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별거랄 거 없는 일상 이야기들을 올려놓으면 냉큼 '좋아요'를 눌러주고, 덤덤한 척 끄적거려 놓은 실은 속상한 마음에 냉큼 위로를 건네는 친구였다. 그러던 어느 날, 조심스럽게 '고민 상담을 하고 싶은데 실례가 되는 거 아니냐"는 쪽지가 왔다.
고민을 토로해온 SNS 친구는 김나연(가명)이란 예쁜 이름을 가진 여고생이었다. 막연히 진로나 이성 친구 고민이 아닐까 했는데, 나연 학생이 꺼내 놓은 이야기는 좀 뜻밖이었다. 메신저로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학교가 끝나고 사무실로 들리도록 했다. 퇴근 시간이 다가올 무렵, 사무실에 예쁘장한 얼굴에 선량한 눈빛을 한 여고생이 찾아왔다.
나연이는 서울 시내에 소재한 여고 2학년에 재학 중인데, 소위 '은따(=은근한 따돌림)'를 당하고 있다고 했다. 사춘기 청소년 시절에 스스로를 은따라고 여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친구 관계를 꼭 방대하게 가질 필요도 없고 자연스럽게 시간이 해결해줄 성장통 같은 거라고도 생각하는 편이다. 그런데 나연이를 사무실로 오라고 한 것은, 나연이가 은따를 당하게 된 이유 때문이었다.
나연이가 처음부터 은따였던 것은 아니었다. 특별하게 공부를 잘하거나 무리를 이끄는 성향은 아니었지만,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고 평범하게 친구들 사이에 섞여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친구들의 묘한 시선과 수근거림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친구 하나를 통해 자신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이 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변변하게 남자 친구 한번 제대로 사귀어본 적이 없는데, 성적(性的)으로 문란하다는 소문이었다.
소문의 위력은 일파만파였지만, 소문의 근원은 황당하고 허황됐다. 얼마 전 나연이네 집이 있는 골목 다른 집에 동갑내기 남학생이 이사를 왔고 나연이네 학교로 전학을 왔다. 통학길이 같다보니 종종 같이 동행을 하게 되었고, 여러 가지가 낯설 수밖에 없는 전학 생활에 이런저런 도움을 주게 되었다.
그런데 나연이와 같은 반 친구 하나가 이 남학생에게 관심을 갖고 고백을 했다가 거절당하는 일이 있었다. 거절당한 친구는 원망의 화살을 나연이에게 돌렸다. 같은 반 친구들이 하는 카카오톡 단톡방과 같은 반 친구 다수와 친구를 맺고 있는 SNS 사이트에 "나연이가 XX에게 꼬리를 치고 있다", "XX 부모가 집을 비운 틈에 둘이 잤다더라" 같은 말을 올렸고, 그 친구의 친한 친구들이 나연이를 두고 "걸레 같은 X"을 비롯해서 성적 비하나 성적 모욕감을 줄 만한 욕으로 호응했다.
나연이는 다소 엄한 부모 때문에 데이터가 지원되지 않는 상황에서 핸드폰을 사용하고 있었고, SNS를 잘하지 않고 있었다. 뒤늦게 이러한 사실을 알았을 때에는, 이미 소문이 퍼지고 친구들의 수근거림이 시작된 상황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나연이는 혼자 밥을 먹고 혼자 통학을 하고 혼자 공부를 했다. 외롭기도 했지만 창피하고 수치스러웠다. 심한 우울감이 무력감과 자살 충동으로 이어졌고, 대인 기피증도 생겼다. 우울한 만큼 부모님께조차, 부모님에게 더, 말을 하기 어려웠다.
울먹이며 이야기를 시작한 나연이는 말미에는 꾸역꾸역 올라오는 울음을 누르지 못했다. 나연이에게 그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고 소문을 낸 같은 반 학생과 그 친구들이 한 행동은 자라면서 범할 수 있는 정도의 철없는 행동이 아니라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 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성폭력특별법 등에서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형사 처벌이 필요한 범죄 행위임을 알려주었다. 미성년자인 고등학생이라고 하더라도 명백히 형사 책임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우선 그 자리에서 나연이의 SNS에 함께 접속하여 해당 카카오톡 단톡방의 화면은 물론이고 SNS 사이트의 게시 글, 댓글, 해당 학생의 프로필을 갈무리해서 증거를 확보했다. 그리고 미성년자인 나연이가 형사 고소를 할 수 있도록 나연이의 부모님을 만날 수 있도록 설득했다.
온라인 공간은 오프라인 세계와 다른 즐거움과 편리함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그 폐해도 적지 않다. 타인을 향해 자기가 의도했던 것보다 훨씬 더 쉽게 가해를 하게 되는데, 그 피해는 오프라인의 세계에서 말을 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커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보다 엄격히 의율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그 피해 정도를 고려하여 실형이 선고되기도 하는 등 중하게 다루어진다.
편리한 온라인 공간은 그 편리만큼 쉽게 위험해지고, 책임감이나 죄책감도 쉽게 등한시 된다. 그러나 내가 등한시한다고 내가 한 행위나 그 책임이 사라지지 않는다. 쉽게 투척했던 글 몇 줄이 범죄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범죄 행위가 되느냐 그로 인해 처벌을 받느냐보다 누군가에게 평생 씻지 못할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이다. 편리해진 온라인 공간에서, 즐거워진 소통 공간에서 예의와 배려, 신중함이 중요하고 절실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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