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 들어서는 지인의 얼굴엔 반가움이 반 근심이 반이었다. 10년 넘게 교직에 몸담고 있으면서 크게 불만을 꺼내놓는 것을 들은 적이 없었던 탓에, 40대 들어서 적성이 웬 말이냐 농담을 던졌다. 향후 뭘 하겠다며 한껏 들뜬 청사진을 꺼내놓거나, 명예퇴직이다 희망퇴직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사회 환경이니 학교 사정으로 원치 않게 퇴직을 압박받는 사정을 꺼내놓을 것이라 생각했다.
뜻밖에도 지인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성추행 문제로 졸업생으로부터 형사 고소를 당했다는 사정이었다. 지인은 전해에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하는 진로가 대부분인 학생들이 다니는 종합고등학교에서 고3 담임을 맡았었다. 강직한 원칙주의자이기보다는 다소 설렁설렁한 성격을 가진 지인은, 작년 연말에 취업 문제가 마무리된 반 학생들과 회식을 했다.
학생들이 졸업 전에 취업이 된 회사로 수습을 나가게 된 상황이었는데, 맡았던 학생들이 사회인이 됐다고 생각하니 다 컸지 싶은 생각에 함께 반주를 한 것이 화근이었다. 2차로 노래방까지 가게 됐는데, 거나하게 오른 취기에 어우러져 노래를 하고 춤을 추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있었던 한 학생이 당시 지인이 자신의 뺨에 뽀뽀를 하였다며 형사 고소를 하였다는 것이 지인의 전언이었다.
선생님이었던 지인은 강제 추행 혐의를 받는 피의자가 된 상황을 맞아 당혹스러워하고 있었다. 지인은 자기는 전혀 기억에 없는 일이고, 고소를 한 학생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첫 아이를 출산한 지 얼마 안 되는 아내가 이런 사실을 알게 될까도 걱정이 많았다. 고소를 한 학생이 학교에 이런 상황들을 이야기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되기 전에 먼저 사직서를 내는 게 나을 거 같아서 퇴직을 고민하고 있었다.
지인의 말에 따라 사안을 정리하자면 교사가 학생을 강제 추행하였다는 혐의로 피소되었는데 실은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 억울하지만, 가정과 직정에 알려지는 것만으로도 곤란한 상황이라는 전언이었다. 지인의 말이 사실이라면 강제 추행 사건이 아니라 무고 사건이었다.
대응책을 세우기에 앞서 지인에게 중요한 사안을 다시 점검했다. 정말 학생의 뺨에 뽀뽀를 하지 않았는지, 본인은 기억을 못하더라도 해당 학생이나 다른 학생으로부터 그런 사실을 전혀 들었던 바가 없었는지 등을 확인했다. 해당 학생이 혹시라도 지인에게 다른 불만을 가질 만한 일이 있거나 돈이 필요한 상황인지 등 지인을 무고를 할 만한 배경이 있는지도 물어보았다. 지인의 대답은 모두 부정적이었다. 절대 학생 몸에 손을 대지 않았고, 자신은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전혀 없으며, 해당 학생과는 기억날 만한 사항이 별로 없을 정도로 담백하고 건조한 관계라고 말했다.
당사자가 추행하지 않은 것이 확실하다고 하고 별도의 범죄에 대한 증거가 있을만한 상황이 아니라고 하니, 피해자와의 합의 시도는 제외시켰다. 적극적으로 혐의를 부인하고 대질신문, 거짓말 탐지기 등에 응해서, 고소 학생의 주장보다는 피소된 지인의 주장이 믿을 만하다고 보여주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어떠냐고 권했다.
교사는 성범죄로 피소만 돼도 수사 기관에서 해당 학교로 고지가 가도록 법에 정해져 있기 때문에, 지인이 학교에 고소된 사실 자체를 숨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이와 같이 적극적으로 소명해서 무혐의가 나면 학교를 굳이 그만둘 일도 아니었다.
이후 이 사건을 맡아 위와 같이 진행했다. 경찰서에 나가 피의자 신문에 당당히 응했고, 위와 같이 모든 조사를 받겠노라 어필했다. 이후 지인은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받았다. 피의자가 적극적으로 원해서 받은 거짓말 탐지기 조사의 결과가 '진실'로 나오면, 경찰이 사건을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것이고, 곧 불기소 결정이 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의 전개가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 않았다고 호언장담하였던 지인이 받은 거짓말 탐지기 조사의 결과가 '거짓'이 나왔다. CCTV나 휴대폰 촬영 화면, 당시 직접 목격자 등이 있지는 않았지만, 노래방 안이 협소해서 다들 근접하게 위치하여 노래하고 춤추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신체적 접촉은 누구하고나 있을 법한 상황이었고, 고소한 학생이 지인으로부터 추행을 당하고 나와 다른 학생들에게 울며 호소했던 간접적인 증거들이 있었다. 지인의 거짓말 탐지기 조사 결과는 위 간접 증거의 증명력을 한층 단단하게 만드는 역작용을 했다.
지인이 추행을 하지 않았다고 적극적이고 당당하게 하였던 대응은 피해 학생이 마음의 문을 닫고 합의에 응하지 않는 결과로 이어졌다. 피의자가 수사 단계에서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하였는데 피해자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간접 증거들과 거짓말 탐지기 조사 결과가 더해져 혐의 사실의 가능성이 짙어지고 피해자와 합의도 되지 않다보니, 결국 사건은 검찰 단계에서의 형사 조정도 거치지 못한 채 정식으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상황이 벌어졌고, 현재 재판이 한창 진행 중이다.
하지 않은 범죄 혐의에 대해 지레 사실 인정을 하고 고소인과 합의를 시도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러나 자신이 한 행위가 사실로서 존재한다면, 수사 기관에서 사실 인정을 하고 피해자에게 사과를 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정말 예외적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거짓말 탐지기의 진실과 거짓의 판독 결과는 꽤 적중도가 높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래서 거짓말 탐지기 조사와 결과는 직접 증거로 기능하지 않지만, 가해자와 피해자의 주장이 대립되는데 직접적인 증거가 부족한 경우가 태반인 성범죄에 있어서는 누구의 주장에 신뢰를 실을 것인가의 지점에서 제법 중요하게 기능한다.
범죄 혐의를 받는 피의자가 대응에 있어 가장 먼저 가늠해야 할 지점은 당당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냐이다. 피의자의 또는 피고인의 변호사는 그러한 부분을 함께 판단하고 조력하는 사람이다. 자기 변호사에게 거짓말이나 변명을 하는 것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책임져야 할 일이 있다면 응당 책임지되, 최대한 선처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고소당한 입장에서 가장 이로운 출발점은 범죄 혐의에 대해 진솔하게 돌아보고 자기 변호사와 솔직하게 의논하는 것이다. 잘못된 전제는 엉뚱한 대응을 낳고, 엉뚱한 대응은 당사자에게 좀 더 많은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인지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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