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 알면 산다? 싸야 산다!

[서리풀 연구通] 건강한 식습관 함양, 교육보다 가격 할인이 더 효과적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 있는 연구만을 소개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서리풀 연구通'은 시작됐다. '잘 먹는 법', 곧 건강한 식사(healthy eating) 열풍이 분지는 이미 오래다.

각종 미디어는 가공 식품 대신 채소와 과일을 섭취할 것을 독려한다. (☞관련 기사 : 설탕 전쟁, 당(糖)하고 계십니까?, 토마토와 전립선암·양배추 유방암 막는다? 채소·과일만 잘 먹어도 암 예방) 유기농 식단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증가하여, 이제는 생활협동조합 매장이 아닌 일반 슈퍼마켓에서도 손쉽게 유기농 마크가 붙은 '더 비싼' 채소들을 구할 수 있다. 고기가 귀했던 시절은 지났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덕분에, 사람들이 건강에 있어서 식단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건강한 식단을 꾸리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게 된 것은 사실이다. (☞관련 기사 : "건강 식단 찾자"…오픈 마켓서 채소 판매 증가)

그렇다면, 사람들이 '더 많은' 채소와 과일을 섭취하게 하는 효과적인 방법은 더 많은 미디어 노출과 교육일까? 과일과 채소가 몸에 좋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비싸서 못 사먹는 거라면? 그래도 교육이 효과가 있을까?

케일리 볼(Kylie Ball)을 필두로 하는 오스트레일리아(호주) 학자들(☞관련 자료 : Economic evaluation of price discounts and skill-building strategies on purchase and consumption of healthy food and beverages: The SHELf randomized controlled trial)은 바로 이 지점에 의문을 가졌다. 건강한 식단을 구매할 수 있는 기량의 함양(skill-building)도 중요하지만, 사회 구조적인 지지(structural support) 없이는 지식 제공이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이들은 슈퍼마켓에서 식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에게 어떠한 유인을 제공했을 때 더 건강한 식재료를 구매하게 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무작위 대조군 시험(randomized controlled trials)을 계획했다. 이 시험은 "슈퍼마켓에서 건강한 식단 구매하기(Supermarket Healthy Eating for Life, SHELf)" 프로젝트라고 불렸다. (☞관련 자료 : Supermarket Healthy Eating for Life (SHELf): protocol of a randomised controlled trial promoting healthy food and beverage consumption through price reduction and skill-building strategies)

연구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되었다.

(1) 호주에서 두 번째로 큰 식료품점 체인인 C 슈퍼마켓 고객 정보를 이용하여, 멜버른 소재 점포에서 적어도 격주에 한 번은 쇼핑을 하는 여성 중 참여자를 모집하였다.

(2) '18세 이상 60세 이하, 가구 내 주 쇼핑 담당자, 영어로 의사소통 가능자, 연구 참여 동의자' 기준을 만족하는 642명의 최종 대상자를 선정하였다.

(3) 대상자들을 다음의 네 가지 군에 무작위로 할당하였다. ① 기량 함양을 위한 교육 실시 집단 ② 가격 할인 제공 집단 ③ 기량 함양 교육과 가격 할인을 모두 제공하는 집단 ④ 대조군. 이 때 지역 사회 경제 지수(Socioeconomic Index for Areas, SEIFA)를 이용하여 사회 경제적 수준이 낮은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과 높은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이 각 군에 골고루 포함되도록 했다. (SEIFA는 인구 센서스로부터 가져온 집합적 사회 경제적 정보(지역별 저소득 가구의 비율,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의 비율 등)를 이용해 호주 통계청이 산출하는 지표다.)

(4) 군별로 3개월간의 개입이 이루어졌다. 기량 함양 교육의 경우, 요리법과 식단 목표를 제공하는 총 8개의 건강 소식지를 발송하고, 건강한 식단을 꾸리도록 하는 안내지와 예산 계획표 등을 함께 제공하였다. 또 무료 온라인 포럼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건강한 식단에 관한 강의를 듣고 서로 다양한 의견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였다.

가격 할인의 경우, 해당 슈퍼마켓의 회원카드에 쿠폰을 내장하여 대상자가 모든 과일 및 채소류(가공 처리된 것 포함), 저칼로리의 탄산음료와 물을 살 때 자동으로 20%의 할인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과연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적으로 채소와 과일 구매의 증가를 유도해냈을까?

3개월간의 개입 기간 동안, 가격 할인 제공 집단은 대조군에 비해 주당 233그램 더 많은 채소와 364그램 더 많은 과일을 구매하였다. 기량 함양 교육과 가격 할인을 모두 제공한 집단은 대조군에 비해 주당 280g 더 많은 과일을 구매하였다([표 1]).

▲ [표 1] 대조군과 비교한 군별 개입의 효과. (단위 : 평균 차이, 그램/주).


흥미로운 사실은 기량 함양 교육 집단이 대조군과 비교하여 유의미한 증가량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속적으로 정보에 노출되면 한번쯤 더 사볼 법도 한데,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다.

개입 종료 후 6개월간 추적한 결과는 일시적 가격 할인이 이후의 건강 행동에까지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음을 보여주었다. 연구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격 할인이 기량 함양 교육과 달리 유의미한 효과를 거두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우리는 이미 건강한 식습관에 관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시류에 편승하여, 보다 건강하고 (가격적으로) 고급스러운 유기농 식재료의 판매 또한 증가해왔다.

그러나 정보의 양이 늘어난 만큼, 우리의 건강도 나아졌을까. 때로는 고기보다 채소와 과일값이 더 비싸게 느껴지는 현실 속에서, 살 수 없다면, 실제로 식단을 꾸릴 수 없다면, 건강한 식단에 대해 '알고만' 있는 것은 상대적 박탈감만을 갖게 할 것이다. 연구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이런 사치(!)를 부리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건강권이 인간의 기본적 권리라면, 건강한 식사를 광고하고 판매하는 소비주의적 현실에서 우리가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할 수 있는 권리, 즉 건강할 권리는 어디에 있는가를 한번쯤 생각해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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