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경험한 10대, 20대의 삶은?

[서리풀 연구通] 출산 혹은 인공 유산, 10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최근 이른바 '깔창 생리대' 사연이 소셜 미디어에서 회자되면서 10대 소녀의 건강권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촉발되었다. 국회와 지방자치단체는 저소득층 소녀에게 생리대를 지원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나섰다. 늦었지만 환영할 일이다.

한 고루한 구의원은 "생리대라는 표현이 거북하니 위생대라 부르자"고 했다지만, 여성의 월경이 숨길 필요가 없는 것이자 말 그대로 '생리적' 현상이고, 무엇보다 건강과 직결된다는 인식은 이제 사회적 공감대인 듯하다.

조급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때가 때이니만큼 이참에 조금 더 덧붙이고 싶다. 생리에 대한 '금기'가 깨지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다른 방향에서 '신비화' 역시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남자 친구로부터 "생리 그거 하나 못 참느냐"는 핀잔(?)을 들었다는 어느 여성의 사연을 보고 있노라면, 여전히 금기는 더 많이 깨져야 하는구나 싶다.) (☞관련 기사 : "소변처럼 참을 수 있는 거 아냐?"… 생리 모르는 남자들)

출산이 당연하고 무조건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청소녀의 생식 건강에 대한 염려 역시 '(미래의) 모성 건강'에 대한 우려와 부지불식간 등치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서다. 지나친 추측이라고 하겠지만, 각종 미디어를 통해 다뤄지는 10대 미혼모에 관한 담론을 보면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든다.

다큐멘터리 내용 중에서 유독 한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한 10대의 미혼모의 인터뷰다. (…) 얼굴은 힘에 들어 초췌해져 있었고, 초점 없는 눈빛으로 50일이 갓 지난 아이를 안고 있었다. (…) 이 10대 미혼모의 인터뷰에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모정이 그대로 묻어났다. (…) 오히려 '낙태'가 아닌 '새 생명'을 선택한 그 미혼모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낳아 세상의 빛을 보게 하고, 많은 것을 빨리 포기해, 홀로 양육을 결심하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관련 기사 : '낙태' 대신 '생명' 선택한 미혼모의 용기)

이는 출산=모정/용기/희생정신, 낙태=생명 경시라는 이분 프레임의 전형으로, 10대 소녀에게도 예외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글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청소년기에 엄마가 되는 것은 "많은 것을 빨리 포기"하게 한다. 이는 이후 성년기의 낮은 교육 수준과 경제 수준, 열악한 신체·정신적 건강으로 이어진다고 알려져 있다.

만일 어린 나이의 계획되지 않은 임신이 '출산'이 아닌 '인공 유산'으로 종결된다면 어떨까?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처럼, 인공 유산 집단은 출산 집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교육 수준을 달성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건강은 어떨까. 청소년기에 인공 유산을 경험한 여성은 출산을 경험한 여성과 마찬가지의 건강 결과를 보일까? 혹은 더 나쁜 결과를 보일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그간 연구가 많지 않았고 결론 역시 일관되지 않았다.

청소년기에 엄마가 되는 것이 부정적 결과로 이어지는 이유를 '부적절한 임신 시점' 때문이라고 보는 이들은, 인공 유산 역시 출산과 마찬가지의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한편, 어린 나이의 인공 유산 경험이 그 자체로 정신 건강에 해가 될 거라는 주장도 있었는데, 성년기에 경험하는 인공 유산의 경우 정신 건강 문제의 위험을 증가키시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었기에 논란이 있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핀란드 헬싱키 대학교 중앙병원의 오스카리 헤이켄헤이모(Oskari Heikinheimo) 교수 팀은 미성년기의 인공 유산 경험이 이후 성년기의 사회 경제적 결과와 건강 결과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를 평가하고자 했다. 미성년기에 출산을 경험한 이들 및 임신을 경험하지 않은 이들을 비교 대상으로 삼았다. (☞관련 자료 : Is underage abortion associated with adverse outcomes in early adulthood? A longitudinal birth cohort study up to 25 years of age)

연구는 1987년 1년간 핀란드에서 태어난 여성 2만9041명을 2012년(25세)까지 추적하는 전국적인 후향적 코호트 연구 설계로 수행되었다. 18세 이전에 사망하거나 이민 간 이들을 제외하였을 때, 18세 이전에 인공 유산을 경험한 이들은 전체 3.6%(1041명), 출산을 경험한 이들은 전체 1.4%(394명)였다. 연구팀은 두 집단의 사회 경제적 결과, 위험 행동 관련 건강 결과(상해, 약물 중독), 정신 건강 결과를 비교하였다.

