언을 하기 위해 워싱턴에 갔다가 우연히,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로 시작되는 마틴 루터 킹의 유명한 연설을 직접 듣고 감동한 이야기가 있다. 그날 밤에 다이슨은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고 한다.
"저는 언제라도 그를 위해 감옥에 갈 수 있습니다."
DNA 재조합 기술과 같은 경우, 그가 직접 다루는 과학은 아니지만 워낙 민감한 주제이기에 여러 장에 걸쳐서 이 문제를 논한다. 그가 인용한 홀데인의 평이 재미있다.
"물리학이나 화학의 발명이 신성 모독이라면, 생물학적인 발명은 모두 도착(倒錯)이다."
이 책의 원제는 본문 중에도 여러 번 등장하는 T. S. 엘리엇의 유명한 시 'J. A. 프루프록의 연가' 중의 한 대목에서 가져온 "우주를 뒤흔들면(Disturbing the universe)"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제목을 보고 엘리엇의 시를 떠올릴 사람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고, 출판된 제목이 정말로 책의 내용을 가장 잘 요약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우주를 뒤흔들면"이라는 제목이 에세이집에 가까운 이 책의 제목으로 그다지 이상해 보이지는 않는다. 굳이 이렇게 해설적이고 딱딱한 제목으로 바꿔야 했는지, 개인적으로는 좀 아쉽다.
다이슨은 90세가 넘은 지금도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의 멤버로 올라있다. 책 표지의 사진도 그렇지만 고등연구소의 사진을 보면 뾰족한 귀와 긴 코가 유난히 강조되어 보여서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라 요괴나 마법사 같은 다른 존재라는 느낌이 든다. 너무 심한 소리라고 느껴지면, 옆에 있는 다른 멤버들의 사진과 나란히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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