또 각 집단의 임신 전후 수준을 임신 미경험 집단의 수준과 비교함으로써, 이러한 결과가 미성년기 인공 유산 혹은 출산으로 인한 것인지 여부를 재확인하였다. 분석 자료는 출생 및 임신-출산 기록, 인공 유산 기록(핀란드 보건 기록은 모든 인공 유산 기록을 담고 있다), 인구 총 조사, 사회 부조 등록, 아동 복지 등록, 병원 진단 기록으로부터 가지고 왔다.

먼저 임신을 경험하지 않은 집단과 비교할 때, 두 집단 모두 정신 질환, 상해와 약물 중독 위험이 높았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는 임신 전부터 이미 존재하였던 것으로, 미성년기 인공 유산 혹은 출산으로 인한 것이라고 할 수 없었다. 두 집단은 부모의 교육 수준 및 직업 수준과 같은 사회 경제적 지위도 열악했는데, 출산 집단이 상대적으로 더 나빴다. 특히 두 집단에서 어머니가 20세 이전에 본인을 출산한 경우가 높았고, 출산 집단에서 더욱 높았다는 사실은 사회 경제적 지위를 포함한 총체적 '취약성의 대물림'을 보여준다.

한편, 인공 유산 집단과 출산 집단을 비교했을 때, 두 집단은 정신 질환 위험, 약물 중독과 같은 건강 결과에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다만 상해의 경우에는 인공 유산 집단에서 위험이 높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엄마가 된 이후 위험 행동이 '자연적'으로 감소할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특히 사회 경제적 결과는 인공 유산이 아닌 출산을 경험한 경우에 더 나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선행 연구의 결과와도 일관된 것이었다. 여기서 사회 경제적 결과란, 교육 수준과 기초 생계비 수급 경험이었다. 인공 유산 집단은 출산 집단에 비해, 낮은 교육 수준을 달성하는 경우와 기초 생계비 수급을 경험하는 경우가 낮았다(각각 0.31배, 0.24배, [표 1]).

▲ [표 1] 미성년기 인공 유산 경험이 이후 성년기의 사회 경제적 결과에 미치는 영향.

핀란드에서는 임부가 17세 이하인 경우 인공 유산이 허용되며 부모의 동의는 필요치 않다. 시술은 병원에서만 시행되는데, 국가 보건 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 NHS) 체계 하에서 모든 산과 병원은 지방자치단체 정부 소유의 공공 병원으로 시술 비용이 무료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핀란드 사회에서 미성년기 인공 유산은 그 자체로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미성년기 출산으로 인한 낮은 교육 수준이나 경제 수준의 위험을 완화할 수 있다고 결론 내린다. 더불어 계획하지 않은 임신을 맞닥뜨린 10대 소녀를 상담하는 사회 보건 의료 서비스 전문가들이 이러한 사실을 고려할 것을 주장한다.

특히 청소년기에 임신을 경험하는 이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임신 이전에 이미) 사회 경제적 지위, 건강 면에서 취약한 상태에 있고,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을 악화시키지 않기 위한 추가적인 지원이라는 것이다.

인공 유산이 원칙적으로 불법화되어 있고, 국가가 비보험 서비스에 대한 관리, 통제를 방기하는 한국에서, 특히 10대 소녀들은 안전하지 못한 음성적 낙태 시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관련 기사 : 낙태를 경험한 여성 25명의 고백, 들을수록…) 안전하게 제공되는 인공 유산이 그 자체로 건강에 부정적이지 않고, 청소녀의 사회 경제적 안녕에 더 이롭다면, 지금과 같은 '제도적 불허용, 비제도적 허용' 정책은 그 자체로 청소녀의 건강을 악화시킨다.

계획하지 않은 임신은, 인공 유산 금지가 아닌 제대로 된 성교육과 피임을 통해 예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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